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탱크처럼 튼튼한 미국 스쿨버스 '블랙 라인'에 담긴 의미

  • 입력 2021.03.17 12:00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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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스러운 차를 찾다가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미국 스쿨버스는 한결같이 차체 측면을 두툼하게 감싼 라인이 몇 겹으로 있다. 자동차 기자를 업으로 하면서 솔직히 그 라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왜 있는지 조차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의미, 어떤 역할을 하는지, 미국 스쿨버스가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놀랐다.

미국 스쿨버스 블랙 라인은 실내 바닥과 좌석 중간, 어린이가 앉아있는 위치 3곳을 표시한다. 사고가 났을 때 실내 구조를 빠르게 파악해 어린이를 더욱 더 빠르고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도록 돕는 표시다. 구조요원이 외부 충격이 어느 부위에 있는지, 파손된 정도를 쉽게 파악해 구조를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생명선이다. 

통학버스 측면 주름을 잡은 것도 외부 충격에 대응하는 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일부 주가 다른 규정을 적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미국 통학버스 대부분은 이렇게 차량의 차체 구조에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 통학버스 대부분은 군용 또는 대형 트럭이나 장갑차 프레임을 사용하고 실외, 실내 소재도 외부 충격에 강하게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차체 중량은 물론 보디 강성에 대한 기준이 까다롭고 비상문도 반드시 갖추게 했다. 사고 현장을 담은 사진을 보면 이런 조건에 충족한 통학버스가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다. 험머나 대형 SUV, 픽업트럭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는데도 통학버스는 멀쩡한 사진들이다. 차량 어느 부위와 충돌해도 스쿨버스 충격이 최소화된 모습이다. 

통학버스를 추월하거나 정지해 있을 때 움직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법과 함께 까다로운 차량 안전 기준이 맞물린 덕분에 미국은 통학버스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도 차량 내 어린이가 목숨을 잃는 일은 제로에 가깝다. 1억km를 주행했을 때 0.01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우리나라 학교, 학원 등이 운행하는 통학버스 차량이나 안전 규제는 이에 비해 형편없어 보인다. 통학 차량 안전 규제라고 해야 안전띠, 외부 표시등, 경고 표지판이 툭 튀어나오는 정도면 충분하다. 차량 구조나 차체에 대한 안전 기준이 없다 보니 어린이가 타고 내릴 때 도우미를 반드시 두게 한 정도다.

통학 차량이라고 일반 차와 다를 것도 없다. 흔히 원박스로 불리는 보기에도 아찔한 승합차면 별다른 규제 없이 어린이 통학 차량으로 등록할 수 있다. 통학 차량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 기준 강화를 얘기하지만 관계기관 합동 점검도 승하차 도우미가 있는지, 안전띠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외부 안전등이나 어린이가 차에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버튼이 작동하는지를 살피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전부다.

차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이런 안전기준은 무용지물이다. 어린이 통학버스가 전복되고 다른 차와 충돌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매년 발생하는 것도 차체 안정성에 별다른 규제를 두지 않아서다. 현재 기준대로 완벽하게 안전기준을 맞춰도 차량 차체가 허술하면 무용지물이다. 이러니 어린이 통학버스 사고가 매년 1~3건이 발생하고 적지 않은 생명을 앗아간다.

미국 스쿨버스 사고가 적은 것이 아닌데도 어린이가 목숨을 잃는 사례가 제로에 가까운 건 바로 차량 차체를 제조하고 관리하는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효과다. 바디나 패널 강성이 엄격한 것도 모자라 충돌에 대비하는 강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측면 주름 개수를 정하는 곳도 있다.

2013년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 치여 숨진 김세림 양 사고를 계기로 2015년 세림이법이 만들어졌지만 이후에도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인천 송도에서 발생한 통학버스 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통학버스 신고를 하고 운전자가 교육을 받고 성인 보호자가 동승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어린이 통학버스는 특별한 장치와 구조로 특별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탱크보다 튼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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