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 EV9 "우주의 다른 차원에서 온 전기차" 그래도 아쉬운 것들

  • 입력 2023.06.19 09:29
  • 수정 2023.06.19 11:2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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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브랜드가 신차를 공식 출시하기 전 베일을 벗기는 일은 매우 드물다. 자의든 타의든 유출된 사진 한 장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일도 많았다. 해외, 특히 유럽 브랜드가 공식 출시 전 신차의 내·외관, 제원 등을 상세하게 공개하는 것과 대비가 됐다.

미리 공개했다가 신차가 나오기 전, 이런저런 악평이나 구설에 오르는 괜스러운 일에 굳이 판을 깔기 싫었을 것이 분명하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보다 두려움이 앞선 탓에 팔기 직전 또는 시작하는 날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요즘 들어 유연해진 건 있지만 기아 EV9은 국산차의 이런 관행을 깼다. LA오토쇼(2021년)에서 '더 기아 콘셉트 EV9'으로 존재가 드러난 이후 그 모습 그대로 부산 모터쇼(2022년), 서울모빌리티쇼(2023년)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번 노출을 감행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2일 있었던 미디어 시승에서 만난 EV9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 잘 연출된 곳에서 만났던 EV9은 자연광에서 색다른 감성을 줬다. 우선은 EV9 크기에 압도당한다. 전장(5010mm)과 전고(1755mm)가 국산 SUV 가운데 가장 큰 현대차 팰리세이드를 넘어선다.

오로라 블랙 펄 외장에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게 마무리한 전면의 그릴과 범퍼부, 두툼한 블랙 하이그로시 클래딩, 테일 게이트로 강하게 치켜 올라가는 벨트라인, 오토플러시 도어핸들 그리고 디지털 감성을 살린 휠 디자인, 헤드라이트와 패턴을 같게한 기하학적 테일 램프 형상도 멋지다.

외관에서 주목할 것은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이다. 기아 커넥트 스토어를 통해 ‘라이팅 패턴’을 구독하면 기본 제공하는 패턴 말고도 5개의 추가 그래픽을 쓸 수 있다. 굳이 돈 쓸일은 아닌 것 같은데 기아 관계자에 따르면 제법 많은 계약자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써 보고 필요 없으면 해지할 수 있는 게 구독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실내는 반듯하고 광활하다. 대시보드 절반을 디지털 클러스터와 공조, 내비게이션을 통합한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차지했다. 스티어링 휠 아래 버튼으로 드라이브 모드를 전환하면 클러스터 구성에 변화를 주고 내비게이션은 증강현실(AI)로 전방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공조 시스템을 제어하는 화면이 스티어링 휠에 가려지고, 화려하고 첨단스럽기는 한데 내비게이션 화면 구성이 지나치게 혼란스러운 건 불편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로 바닥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축 터널이 필요 없게 되면서 센터패시아와 콘솔 부는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그 공간을 그냥 공간으로 두고 있는데 쓰임새를 찾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센터부는 컵홀더, 오토 홀드 등 최소화한 버튼과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와 콘솔박스로 이어지고 2열까지 연결되는 센터 콘솔로 더없이 간결하고 유용했다.

하나 더 불편했던 건, 체형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전 포지션을 적절하게 잡았을 때 대시보드에 손이 닿지 않았다는 점이다. 키가 더 크고 팔이 더 긴 사람도 같이 느낀 불편이다. 센터콘솔에 다이얼 셀렉터 등의 보조 장치가 필요해 보였다. 

시트는 동급 SUV 가운데 구성과 베리에이션이 뛰어나다. 6인승, 7인승을 기본으로 하고 2열 시트를 180도 회전해 3열과 맞보게 하는 스위블 시트, 2열 프리미엄 릴렉션 기능 그리고 1열에는 릴렉션 컴포트 시트가 적용된다. 시승차는 6인승 모델이다.

인상적인 건, 트렁크에서 버튼 하나로 2열과 3열을 폴딩 하면 완벽에 가까운 바닥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2열과 3열을 접고 펼때 모두 트렁크에 있는 버튼으로 가능하다. 2열과 3열에도 독립적 제어가 가능한 공조 장치 그리고 외부 기기 충전이 가능한 C형 충전기가 마련돼 있다.

다만 2열 시트의 스위블 조절이 매끄럽지 않은 것, 3열 탑승 개구부와 무릎 공간에 여유가 없다는 것은 불만이다. 기존의 SUV처럼 3열은 접고 적재 공간으로 쓰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EV9 트렁크 용량은 6인승을 기준으로 기본 775ℓ, 2열을 접으면 2715ℓ다. 보닛 안쪽에도 제법 큰 프렁크가 보인다.

시승한 EV9은 4WD에 21인치 타이어를 장착했다. 99.8kWh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한 번 가득 충전하면 454km를 달린다. 최고 출력은 283kW(384마력), 최대 토크는 600~700Nm를 발휘한다. 최대 토크는 부스트를 통해 기본 수치보다 높일 수 있다.

전기차다운 차분한 발진, 매끄러운 속력의 상승, 부드러운 승차감을 보여준다. EV6 그리고 현대차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의 주행 질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차 대부분이 그렇듯이 운전자가 체감하기 힘든 속력 상승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엔진음이 없는 데다 가속 페달 반응이 빠르고 외부 소음도 잘 차단돼 있어 제한 속도를 넘기는 순간을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았다.

차체가 크고 2톤을 넘긴 공차 중량(2585kg)의 대형 SUV가 갖는 한계는 있다. E-GMP 플랫폼을 공유하는 다른 모델의 순발력과 반응 그리고 빠르게 방향을 틀 때 추종감에서 차이가 있다. 스포츠 등 주행 모드 차이가 주는 변별력도 감동적이지 않았다.

서스펜션 구성에도 아쉬움이 있다. 기아는 미사여구를 보태 '맥 멀티 서스펜션'을 전륜에 썼다고 했지만, 둔덕을 넘고 거친 조향을 하면 오리지널 맥퍼슨 스트럿 타입의 특징이 나타난다. 일상적인 움직임은 몰라도 거칠게 다루면 제법 큰 롤링과 피칭이 나타난다. 특히 앞부분의 흔들림이 더 심하게 전달된다.

기아는 부피가 커지고 중량이 더 나가게 되고 찻값이 비싸지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유의 서스펜션이 적용됐다면 일상의 승차감은 그렇다고 쳐도 고속 또는 험지를 달릴 때 승차감이나 주행 안정감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가격을 생각한 시장의 기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대했던 레벨3 자율주행 시스템은 아직 적용되지 못했다. 고속도로 등 제한된 구간에서 부분적으로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HDP는 곧 출시하는 GT-라인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HDP가 없어도 EV9의 기본 첨단안전운전보조시스템(ADAS)은 매우 적극적이고 정확하게 안전한 운전을 돕는다.

[총평] 경기 하남에서 충남 부여까지 200km 남짓을 달렸다. 전비는 4.8kWh(인증 전비 3.9kWh)를 기록했다. EV9 어스 4WD 기본 가격은 8163만 원, 시승차는 모든 옵션을 추가한 모델이다. 찻값이 부담스러워진 것은 배터리 용량이 90kWh대로 오른 탓이다. 하지만 현명하게 계산기를 두들기면 6000만원대로 내릴 수 있다. 서울시를 기준으로 에어 트림 2WD(19인치 휠)를 선택하면 국비와 지방비 보조금으로 6920만원대 구매가 가능해진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가격이고 아쉬운 것들이 있기는 해도 다른 차원에서 온 듯한  생김새, 대형 SUV 이상의 공간과 쓰임새로 보면 벤츠나 BMW의 억대 동급 모델과 비교해 꿀릴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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