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증오의 상징 ‘굴뚝’은 봄꽃처럼 화사했다

  • 입력 2016.04.21 09:0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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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아마 오늘처럼 궂은 날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6월 날씨치고는 을씨년스러웠던 2009년, 어렵게 약속을 하고 찾은 쌍용차 평택 공장은 입구부터 흉흉했다. 컨테이너로 정문을 막았고 선동적인 문구들로 가득한 대자보가 경비실과 공장 외벽 여기저기 나 붙어 있었다.

복면한 직원들이 인적사항을 꼼꼼하게 묻고 어딘가로 무전을 한 후 출입이 허용됐다. 작은 문이 열리고 눈 앞에 펼쳐진 공장 안쪽은 더 살벌했다. 천막과 현수막이 조립공장과 본관까지 길게 이어져 있고 ‘이제 반격이다’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정문 안쪽에 길게 늘어선 천막에는 ‘울 남편 힘내라’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어린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는 부녀자,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치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보인다. 전쟁터 같았다. 각 조립공장 출입구는 자동차 조립 부품들로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투쟁, 사수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보였다. 왼쪽에는 노조원이 점거해 이날로 2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두 개의 굴뚝도 보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둡고 긴 복도와 계단을 몇 개씩 거쳐 도착한 노조 사무실, 거기서도 더 깊숙한 곳에서 당시 36살 이창근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부장을 만날 수 있었다. 기자와 만난 그는 '두 마리의 토끼에 농락당했다, 더는 물러설 곳 없다”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는 당시 이유일, 박영태 공동관리인을 가리켰다. 뭐에 당했다는 것이냐고 묻는다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는 사람들이 형식적인 대화 제의를 하고 노조가 제안하는 상생 방안에는 관심도 없이 무성의한 협상만 벌이고 있다”고 답한다.

우리를 좌파로 몰고 있다. 그리고 노조 와해 공작, 생존권 등 격앙된 얘기들이 이어졌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한쪽에는 노조원 아이들로 보이는 작은 꼬마들이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다. 이날 이후로도 쌍용차 노조의 공장 점검상태는 계속됐다. 굴뚝 농성은 해를 넘겨 이듬해 3월까지 101일 동안 계속됐고 경찰의 진압 작전, 해고자 분신, 자살, 농성 등이 끝없이 이어졌다. 끝나지 않을 싸움으로 보였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쌍용차 평택공장은 활기가 넘쳤다. 군인보다 더 군기가 잡혀있는 경비원들은 쉴 사이 없이 드나들고 있는 화물차를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고 ‘투쟁의 상징’이 됐던 두 개의 굴뚝은 봄꽃처럼 화사한 빛을 냈다. 살벌한 구호로 가득했던 공장 벽과 기둥에는 과거의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플래카드가 대신 자리를 잡았다.

그때 기자와 만났던 강성 투쟁의 선봉 이창근 씨는 지금 복직을 했다. 그와 함께 12명의 해고 복직자와 16명의 해고자 자녀도 채용돼 근무하고 있다. 송승기 생산 본부장은 “가장 달라진 부분이라면 직원들의 자신감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밝아진 현장 분위기와 긍정적 에너지가 향후 생산되는 모델들의 품질에도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사 14년차인 박용우 기술주임은 “해고자들이 복직했을 때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과거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고 서로의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바로 융합이 됐다”고 말했다. 노사의 극한 대립과 해고자 복직을 둘러싼 잡음이 끓이지 않았던 쌍용차, 끝나지 않을 것 긴 다툼을 끝내고 평택공장을 활기로 가득 차게 한 것은 대박 티볼리다.

 

티볼리는 쌍용차의 2015년 내수 판매를 전년 대비 44.4%가 증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4년 렉스턴 5만4274대 이후 단일 차종 사상 최대 판매 실적을 기록하면서 업계 최대 성장률을 이끌었다. 송승기 생산 본부장은 “현재 생산 물량 부족으로 인해 조립 1라인을 제외하고 2개 라인이 1교대 운영 중이다. 조업률은 약 60%지만 티볼리에 이어 매년 1개 이상의 신차 출시를 통해 향후 3~4년 안에 공장 조업률을 100% 수준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립설비의 가동률은 99%나 된다. 이곳 직원은 “몸은 힘들지만 살 맛 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차가 많이 팔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직원들도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라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직원 모두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의 올해 목표는 '11만대 판매달성과 흑자전환’이다. 각 조립공장에는 ‘티볼리 대박’, ‘희망찬 도약’ 등 목표 달성을 위한 직원들의 각오로 가득한 대형 게시판이 걸려있다. 불신과 증오로 가득했던 쌍용차 평택공장은 이렇게 새로운 희망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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