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40여 분 남짓 달려 센강 하류,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르노(Renault)의 대표적 승용차 공장 '플랭(flins)'을 찾았다. 1952년 문을 연 플랭공장은 프랑스 내 르노의 생산 시설 중 두 번째 규모로 소형차 '클리오(Clio)'를 비롯 전기차 '조에(ZOE)' 닛산의 소형차 '미크라(Micra)'가 생산된다.
한 눈에도 오랜 역사의 흔적을 담은 공장 한쪽에는 올해로 120주년을 맞이한 르노의 헤리티지를 한 곳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게라지(Garage)'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약 750여대의 클래식 자동차가 전시된 르노 게라지는 사실상 르노의 자동차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루이 르노 마르셀 르노, 페르낭 르노 형제가 르노 자동차를 설립 후 1898년 사실상 첫 양산차로 출시된 '타입 A'를 비롯해 1900년 세계 최초의 살롱으로 선보인 '타입 B'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르노의 1호차 타입 A의 경우 이전 벨트와 자전거 체인을 이용해 구동력을 전달했단 차량들과 달리 프로펠러 샤프트와 디퍼런셜 기어를 탑재해 뒷바퀴로 구동되는 직접 변속기 방식을 처음으로 사용하고 대폭 간소화된 부품과 차체 경량화가 특징이다. 또 이 곳에선 1905년 사상 최초의 대량 생산 택시인 '타입 AG1'를 만날 수 있다.
이 차량의 경우 총 5명이 탑승할 수 있고 1914년 1차 세계 대전에 전선으로 군인을 수송하는 데 사용되며 전쟁에 투입된 최초의 기계식 이동 수단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곳에 전시된 차량 대부분은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고 한쪽은 르노 120년 역사를 기념해 '8'로 끝나는 해에 의미를 담은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각의 전시 차량과 관련된 설명을 담당하던 루도백 비리우 씨는 르노의 마름모꼴 '로장쥬' 엠블럼의 탄생 배경에 대해 "초창기 자동차의 경적은 마차와 같이 외부에 노출된 형태에 머물다가 전자식으로 바뀌며 보닛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때 소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뚫는데서 엠블럼이 탄생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또 르노는 1923년 정도에 로장쥬 엠블럼에 브랜드명을 넣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르노는 세계 최초로 변속기를 사용한 차량을 선보이며 우수한 조작성과 내구성을 바탕으로 파리 택시의 2/3, 런던 택시의 절반 등을 차지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세를 확장 후 1910년에는 유럽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1차 대전 당시에는 탄약과 초기형 항공기 등 군수산업에도 뛰어든 르노는 특히 전쟁 후반기에 출시한 FT-17 전차를 통해 역사상 최초로 회전식 포탑을 채용하며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프랑스 정부는 루이 르노의 사망 후 남은 재산을 몰수한 뒤 1945년 르노를 국유화하고 다시금 대중차 생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국영 체제하에서 르노는 1974년 시트로엥의 베를리에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고 1983년 미국 맥트럭의 대주주가 된 데 이어 1981년 푸조의 유럽 닷지(Dodge) 트럭 사업부 지분을 매입하는 등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96년 민영화된 르노는 1999년 닛산과 자본 제휴를 맺는 한편 루마니아의 다치아 지분도 인수한다. 1980년 초반 에스파스 MPV를 선봉에 내세우며 다시금 업계 선두에 자리한 르노는 이후 디자인 책임자 파트릭 르 케망의 지휘 아래 새로운 디자인 르네상스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