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나는 레인지로버 벨라의 가치 탐구

  • 입력 2017.08.23 00:42
  • 수정 2017.08.23 12:42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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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단 26대만 제작됐던 프로토타입 프로젝트명 ‘벨라’가 레인지로버의 4번째 차 모델명으로 결정된 것부터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이보크를 빼면 디스커버리 혹은 스포츠처럼 보수적인 네이밍에 집착해왔던 랜드로버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벨라는 ‘감추다’ 또는 ‘장막’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라틴어가 뿌리다. 지난 2월 제네바모터쇼 월드 프리미어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 최초로 벨라의 벨라가 걷히고 모든 것이 공개된 곳은 놀랍게도 2017 서울모터쇼였다. 

한국을 그만큼 중요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성적이 신통치 않지만 2016년 랜드로버코리아는 전년 대비 47.8%나 성장했다. 벨라는 기록적 성장을 달성한 랜드로버 코리아를 격려하기 위한 선물이다. 

이 때 백정현 랜드로버 코리아 사장은 벨라를 “랜드로버의 전통과 미래가 담긴 차”라고 소개했다. 전천후 주행 성능과 같은 랜드로버의 정통적 가치에 요즘 트랜드에 맞춰 포장된 도로에서 세단과 같이 매끄럽게 달릴 수 있게 벨라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1억 원대 가격의 타당성

시승 차로 배정된 벨라 D240 SE의 가격은 1억460만 원. 벨라의 7개 라인업 가운데 1억 원대 이하는 D 240S(9850만 원) 하나다. 가장 비싼 모델은 D300 퍼스트 에디션(1억4340만 원)이다. 에디션을 빼면 D300 R 다이내믹 HSE(1억2620만 원)가 가장 비싸다.

안팎을 살펴보면 1억 원대의 가치가 조금씩 보인다. LED를 기본으로 매트릭스며 레이저 같은 기술이 헤드라이트에 사용됐고 테일 라이트에는 3D 기법을 썼다. 고급 트림에 적용되는 매트릭스 레이저 LED가 빛을 내는 거리는 무려 550m나 된다.

전체적인 느낌은 레인지로버 스포츠 그리고 이보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후드의 에어 덕트와 날카롭게 마무리한 범퍼 양 끝단의 황금색 포인트, 루프 전체를 덮은 파노라마 선루프로 차별화했다. 전고는 1665mm로 현대차 코나(1550mm)보다 15mm 높다. 아주 낮은데다 리어쪽으로 기울기가 있어 날렵해 보인다.

 

 

 

 

 

 

스마트 키를 들고 다가가거나 잠금 장치를 해제하면 튀어나오는 문손잡이도 있다. 일정 속도에 도달하면 원위치 하는 도어 레버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운 소재로 기품있게 만들었다. 

최고급 가죽의 베이지와 블랙 투톤을 기본으로 가로가 반듯한 레이아웃, 12.3인치 TFT 가상 클러스터는 실내를 밝게 해주고 시인성이 좋다. 시동을 켜면 30도 가량 자세를 세우는 상단 디스플레이는 AVN, 공조 그리고 전자동지형반응 시스템과 같은 기능 설정은 하단 디스플레이에서 할 수 있게 영역을 나눠놨다.

 

내비게이션은 화려한 디스플레이와 전혀 다른, 구글 지도처럼 맹했다. 접근하는 과정이 번잡한 것도 흠이다. 센터페시아와 콘솔부는 단출하다. 대신 콘솔까지 이어져 있는 블랙 하이그로시와 함께 디스플레이는 손자국과 먼지로 쉽게 더럽혀졌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콘솔에는 소품을 보관하는 수납공간이 부족했고 컵홀더만 가득했다. 스티어링 휠은 사양에 따라 격조가 달라진다. 시승차 D240 SE는 평범했고 리모트 컨트롤의 조작감, 세련미는 떨어진다. 

겉과 속에 비싼 소재와 기술, 독창적인 요소가 많이 사용됐지만 1억 원대 가격을 수용해야 할 마땅한 명분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벨라는 5000만 원대로 시작하고 1억 원이 넘는 트림은 퍼스트 에디션(D300) 하나뿐이다.

 

포장도로에서의 주행 질감

온-로드를 지향한다는 벨라답게 시승은 올림픽대로와 영종대로에서만 이뤄졌다. D240 SE가 품은 인제니움 2.0ℓ 4기통 엔진은 240마력(ps)의 최고 출력과 51.0kg.m의 최대 토크를 낸다. 이 엔진으로 2톤이 넘는 벨라(2035kg)를 7.3초 만에 시속 100km의 속력으로 끌어올린다. V6 3.0 엔진을 품은 D300은 6.3초가 걸린다.

풀 스로틀에 반응하는 엔진의 응답은 빠르다. 최대 토크가 1500rpm부터 시작하지만 거칠지 않게 엔진회전수를 상승시켜주고 4500rpm 부근에서 숨을 고른다. 스피드 게이지가 한계 속도까지 상승하면 엔진 회전수는 3500~4000rpm 사이에서 머물고 정속 주행을 하면 1500rpm을 넘지 않는다.

엔진 회전수를 낮게 쓰고 고속에서도 파워를 작게 끌어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연비는 복합기준 10.9km/ ℓ 를 달성했다. 실주행 연비는 포기했다. 달려야 했으니까. 영종대교의 강력한 바람에 벨라의 횡풍 안정성이 불안했던 것을 빼면 고속 그리고 빠른 레인 체인지에도 차체는 유연하게 대응한다. 균형을 잃거나 조향이 불안하지 않았고 복원도 빨랐다.

 

알루미늄 모노코크 보디의 효율성도 주행 안정성 그리고 차체의 유연한 대응에 한몫을 한다. 알루미늄으로 상체를 가볍게 하자 자연스럽게 무게 중심이 하체로 내려왔고 덕분에 속도가 상승하면 지면과의 밀착도가 높아져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더블 위시본(전륜), 인테그럴 링크(후륜) 서스펜션은 달리는 맛을 부드럽게 하는데 이바지한다. 장담하는데 진동은 소형 가솔린차 보다 덜했고 더 부드럽게 달렸다. 단 바람 소리는 거슬렸다.

트림에 따라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제공되고 토크 벡터링, 어댑티브 다이내믹스, 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과 같은 풍부한 기술로 벨라의 코너링, 승차감, 균형 등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린 것도 칭찬할 만하다.

포장도로에서뿐만 아니라 랜드로버가 자랑하는 트랙션 기술 전자동지형반응 시스템과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 그리고 동급 최고의 지상고(251mm)는 벨라가 오프로드에서도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들이다.

 

차 받으려면 2개월 대기…총평

랜드로버 코리아 관계자는 벨라의 사전 예약 건수는 비공개, 다만 현재 계약자는 2개월을 기다려야 인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초기 선적 또는 공급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흥행 여부를 따져 볼 수 있겠지만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풍절음이 거슬렸다는 것을 빼면 레인지로버의 시작이 됐던 벨라가 지향하는 포장도로의 주행 질감은 꽤 높은 수준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의 디젤 세단과 견주어도 된다. 겉과 속의 디자인 코드와 풍미도 경쟁사 SUV와 확연하게 다르다.

하지만 새 차를 내 놓을 때마다 뭔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디스플레이와 하이 그로시로 덮인 센터페시아와 콘솔의 청결도를 떨어트렸다. 1억원대 자동차가 너무 쉽게,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더러워진다. 와이드 타입 내비게이션은 시원스럽게 보이지만 시인성, 정확도, 접근성이 아쉬웠다.

실내를 밝게 하는 베이지색 대시보드는 아웃 사이드미러의 시야를 가린다. 화려함 이전에 갖춰야 할 효율 또는 실용 등등의 가치가 비싼 값을 받아들이는데 더 유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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