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운전 유발자는 무죄인가 '무대응이 상책'

  • 입력 2016.04.11 08:34
  • 수정 2016.04.11 09:05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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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강 씨의 주말 나들이, 사이드미러에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고속도로 진입로의 갓길로 승합차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저기 끼어 들 곳을 찾지만 이럴 때 운전자들은 무언의 담합(?)을 한다. 얌체 같은 짓에 대한 응징, 좀처럼 자리를 내어 주지 않고 승합차는 끼어들 곳을 찾지 못한다. 그런데 이 승합차, 하필 강 씨 옆에서 도발을 시작한다.

누가 더 대범한지, 남자의 자존심을 걸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그러자 아내가 소리를 친다. “그냥 양보해 줘 똑 같아 그냥”. 어쩔 수 없이 공간을 내준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생긴다. 승합차 운전자가 욕설하는 입 모양이 보이고 가운데 손가락이 차창 밖으로 나오더니 침까지 뱉고 달아난다.

강 씨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자존심 구겨가면서 양보까지 해 줬는데 욕에 침까지 뱉어, 그냥 안 둔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내비게이션에서 “잠시 후 본선에 합류합니다”란 안내가 나오자 갓길로 차를 빼 승합차를 추월하며 “너 차 세워”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여러 차례 제동을 하고 속도를 줄이며 차를 세울 것을 요구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냥 안 갈래. 자꾸 이러면 나 여기서 뛰어내린다”.

 

강 씨, 다시 성질을 삭힌다. 목적지에 도착하고서도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내 잊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보복운전으로 신고됐으니 조사를 받으라는 것. 강 씨는 경찰에서 자초지종을 얘기했지만 “그쪽은 영상으로 증거를 내놨지만 당신은 말뿐이라 참작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증거가 있다고 해도 상대는 난폭운전으로 도로교통법 처벌을 받지만 자신은 보복운전으로 형사처분을 받는다고 했다.

결국, 강 씨는 보복운전으로 형사입건됐고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될 처지가 됐다. 경찰이 지난 2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난폭·보복운전 집중 수사·단속을 추진한 결과 803명이 형사입건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상대 차량의 급격한 진로변경(32.4%), 경적 및 상향등(22.6%), 끼어들기(18%), 서행운전(16.4%)에 화가나 보복운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씨처럼 자신을 화나게 한 상대 차량에게 보복운전을 했다가 형사 처분 대상이 된 것이다.

경찰은 “이번 집중 단속 결과 난폭운전에 대한 보복운전이 많았다”며 “난폭운전과 보복운전은 처벌 대상과 수위가 다르므로 섣부른 대응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난폭운전은 급차선변경 또는 역주행, 과속 또는 신호위반 등을 반복적(2회 이상)으로 했을 때 해당하지만 보복운전은 단 1회로 성립된다.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난폭운전은 영상 증거 등을 남기기 힘든 반면, 보복운전은 상대 차량의 앞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증거 제출이 상대적으로 쉽다. 이 때문에 난폭운전은 제삼자에 의한 신고가 많고 보복운전은 피해자 신고가 많다.

경찰의 이번 집중 단속에서 보복운전으로 입건된 상당수가 난폭과 위협운전에 보복운전으로 대응했다가 처벌을 받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찰이 정당한 행위로 판단해 신고자인 보복운전 피해자를 되려 처벌하거나 쌍방 처벌한 경우는 2.6%에 불과했다. 교통 관련 전문가는 따라서 난폭운전으로 보복운전을 유발하는 운전자를 가려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기상 자동차 시민연합 대표는 “난폭운전에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증거를 모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며 “보복운전을 더 큰 범죄로 보는 것은 여러 사례에서 나타난 것 처럼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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