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 강릉 급발진 사고도 제작사 면죄부가 될 '100, 99, OFF'의 숨겨진 비밀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대림대 교수

  • 입력 2023.04.02 09:06
  • 수정 2023.04.02 09:08
  • 기자명 오토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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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지난 40년간 끊임없이 발생했고 요즘 그 빈도가 잦아졌다. 그러면서 단순 사고로 끝나지 않고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급발진 사고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은 물론 사고 후 소송 등에서 지금까지 운전자나 탑승자가 최종 승소한 경우는 아직 없다. 

제작사는 물론 국토교통부도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전체 급발진 의심 사고 중 약 80%는 운전자 실수로 판단하지만 나머지 약 20%는 자동차 자체 결함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급발진으로 의심하는 사고의 연간 신고 건수는 약 50~100건에 달한다. 하지만 해봐도 소용없다는 인식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사고가 많아 연간 2000건 정도로 판단한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전자제어 엔진을 장착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부터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도요타 급발진 사고 관련  소송 중 소비자 변호인 측 빈그룹이 전자제어 시스템 내의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것임을 일부 밝혀냈다. 자동차 급발진은 전자제어 이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고 이후 흔적이 남지 않고 재연도 불가능한 사고라는 점이 확인 된 것이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국과수에서 "제동장치 등이 이상 없이 작동한다"는 앵무새 같은 보고서가 나오는 이유도 바로 전자제어 이상으로 당연히 흔적이 남지 않아서다. 특히 EDR 분석 자료가 하나같이 '100, 99, FF'라는 동일한 기록으로 나와 제작사에 면죄부를 주는 심각한 일이 이어지고 있다. 

100, 99, OFF는 바로 엔진 스로틀밸브가 열린 양, 가속페달 개도량 및 브레이크 작동 여부를 말한다. 스로틀밸브가 100% 열려있고 가속페달을 99%로 밟고 있었다는 상황을 보여주는 수치로 당연히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는 증거로 쓰인다. 즉,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급발진 사고에서 이 데이터는 제작사 면죄부 증거로 늘 활용된다. 

하지만 EDR은 사고기록장치가 아니라 에어백이 터지는 전개 과정을 보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고기록장치로 둔갑했다. 의미가 있고 신뢰성을 얻으려면 비행기 사고기록장치와 같이 별도로 개발해 탑재해야 한다. EDR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고 이후 나온 데이터를 보면 사고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이를 확인해야 함에도 지금까지 무시하고 항상 소비자에게 불리한 근거로 사용됐고 제작사에는 늘 면죄부 자료로 활용됐다. 자동차 급발진 자체가 발작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자동차 두뇌 격인 ECU 자체가 문제가 크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이를 거쳐 나온 기록장치 데이터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화두가 되는 강릉 급발진 사고는 상당히 긴 시간 유지됐고 블랙박스에 충분한 영상과 음성이 담기고 주변 CCTV 영상도 확보돼 있다. 특히 운전자 실수가 아닌 자동차 결함을 유추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이 있어 어느 때보다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 여부를 다퉈볼 여지가 충분하다. 

소송에서 담당 변호사가 EDR의 획일적인 기록을 문제 삼고 국과수에 소프트웨어 조사를 요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자동차가 이상 작동할 정도로 심각한 만큼 하드웨어의 문제가 크지만 근본적으로 이를 명령하는 소프트웨어 문제는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EDR 기록에 100, 99, OFF가 나오는 이유도 바로 소프트웨어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즉, 국과수의 소프트웨어 조사가 그만큼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잘못된 수술의 원인을 환자가 증명해야 하는 식으로 급발진 사고 원인을 피해자가 찾아 내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차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제작사가 밝혀야 한다. 집단소송제나 제한 없는 징벌적 보상제도 있어 소비자 중심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중 어느 하나도 소비자 편을 드는 법이 없어 수입사도 악용하고 있다.

한국법대로 하자는 논리이고 소송이 진행되면 길게 끌어 대법원까지 가자는 식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증명 책임을 제작사가 일부라도 입증하도록 하는 법안이 필요하다. 현재 강릉 사건이 부각하면서 관련 법안 마련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모쪼록 이번에는 자동차 급발진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노력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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