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역사의 시작 #22. '포르쉐 356' 시속 135km 스포츠카
브랜드 역사의 시작 #22. '포르쉐 356' 시속 135km 스포츠카
  • 류청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31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피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오스트리아 그뮌트(Gmünd)로 근거지를 옮긴 포르쉐의 설계 회사는 자동차를 독자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페리(Ferry)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의 아들, 페르디난트 안톤 에른스트 포르쉐(Ferdinand Anton Ernst Porsche)의 결정이었다.

'사고 싶은 차가 없어서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아버지가 전범 혐의로 투옥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외주 설계의 불안정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해석이 맞아 보인다. 포르쉐는 이미 1930년대에 반더러(Wanderer), 아우토 우니온(Auto Union) 등 여러 업체의 경주차 설계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스포츠카 설계를 시작했다.

주어진 조건은 무척 제한적이었다. 차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은 원래 제재소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소규모 시설이었고, 쓸 수 있는 자원은 폭스바겐 비틀용으로 만들어진 부품이 거의 전부였다. 당시 포르쉐 가문은 폭스바겐 오스트리아 딜러의 지분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틀 부품을 활용할 수 있었다.

페리 포르쉐는 우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설계한 타입 64 경주차를 바탕으로 첫 시제차를 설계했다. 타입 356/1로 불린 이 차는 폭스바겐 비틀의 부품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와 더불어 스포츠카의 성능을 낼 수 있을 만큼 경량화할 수 있는 한계를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섀시는 타입 64와 마찬가지로 파이프를 입체적으로 용접해 만들었고, 지붕 없는 로드스터 형태의 알루미늄 차체는 엘빈 코멘다(Erwin Konemda)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코치빌더인 프리드리히 베버(Friedrich Weber)가 수제작했다. 설계도면이 완성된 것은 1947년 7월 중순이었고, 첫 시제차는 이듬해 6월 만들어졌다.

엔진은 전쟁 중 비틀 기반의 군용차인 퀴벨바겐과 슈빔바겐에 쓰인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1131cc, 비틀과 다르게 뒤 차축 앞에 놓은 미드십 형식으로 배치했다. 아울러 압축비를 높이고 고성능 카뷰레터를 달아 최고출력을 40마력으로 높였다. 엔진 외에도 4단 수동변속기, 기계식 드럼 브레이크, 스윙 액슬 방식 서스펜션, 스티어링을 비롯한 주요 부품은 비틀 부품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차는 585kg의 무게로 시속 135km의 성능을 냈다. 다만 엔진과 마찬가지로 뒤 서스펜션도 비틀의 구조를 180도 돌려 놓으면서 간혹 차의 움직임이 불안해졌다. 포르쉐는 356/1과 더불어 비틀의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은 또 다른 시제차 356/2도 만들었다. 356/1의 구조는 대량생산이 어려웠던 탓에, 실제 양산차는 2도어 쿠페인 356/2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356/2의 디자인 역시 엘빈 코멘다가 맡았는데, 전체적 형태는 타입 64 경주차와 비슷했다. 356/2의 기본 구성 요소는 356/1과 같았지만, 비틀과 비슷한 강판 프레스 플랫폼에 휠베이스를 줄이고 강성을 높였다. 아울러 비틀의 뒤 엔진 뒷바퀴 굴림 구조를 그대로 쓰면서 뒤 서스펜션을 보강했다.

미드십 구동계 배치를 포기하면서 스포츠카의 이상적인 주행특성은 잃었지만, 배터리와 스페어 타이어, 연료탱크를 차체 앞쪽으로 옮겨 무게 배분의 균형을 찾는 한편 안정적인 뒤 서스펜션 구조 덕분에 주행특성은 만족스러웠다. 구동계 배치가 바뀌면서 좌석 뒤쪽에 여유공간이 생겨 적재공간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비틀의 구조로 돌아간 것이었지만, 애초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이었던 만큼 당시 스포츠카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앞선 구성을 갖게 되었다. 356/2 쿠페의 무게는 356/1보다 약간 더 무거웠고, 그 때문에 가속력은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둥글고 단순한 패스트백 형태의 차체에 힘입어, 최고속도는 시속 135km로 356/1과 같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양산차로 만들 준비는 되었지만, 포르쉐는 부품과 자재는 물론 자금도 넉넉치 않았다. 결국 스위스 사업과들과 폭스바겐 판매상들의 지원을 받아 소량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양산된 첫 356은 1948년 6월에 오스트리아에서 인증을 받았다. 제한된 생산능력 때문에 1948년이 끝날 때까지 그뮌트에서 만들어진 356은 네 대에 불과했고, 이후 1949년 말까지도 약 50대가 생산되는 데 그쳤다.

초기형 356은 좌우로 나뉜 앞 유리와 도어 앞쪽에 난 쪽창, 차체 뒷부분 형태 등으로 뒤에 나온 차들과 구분된다. 이후 포르쉐는 독일 추펜하우젠으로 공장을 옮겨 356의 생산을 본격화 했다. 그뮌트에서 생산된 356은 모두 수제작한 알루미늄 차체를 얹었지만, 추펜하우젠으로 옮기면서 차체 재질이 강판으로 바뀌었다.

356은 이후 계속 개선되면서 비틀과 공유하는 요소를 줄여 나갔고, 1965년 4월까지 생산이 이어졌다. 포르쉐가 처음 독자 브랜드로 내놓은 첫 양산차인 356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과 더불어 실용성을 잃지 않은 고성능 스포츠카로서 포르쉐의 기틀을 다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