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 테크] 충돌 테스트 그만, 은퇴를 선언하고 피크닉을 떠나겠다는 '더미'

  • 입력 2023.10.23 11:10
  • 기자명 김아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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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심각한 출산율 저하로 인구절벽 시대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에서도 사람을 대신해 충돌 테스트와 같은 각종 안전 테스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인체모형(Dummy, 이하 더미)이 줄어들 전망입니다.

대구광역시에서 개최된 2023 대한민국 미래 모빌리티 엑스포에 참가한 한 자동차 제조사는 전시 공간에 자동차 충돌 테스트용 인체모형 가족이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각각의 더미에는 “2025년에는 은퇴할 거야!(Set to the Retire in 2025)”, “대신 가상의 세계로 갈 거야(I'm going virtual instead)”, “잘 가! 물리적인 세계야, 반가워 가상 세계야{Goodby physical world hello virtual world!}”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요.

더미들이 바쁜 자동차 연구개발 일정을 뒤로한 채 한가로운(?) 피크닉을 즐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2025년 이후에는 인체모형을 이용한 충돌 테스트 대신 가상 엔지니어링(Virtual Engineering)을 통해 자동차의 충돌 안전설계 및 테스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지요. 

아시다시피 더미(Dummy)라고 불리는 충돌 시험용 인체모형은 인형이나 마네킹처럼 사람 모양을 본떠 만든 충격 측정시험기로 사람과 외형만 닮은 것이 아니라, 크기나 모양, 체중까지 거의 인간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초창기 자동차 충돌 테스트에서는 동물의 사체나 카데바(Cadaver)라 불리는 인체 해부용 시체를 사용했지만 1949년 미국 공군 비행기 조종사의 비상 탈출용 좌석 테스트를 위한 더미가 개발되면서 자동차의 충돌 안전성 연구에 더미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정면충돌 테스트와 스몰오버랩(부분 정면충돌) 테스트, 측면충돌 및 후면충돌 테스트는 물론 보행자 충돌 등 다양한 충돌 테스트에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더미는 초창기엔 나무로 만들어진 나무 인형에 불과했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사람의 뼈와 비슷한 금속성 구조물과 고무 재질의 근육 그리고 사람의 피부와 비슷한 마찰계수를 갖춘 인조 피부까지 갖춰 사고 발생 때 사람의 피부에 발생하는 상처까지도 구현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가장 최신형이라 할 수 있는 THOR test device for human occupant restraint 더미의 경우 갈비뼈 모양까지 갖추는 등 갈수록 사람과 더욱 흡사한 인체모형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더미의 내부에는 가속도센서와 변위 센서, 충돌 압력센서 등 수십 가지의 고정밀 센서를 내장해 충돌사고 때 가해지는 충격의 크기와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실제 사람이 탑승했을 때의 충격량을 계산해 인체에 미치는 상해 정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더미에 내장된 센서를 통해 50여 가지의 다양한 측정값을 분석할 수 있지만 최신 더미들을 이보다 훨씬 많은 150개의 채널 분석이 가능해 충돌사고 때 발생하는 인체의 거의 모든 상해 정도를 측정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미는 실제 차량에 탑재되어 다양한 충돌 테스트를 하는 만큼 성인 남성과 성인 여성은 물론 어린이와 영유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체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임산부와 고도 비만형 더미까지 개발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충돌 테스트용 더미를 이용한 물리적인 테스트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운전자를 포함한 자동차 탑승자의 안전을 위한 작업인 만큼 조금이라도 소홀히 진행할 수 없을뿐더러 확실한 충돌 안전성을 확인할 때까지 끊임없이 테스트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자동차를 개발하는데 150회가 넘는 충돌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번 충돌 테스트를 하는 데만 1억 원이지출된다고 가정해도 15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지요. 

또한 다양한 충돌 테스트를 위해서는 다양한 체형의 더미를 갖춰야 하는데 더미의 가격 또한 개당 1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번의 충돌 테스트를 위해 더미를 점검하고 센서값을 보정하는 등 더미를 새로 세팅하는데도 더미 하나당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10일까지 걸립니다.    

이처럼 많은 테스트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최근 자동차 업계는 충돌 안전 테스트에도 가상엔지니어링(Virtual Engneering)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상 엔지니어링 기술은 자동차 업계의 화두이기도 한데요. 3D 애니메이션과 같은 3차원 시뮬레이션 도구로 시스템 단위의 부품을 설계하고 가상으로 제품을 구현해 부품의 주요 기능과 구성, 성능 확인 및 분석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는 가상 엔지니어링은 최단기간 내에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안전과 품질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개발기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 자동차 설계 방식에서는 설계부터 시제품 생산까지 최대 3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상당한 개발비용도 발생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제품 개발 이후에도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추가되지만 가상 엔지니어링을 활용하면 설계부터 시제품 생산과정을 단 2주로 단축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부분의 자동차회사와 자동차 부품 관련 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는 CAD, CATIA 등 컴퓨터 설계프로그램을 비롯해 컴퓨터 공차 분석, 전산유체역학, 유한요소해석, 제품수명관리 프로그램, 제품 실사 렌더링과 같은 다양한 설계 및 해석,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들은 대표적인 가상 엔지니어링 기술이라 할 수 있지요

충돌 안전 테스트만큼은 자동차 탑승자들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만큼 가상 엔지니어링보다는 실제 더미를 이용한 물리적 테스트를 중시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가상 엔지니어링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실제 더미를 사용한 테스트 결과와 거의 유사한 측정이 가능해짐에 따라 실제 차 충돌 테스트를 하지 않고도 충돌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값비싼 더미가 할 일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대신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개발하고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약 250대가 넘는 테스트용 시작 차량(Protype Car)을 만들어야 하는데 가상 엔지니어링 기술을 적용하면 이러한 시작차 생산 대수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현재는 가상 엔지니어링을 통해 충분한 안전성을 확보한 후 최소한의 실제 차 테스트(물리적인 테스트) 통해 확인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테스트용 차량 제작대수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가상 엔지니어링을 이용해 실제 더미를 이용한 물리적 테스트 없이도 충분한 안전도 테스트가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에 2025년 이후에는 실제 충돌 테스트용 더미를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가상 엔지니어링과 실제 더미를 이용한 물리적 테스트를 병행하는 것이 자동차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조만간 충돌 테스트용 더미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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