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만버스 도입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

  • 입력 2016.05.16 10:22
  • 수정 2016.05.16 10:3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야겠다. 첫 번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잘한 일은 대중교통시스템 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꾼 일이다. 준공영제, 환승할인, 중앙차로제 등으로 대중교통을 편리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옥에 티는 굴절버스를 도입한 일이다. 서울 도심의 도로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시민과 버스 사업자들의 반대 의견은 모두 무시됐다. 그 이전 1980년대에도 동아자동차가 만든 굴절버스가 운행 몇 달 만에 퇴출당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굴절버스를 20대를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 굴절버스는 단 한대도 운행되지 않고 있다.

회전로가 많은 노선에서 정상적인 운행이 어려웠고 7500여 대에 달하는 전체 버스 가운데 20대의 굴절버스가 수송율을 높이고 이용자 편의를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전형적인 탁상, 전시행정으로 시민들의 혈세만 낭비된 셈이다.

두 번째, 이층 버스도 좋은 예다. 수도권 출퇴근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요란하게 들여 왔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개선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좋다면서도 이층 버스 운행을 늘리거나 추가로 구매한다는 소식도 없다.

 

수도권 광역 급행 노선에 입석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심각하다며 모든 문제가 해소될 것처럼 한바탕 난리 치듯 땜질식 처방을 내놨지만, 굴절버스와 마찬가지로 그걸로 끝이다. 작은 화재가 발생한 이층 버스는 부품이 없어 수리를 못 해 차고지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굴절버스와 이층 버스는 전시행정으로 인한 혈세의 낭비를 보여준 사례다. 과거 서울시의 버스 정책 사례를 되짚는 이유는 이번에 또 독일 업체인 만버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가 아닌 조합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만버스와 차량 구조, 형식, 가격 등을 주도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3개의 문과 리프트 기능, 그리고 최대 승차 인원이 80명이나 되기 때문에 이 시민 서비스 차원에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도입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서울시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만버스의 라이온시티는 대 당 가격이 3억 원을 넘는다. 만트럭버스코리아 관계자는 “서울시가 요구하는 대로 지상고를 높이고 내압용기와 안전밸브에 대한 추가적인 안전 강화가 반영되면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버스업계는 만버스의 도입 역시 아까운 시민 혈세만 낭비하는 전시행정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 버스업체 관계자는 “서울 버스 노선 가운데 회전이 쉽지 않은 곳이 많은데 만버스는 전장이 12m나 돼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대당 승차 인원이 80명이라고 국산 버스도 좌석 수를 줄이면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문이 3개 달렸다고 시민 편의가 얼마나 개선될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만버스와 같은 초 저상버스는 국내 업체인 현대차와 자일버스도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만버스 도입이 시민 편의를 개선하기보다는 국내 차량의 가격을 끌어내리려는 목적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버스 가격의 상승은 정부의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것이며 초저상, 장애인 리프트, 실내 고급화 등을 요구하는데 맞춰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 상승의 원인을 정부나 지자체가 강요하면서 국산 버스의 가격이 비싸다고 지적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상용차 시장은 어느 나라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무거운 관세 또는 엄격한 안전 및 환경 규제를 적용한다. 그런데도 서울시가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외산 버스를 비싼 값에 도입하려는 것은 또 하나의 일회성 전시행정이 될 공산이 크다.

국내산 버스 시장을 특정 회사가 독점하고 있고 이를 통해 가격을 인상한다는 점도 동의하기 어렵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해도 저상버스 기준 국내산 대비 30%, 외국산은 40%가 비싸다. 유럽, 미국도 같은 유형의 버스 가격이 우리보다 현저하게 높다. 결코, 싸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산 버스가 비싸다고 더 비싼 외국산을 들여오겠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버스 이용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운행 시간이 불규칙하다는 것이다. 승하차 도어가 3개가 달려 있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서울시가 들여오려는 외국산 버스의 탑승 가용 인원이 80명이나 된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서울시가 들여오려는 버스는 12m나 되는 길이를 갖고 있다. 국내산 버스의 길이는 11m, 따라서 버스 정류소에 정차하는 차량 수가 줄어 안전사고도 우려된다. 버스 베이, 중앙차로의 정류소도 손을 봐야 한다.

교통선진국은 대중교통의 탑승 인원수를 늘리기보다는 가능한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당 3억 원이면 국내산 버스 3대에 달하는 가격이다. 그 돈으로 버스를 더 늘려 배차 간격을 줄이면 더 빠르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가 외산 버스를 들여오려는 것이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한 기업 압박 수단이라면 재고해야 하고 시민 편의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배차 간격을 줄이고 정시 운행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하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