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국민차 ‘폭스바겐’

  • 입력 2012.12.27 07:45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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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볼프스부르그(Wolfsburg)에 본사를 두고 있는 폭스바겐 그룹은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다. 폭스바겐 브랜드와 함께 아우디,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스코다, 세아트, 스카니아, 폭스바겐 상용차 등 9개의 자동차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기업이기도 하다.

폭스바겐의 역사는 193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당시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부자들의 전유물인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선언하고 ‘KdF-Wagen’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그리고 독일 최고의 엔진니어로 명성을 누렸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박사를 담당 책임자로 선정했다.

포르쉐 박사는 히틀러의 프로젝트에 동감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통한 힘-자동차’란 뜻의 ‘KdF-Wagen’대신 국민차라는 의미의 ‘폭스바겐(Volkswagen)’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고 마침내 1938년 폭스바겐이 설립되게 된다.

 

포르쉐 박사는 히틀러가 요구한 어른 두 명과 세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의 엠블럼은 비틀의 엔지니어였던 프란츠 라임스피스(Franz Reimspiess)가 W자 위에 V자가 조합해 공모한 것이 선정되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독일 국민들을 위한 첫 자동차는 그 유명한 비틀(Beetle)이다. 비틀은 히틀러가 생존해 있던 1938년 부터 판매가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생산은 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다. 그리고 이후 25년 동안 포르셰 박사의 디자인과 엔진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며 총 2100만대가 판매됐다. 이는 단일 모델로는 세계 최다 판매 기록이다.

 

비틀의 시대는 새로운 타입의 승용차가 속속 개발되기 시작한 1974년부터 막을 내리게 된다. 푹스바겐은 전륜 구동방식에 수냉식 엔진과 안락함과 실용성이 뛰어난 골프를 개발했고 세계 자동차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작지만 강력한 성능을 갖춘 해치백 골프는 계층과 연령을 뛰어넘는 새로운 자동차의 표본이 됐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됐다.

 

폭스바겐은 화려하기 보다는 꾸밈이 없는 일상적인 실용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다. 히틀러의 국민차로 시작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폭스바겐의 성공비결은 ‘놀라운 완벽함’, ‘끊임없는 혁신’, ‘일생의 동반자’, ‘인류와 환경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네 가지 핵심 가치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1930년 ‘Dr. Ing. h. c. F. Porsche’라는 긴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히틀러가 요청한 독일의 국민차 개발하고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체포돼 20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늦춰왔던 차를 그의 아들과 함께 다시 만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포르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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