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10 순종 종마로 불린 부가티 '타입 13'

  • 입력 2019.01.15 09:25
  • 수정 2019.01.28 08:26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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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기술자인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는 1890년대 후반에 직접 자동차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1898년에 이탈리아 프리네티 & 스투치(Prinetti & Stucchi)에서 만든 첫 차를 시작으로 드 디트리시(De Dietrich), 도이츠(Deutz) 등에서 일하며 다양한 차를 만들었다. 

1909년에는 스페인 은행가인 아우구스틴 드 비카야(Augustin de Vizcaya)로부터 투자를 받아 당시 독일 영토였던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몰셈(Molsheim)에 회사를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첫 차는 타입 13으로 불렸다. 타입 1부터 타입 12까지의 차들은 앞서 다른 회사에서 그가 만든 것들이었다.

타입 13은 그가 도이츠에서 자동차를 개발할 때 독자적으로 시험 제작한 타입 10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타입 10은 부가티가 직접 설계한 직렬 4기통 엔진을 비롯해, 사다리꼴 프레임과 2인승 로드스터 형태의 차체, 앞뒤 솔리드 액슬 방식 차축 등을 갖췄고 대부분 타입 13에 그대로 이어졌다. 차 크기는 무척 작아 휠베이스가 2m에 불과했고, 차체 크기에 비해 엔진이 들어 있는 보닛이 큰 탓에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 엔진은 초기 자동차에서는 흔치 않았던 모노블록(monobloc) 구조로 되어 있었다. 당시 많은 다기통 엔진은 실린더 하나씩 분리되어 있는 것을 결합하는 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강성과 내구성, 신뢰성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모노블록 엔진은 실린더 헤드, 블록, 크랭크케이스가 각각 한 덩어리로 만들어져 훨씬 더 견고했고, 실린더를 결합하면서 생기는 밀폐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더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다.

1910년 파리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타입 13에는 타입 10의 1131cc 엔진에서 보어를 키운 1368cc 엔진이 올라갔다.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30마력으로 대단하지 않았지만, 작은 크기의 차로 빠른 속도를 내기에는 충분했다. 엔진과 변속기는 무척 효율적이었다. 흡기와 배기 흐름이 자유로왔고, 두 개의 제니스(Zenith)제 카뷰레터와 빠른 밸브 작동으로 균형 잡힌 성능을 냈다. 

차의 전반적 성능을 높은 수준에 올려놓은 것은 엔진보다도 뛰어난 핸들링과 스티어링, 제동 특성이었다. 덕분에 장난감 같은 겉 모습과 달리 모터스포츠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면서 '퓌르 상(Pur sang)' 즉 순종 종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0년에 부가티는 다섯 대의 타입 13을 만들었고, 1911년 르망에서 열린 프랑스 그랑프리에 출전시켰다. 작은 경주차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지만, 7시간의 경주가 끝난 뒤 2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타입 13은 엔진과 섀시 등을 달리하며 타입 15, 타입 17, 타입 22, 타입 23으로 발전했다. 1913년 이후에는 부가티의 상징 중 하나인 라디에이터 그릴이 쓰였다. 타원의 아래쪽을 잘라낸 듯한 형태가 독특한 이 라디에이터 그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타입 13이 모터스포츠에서 한창 활약하던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부가티는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군용 엔진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때 완성된 두 대의 경주차가 파손되지 않도록 밀라노로 가져가면서 공장 부근에는 나머지 세 대를 위한 부품을 숨겨두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뒤에 부품을 꺼내어 경주용으로 다섯 대의 타입 13을 만들었다.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타입 13은 모터스포츠에서 현역으로 활동했고, 1921년 브레시아(Brescia) 그랑프리에서는 SOHC 4밸브 방식으로 실린더 헤드를 바꾼 차로 1위부터 4위까지를 휩쓸었다. 이 우승을 기념해, 부가티는 나중에 나온 모든 4밸브 엔진 모델에 브레시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타입 13은 앞선 기술, 뛰어난 품질과 미학, 탁월한 성능을 겸비한 차라는 부가티의 명성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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