[뜨거운 희망, 양승덕의 국밥 기행] 거창한 출사표, feat. BMW X5

  • 입력 2024.02.15 09:04
  • 수정 2024.03.07 14:44
  • 기자명 오토헤럴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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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하거나 담백한 육수에 거칠게 손 본 재료를 함께 삶아내고 때로 이런저런 고명을 올려 먹는 것이 국밥이다. 반찬을 따로 담아내고 먹는 것이 보통이지만 국밥은 국밥 그대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국민 음식이다. 국밥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설에 따르면 백제 온돌이 국에 밥을 말아먹었다고 한다.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고 현대로 이어지면서 국밥 재료가 다양해졌다. 어떤 재료이든 진득하게 우려내야 맛이 나는 것이어서 들이는 정성은 대단하다. 중견 홍보대행사 웰컴어소시에이츠 양승덕 대표가 전국 국밥집을 찾아 나섰다. BMW 코리아를 비롯해 굴지의 여러 기업 홍보를 맡아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정으로 소박하지만 맛난 국밥집을 골라 다녔다. 양 대표는 "가족, 회사, 주변인 모두 싫든 좋든 어울려야 사는 세상이잖아요. 국밥에 쓰인 재료를 보면 혼자서는 별 맛이 안 나지만 아주 오랜 시간 고우고, 데치고 날 것이 보태져서 환상적인 맛을 내거든요. 기업과 소비자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묶어야 하는 홍보도 국밥하고 다르지 않다고 봐서 국밥을 찾아다녔어요"라고 했다. 뜨거운 희망을 찾아 "양승덕의 국밥 기행 feat. BMW X5"를 연재한다.

전국을 돌며 소박한 국밥 기행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쉰의 나이를 바라보는 사십 대 후반 즈음이다. 가장으로서, 배 나온 부장급 직장인으로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고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나이였다. 2017년 연말 가까스로 아내의 허락을 받고 2박3일간 떠났던 국밥 여행이 시작이었다. 처음엔 남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았다. 고속버스 유리창 바깥으로 눈 덮인 산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무작정 남쪽으로 갔고, 통영과 거제를 거쳐 순천, 목포, 함평으로 돌았다.

그 다음 해는 하동, 나주, 예산을 다녀왔다. 또 한 번은 담양, 신안, 남원을 여행했다. 그 여행 동안 허름하고 이름 모를 식당의 국밥을 즐겼다. 국밥의 종류도 다양했다. 소고기, 돼지고기, 순대, 재첩, 다슬기, 짱뚱어, 민물고기, 곱창, 우럭, 민어, 시래기, 콩나물 등등. 동네마다 다른 재료와 특성이 국밥에 녹아 있었다. 스산한 겨울 풍경을 느끼며, 짜여진 동선 없이 휘적휘적 다니면서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좋았다. 그 시작 이래로 6년이 지난 셈이다.

겨울 국밥은 매일의 삶에 지친 허기진 영혼에게 보내는 위로 같은 것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만족의 빈자리에 따듯한 국물이 들어가면 이렇게 또 일 년을 보내는구나 싶었다. 금방 만들어 내지만 결코 가볍게 대하면 안될 것 같은 국밥. 음식이 금방 나온다는 것은 오랜 시간 재료를 우려냈기에 가능한 반전이기 때문이다. 김치를 얹어 후후 불고 후루룩 삼키면 어머니와 고향이 스쳐 지나가는 음식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겨울이면 단골로 김치와 무를 썰어 넣은 김치뭇국을 만들어 가족을 먹였다. 집에서 떨어진 밭에 깊게 묻어 둔 무를 꺼내 오는 일은 내 몫이었다. 김치뭇국을 차리던 어머니는 미안해했다. 반찬이 늘 똑같다며. 가끔 고등어 자반이라도 상에 올라오는 날은 어머니의 표정이 밝았다. 일하는 사람들이 뚝딱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국밥 만한 게 있을까?

그 흔적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 또한 잘못된 욕심이겠지’ 하면서.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며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와 여행이 주는 묘미가 어우러져 욕심이 스멀 올라온 것. 국밥 기행을 떠올린 건 스무 살의 꿈도 한 몫 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던 내 스무 살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돌아와 배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국밥에 대하여 글로 경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할까!

광주의 시인 김준태는 시 ‘국밥과 희망’에서 ‘국밥을 먹으며’, ‘인간은 결코 절망할 수 없음’을 ‘신뢰한다’고 말한다. “오오, 국밥이여, 국밥에 섞여 있는 뜨거운 희망이여, 국밥 속에 뒤엉켜 춤을 추는, 인간의 옛 추억과 희망이여”라고 시작해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이끌어 올리는 국밥이여 희망이여”라고 맺으며 국밥은 희망이라고 했다.

새해를 시작하며 희망을 다시 생각해 본다. 시인의 말처럼 옛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새로운 시작, 희망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국밥만큼 옛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브제가 또 있을까? 어느 읍내 골목길에서 만날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리면 벌써 가슴이 뛴다. 또 식당에서 만날 국밥 먹으러 온 사람들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국밥은 민중적이고, 생활적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맛집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순대국과 돼지국밥 같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음식도 취향은 아니다. 찌개, 국, 전골, 탕을 아우르되 제대로 구별해 볼 작정이다. 운이 좋으면 식당이 아닌 집밥도 먹어보면 좋겠다. 자신 없는 맛 표현 보다는 사연과 인연을 따라 이야기를 곁들여도 좋겠다. 흔들림 없는 SUV 최강자 BMW X5가 길을 지켜줄 것이기에 더 마음 든든하다. 출사표가 거창하다.

장영희 교수가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누군가…굳건하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면 그처럼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라며 글 쓴 이유를 말했다. 어림없는 이야기이겠지만, 행여나 국밥 기행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영혼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글과 사진 양승덕/정리 김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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