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EQ900, 모하비 사막 쾌속질주

  • 입력 2015.11.23 10:59
  • 수정 2015.11.23 11:12
  • 기자명 오토헤럴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서부의 거대한 사막, 모하비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아침 일찍 출발을 했는데도 오전 출근 시간과 겹친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은 지독한 정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다운타운을 빠져 나오고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민둥산이 끝없이 이어진 138번 하이웨이를 타고 또 한참을 달려야 한다.

LA 다운타운을 출발, 2시간 남짓을 달리자 수 천 개의 풍력발전기가 장관을 이루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도로 왼쪽으로 끓없이 이어진다. 그 끝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수명이 다한 대형 여객기를 해체하거나 정비를 해서 되파는 거대한 비행기 해체장이 나온다.

이 곳을 지나 한참을 더 달리자 사막 한 가운데 현대ㆍ기아차 캘리포니아 주행시험장이라는 큰 표지석이 나왔다. 모하비 사막 중심부에 헬리콥터에서도 전체 전경을 담을 수 없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나 되는 크기, 인공위성에서도 식별되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다.

 

EQ900, 극한의 조건을 버텨 내다.

주행시험장에 들어서자 현대차가 야심 차게 내놓은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차 EQ900가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 렉서스 LS와 함께 세워져 있다.

위장막으로 차체 대 부분을 가렸지만 테스트 도중 발생한 작은 흔적들을 모두 숨기지는 못했다. 뽀얀 먼지가 여기저기 쌓여있고 바람을 맞아 들쳐진 위장막에 타이어는 바싹 열이 올라 있었다. 그런데 앞서 남양연구소에서 봤던 실물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당시 ‘너무 작아 보인다’고 했던 EQ900는 경쟁 모델들과 직접 비교되면서 외관이 주는 위압감에 차이가 없다.

수치도 그렇지만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전장과 함께 전폭과 전고의 느낌도 엇비슷하다. 오히려 낮은 전고와 지면에 바싹 엎드린 듯한 밀착감은 EQ900가 더 뛰어나 보였다. 현대차는 EQ900의 실내도 두툼한 위장천으로 감춰놨다. 직접 운전도 허용하지 않았다. 후석에 올라 범용시험로와 고속주행로, LA 프리웨이의 노면을 그대로 본떠 만든 고정악 시험로 체험만 허용했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EQ900은 강한 인상을 줬다. 이곳 주재원은 “냉정하게 평가해도 EQ900은 렉서스 이상의 상품성을 갖고 있다"며 “S 클래스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가 있지만 렉서스와는 승차감과 주행 안정감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 테스트 주행을 위해 대기 중인 EQ900

첫 번째 코스인 범용시험로에서는 가벼운 슬라럼이 시도됐다. 차체 놀림이 부드럽고 복원력이 아주 빠르다. 이날 EQ900이 보여준 최고 능력은 고속주행에서 나타났다. 전문 드라이버가 아닌 현대차 주재원이 시속 200km의 속력으로 달리며 차선을 변경하는 무리하고 위험한 시도를 하는데도 차체의 좌우 흔들림이나 타이어의 슬립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그는 “EQ900는 차체 골격 구조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강성도 뛰어나다”면서 “고속에서 안정적인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첨단 기술이 적용돼 우리만의 승차감과 핸들링 특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노면이 거칠기로 유명한 LA 프리웨이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프리웨이 시험로에서는 승차감을 결정하는 서스펜션과 쇽업쇼버 등이 적절하게 반응하면서 차체 움직임을 부드럽게, 그리고 최소화시켜 줬다.

후석에서 경험한 것에 불과하고 아주 짭은 시간의 경험이었지만 같은 시험로를 달린 벤츠 S 클래스는 다소 딱딱한 승차감, 그리고 렉서스 LS460은 지나치게 물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숙성에서는 벤츠 S클래스가 직관적이고 렉서스 460이 조용한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 EQ900 딱 그 중간이다. 다만 EQ900는 위장막이 풍절음을 더 발생시켰기 때문에 실제 주행에서 더 나은 정숙성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하비에서 지구 80바퀴 돈 EQ900

EQ900는 지난 1월부터 모하비 시험장에서 내구성과 주행성능 등 전 분야에 걸쳐 실험을 받으며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통하는 차’로 변신해 왔다. 고속 주행로를 포함, 모하비 시험장의 총 시험로 길이는 61km나 된다. 10.3km의 고속주행로는 200km/h의 빠른 속도로 한 바퀴를 도는데 180초가 걸린다.

EQ900은 지금까지 모하비 시험장에서 지구 8바퀴의 거리를 달렸다. 지구 둘레가 4만km니까 32만km를 이곳 모하비 사막의 거친 바람과 살인적인 햇살을 헤치며 달린 셈이다.

EQ900 한 대가 고속주행로를 도는 숫자는 무려 3만 마일, 무려 4800바퀴나 된다. 일반적인 운전 조건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가혹 조건이다.

모하비 시험장은 ‘완벽한 내구 및 R&H, 그리고 승차감’ 확보에 특히 주력했다. 이를 위해 연구원들은 역대 가장 가혹한 시험이 적용됐다고 평가되는 2세대 제네시스보다 더 까다로운 테스트를 진행했다.

차량 한 대가 10.3km의 주행시험로를 시속 200km/h의 속도로 주기적으로 달리며 내구성과 고속 주행 안정성, 외부 소음 등 종합적인 주행 성능을 테스트하고 수정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됐다.

▲ 모하비 현대기아차주행시험장 고속주행로, 총 길이가 10.3km에 달한다.

이곳 연구원은 “EQ900은 신차 개발 시 요구되는 통상적인 테스트 수준을 크게 넘어 진행되고 있다"며 “고속주행로 뿐만 아니라 LA 프리웨이, 진흙길과 비포장로, 사막모드, 트위스트로, 그리고 아주 드문 장등판 시험로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테스트가 진행된다"라고 말했다.

모하비 시험장에만 있는 장등판로 시험로는 2~12%의 경사가 완만하게 이어져 있고 파워트레인의 등판 성능과 오토 크루즈 등 다양한 장비를 실험하는 곳이다.

이곳의 정상에 오르면 모하비 시험장의 장관과 지평선, 저 멀리 네바다 산맥의 위용 등을 한눈에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주행성능 뿐만 아니라 차체 도장과 범퍼, 실내외 액세서리들이 높게는 54도까지 치솟는 모하비 사막의 가혹한 조건에서 버텨 내는 지를 알아보는 실험도 함께 진행됐다.

 

전 세계를 돌며 담금질을 끝낸 EQ900

EQ900의 테스트는 모하비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혹한기 내수 시험을 비롯해 전 세계 가장 열악한 기후와 지형 조건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담금질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EQ900은 모하비 주행 시험장을 비롯한 미주, 아시아, 유럽 등 거의 모든 기후 및 도로 조건을 빠짐없이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미국 데쓰벨리, 스페인 그라나다, 사우디 담만 등의 혹서 지역과 미국 알래스카. 스웨덴 알제프로그 등 혹한 지역에서 시험을 반복했다.

특히 녹색지옥으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는 역대 가장 가혹한 시험 평가로 EQ900의 주행성능과 내구성을 높였고 오스트리아 동부 알프스 크로스로의 12km가 넘는 내리막 도로를 타고 내려오며 목숨을 걸고 제동성능의 한계치를 검증하기도 했다.

 

해외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가능한 모든 가혹 조건의 시험이 진행됐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EQ900의 성공 열쇠가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에 있다고 판단, 가장 한국적인 고급 세단을 바탕으로 각 국가별 현지 상황에 맞는 제품으로 다듬어 공급하는 전략을 세워놨다.

이를 위해 국내 도로 테스트가 꾸준히 진행됐다. 전남 영암 F1 서킷에서는 새시나 차체가 받은 하중 압력, 엔진의 성능, 헤어핀 구간에서 횔이 횡력을 극복하는 R&H 성능과 내구 평가가 진행됐다.

특히 급선회시 차체 안정성을 제어하는 ESC를 끄고 헤어 핀을 강하게 선회하면서 주요 구성품들의 내구성을 살펴보고 운전과 핸들링. 승차감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또 한계령, 대관령, 미시령, 태백 등 산간지방을 계절별로 돌며 한국적 지형에 맞는 주행 특성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2021년 6개 라인업으로 4만 대 목표

한편, EQ900는 내 달 국내 시장 첫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해외 수출은 내년 하반기로 잡혀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G90은 국내에서 연간 15000대, 내년 수출 첫해 북미 5000대를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고급차 시장 규모는 연간 200만 대. IHS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20년에 미국이 250만 대, 중국은 240만 대로 성장이 예상된다.

세계 최대의 고급차 시장은 앞으로도 당분간 미국이 주도해 나간다는 얘기다. 현대차도 여기에 맞춰 2020년 제네시스 라인업을 6개로 늘리고 연간 4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제네시스가 고급차 브랜드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 경쟁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스엔젤레스=김흥식 기자>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