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조건, 크거나 빠르거나 독특하거나

  • 입력 2015.11.25 09:16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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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LA오토쇼에 전시된 고급차들, 위 오른쪽 시계 방향으로 아우디 R8 V10 플러스, 메르세데스 벤츠 SL550, 인피니티 Q30, 캐딜락 XT5,

평범한 것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일반적인 공산품도 그렇고 수 천만 원대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특히 더 크거나 아주 빠르거나 무엇인가 독특함에 이끌려야 선택을 한다.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생각하는 인식보다 이전과 다른 의미로 자기 과시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고급차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2010년 570만대를 기록한 고급차 수요는 지난해 880만대로 증가했고 올해에는 1000만대가 예상된다.

고급차 수요 증가를 견인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의 연간 고급차 수요는 250만대, 중국은 240만대다. 시장조사업체 IHS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고급차 시장은 2010년부터 매년 10.5% 성장했다. 대중차 성장률 6.0%를 큰 차이로 앞서면서 2008년 금융위기 수준 이전으로 회복됐다.

고급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는 미국이다.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3사와 비 독일계 고급차 브랜드들이 앞다퉈 더 크고 빠르고 독특한 차들을 내놓고 경쟁하고 있다.

 렉서스는 LA오토쇼가 열리는 LA컨벤션 센터 입구에 고성능 모델들을 따로 전시해 주목을 끌었다.

최근 개막한 2015 LA 오토쇼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럽, 중국, 일본에서 열리는 모터쇼와 달리 LA 오토쇼에서 친환경차는 곁다리다. 참가 업체 대부분은 전시관 메인에 고성능, 대형 고급자동차 또는 대형 트럭을 배치해 놨다. 포르쉐는 아예 전시관을 독립된 홀에 따로 만들어 이번 모터쇼에 참가했다.

LA 도심과 외곽 프리웨이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포드와 도요타, 쉐보레 등의 대형 트럭들이 즐비하고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가 오렌지 카운티와 LA 카운티, 그리고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고급차 생산 비중이 높은 독일 3사들은 따라서 미국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력 시장인 유럽의 고급차 판매 비중이 10%대에 불과하고 미국에서의 성패 여부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업체들이 미국 고급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에 투자하는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30억 달러를 들여 현지 공장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고 BMW는 최근 최고 성능의 엔진을 생산하기 위해 영국 햄스 홀 공장의 설비를 개선했다.

 LA 인근에 있는 BMW 전시장 규모는 국내 쇼핑몰 수준이다.

BMW가 영국 공장 등에 투자한 비용만 7억5000만 파운드, 우리 돈 1조 3000억 원이 넘는 돈이다. 렉서스도 뉴욕에 홍보관을 새로 마련했고 볼보도 오는 2018년 가동을 목표로 연간 12만 대 생산이 가능한 미국 현지 공장을 짓고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 아우디도 각각 6억 파운드(1조 469억 원, 240억 유로(30조 원)를 들여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고급차 시장의 전장은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도 지속해서 고급차 수요가 늘고 있어 미국 시장에서의 성패 여부가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의 경우 독일산 브랜드들이 고급차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면서 “아직은 40%대의 낮은 시장 지배력을 가진 미국 시장에서 고급차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독일 3사를 제외한 일본과 나머지 유럽계 고급차들의 미국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고 이곳에서의 성패 여부가 중국, 그리고 유럽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5위권 브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고급차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은 현대차가 제네시스의 첫 공략지로 미국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다.

최근 미국 현지에서 만난 현대차모터아메리카 관계자는 “미국은 도전 필요성과 가능성이 충분한 고급차 시장”이라며 “내년 중반 G90(국내명 EQ900)을 시작으로 빠르게 라인업을 늘리고 고성능 디비전 N브랜드와의 시너지를 활용하면 단기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포르쉐는 LA컨벤션 센터 페트리 홀 전체를 전시관으로 사용했다. 미국은 포르쉐의 최대 시장이다.

그러나 현대차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만만치가 않다. 1989년 북미 시장을 겨냥해 출범한 도요타 렉서스 브랜드가 자리를 잡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닛산 인피니티, 혼다 싸이언 등은 오랜 시간과 투자에도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 시장 진출 이후 30여 년 동안 가지고 온 ‘저렴한 차’ 이미지를 얼마나 빠르고 완벽하게 털어내는지, 그리고 디자인과 성능, 첨단 기술에서 어떤 차별화를 갖게 될지도 숙제다. 무엇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일도 시급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지 않을리가 없다.

또 제품경쟁력을 브랜드 경쟁력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자동차에 담긴 보이지 않는 감성 차별화도 시급하다. 누구나 특별한 차를 타고 있다는 감성 가치를 만족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좋은 차만 갖고서는 안된다.

혼이 담긴 차, 여기에 걸맞은 워런티,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서비스와 제품 등 부수적인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따라서 제네시스 EQ900이 고급차가 되기 위해서는 ‘감성과 본질’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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