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기록적 폭설에도 제설작업 않는 일본, 운전자 스스로 대비해야

  • 입력 2022.12.26 12:12
  • 수정 2022.12.26 14:03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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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2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서울 지역 눈일수(눈이 내린 날)는 7일이다. 2017년 같은 달 기록한 11일 이후 가장 많은 눈일수다. 눈이 내릴 때마다 우리는 어디든, 많든, 적든간에 폭설, 빙판길, 출근길 대혼란, 조난, 복구, 무책임, 늑장 대응 그래서 관재(官災)라는 따위의 온갖 심란한 문구들이 뉴스에 등장한다.

그런 날마다 쌓인 눈에 갇힌 자동차, 언덕길을 오르지 못해 당황스러워하는 자동차, 내리막을 취한 듯 내려오는 자동차, 그러다 길가에 처박히는 자동차 그리고 빙판길 몇 중 추돌 사고를 어김없이 되풀이한다. 올해는 갑작스러웠던 데다 한파까지 찾아온 충북, 호남 지역 피해가 특히 심하다.

우리는 이럴 때마다, 늑장 제설 작업이 피해를 키웠다거나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하며 관재라는 지적을 쏟아낸다. 이게 한 두 번 있는 일이냐, 왜 미리 예측하지 못했냐는 식으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자체 혹은 도로 관리 주체에 묻는다. 눈을 치우고 염화칼슘을 뿌리는 일은 물론이고 눈길, 빙판길 같이 위험스러운 도로를 억지로 가다 발생한 사고까지 관재로 몰아간다.

일본 나고야에서 작은 교토(京都)로 불리는 다카야마(高山)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시라카와고우(白川郷)를 돌아오는 코스로 여행을 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 간 해외여행이다. 다카야마는 해발 3000m 히다산맥(飛山脈) 아래에 있는 산악 지역, 사라카와고우는 눈 내린 풍경이 그야말로 절경이고 부산과 비슷한 위도에 있는데도 눈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눈이 많아도 일본이니까 지자체의 완벽한 대비가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준비한 여행은 엉망이 됐다. 일반 타이어가 달린 차를 빌려 다카야마로 향한 것도 그런 믿음이 있어서였는데 오판이었다. 다카야마가 가까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다행스럽게 많지 않은 눈을 보고 다음 날 별 대비없이 시라카와고우로 향했다.

시라카와고우에 도착하자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내린 눈이 멈추지 않고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눈발의 세기가 조금씩 달라질 뿐,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눈이 내렸다. 살면서 눈을 쳐다보기도 싫은 공포스러운 존재로 생각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새벽녘, 자동차 바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였지만 눈은 멈추지 않았다. 호텔 주차장에 세워 놓은 자동차는 헛바퀴만 돌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호텔 바깥 도로에 제설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도로에 쌓인 눈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 같았으면 구청장이나 도로 관리자의 목이 날아갈 일인데 내린 눈이 그대로 덮여있는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경차부터 버스까지, 제설이 전혀 안 된 도로를 너무 태연하게 달렸다.

빌린 차는 도로에 들기는커녕 자력 이동조차 불가능했다. 호텔에서는 견인차가 올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인근에 스노체인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전혀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떨어진 다카야마로 다시 가 거금을 주고 스노체인을 사 와야 했다. 시라카와고우에서 다카야마로 가는 고속도로 제설작업도 우리 눈으로 보면 어설펐다. 대충 한 듯 빙판길, 눈 쌓인 구간이 더 많았다.

겨우 스노체인을 걸고 제법 긴 언덕길을 타야 진입할 수 있는 도카이호쿠리쿠고속도로(東海北陸自動車道)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얼마 가지 않아 고속도로는 폐쇄가 됐고 이때부터 제설작업은커녕, 제설재 한 톨 뿌려 있지 않은 지방도로를 타야 했다. 캄캄한 밤, 생판 모르는 길, 오가는 차도 드문드문한 낯선 길을 살벌한 심정으로 기어가듯 달렸다. 평소 2시간이면 충분한 150km의 거리를 무려 6시간이나 달려 겨우 나고야로 돌아왔다.

차를 빌릴 때 스노타이어, 고속도로 진입 전 스노체인 선택을 망설인 순간 순간의 안일한 판단이 살면서 가장 혹독한 운전 경험으로 남게 됐다. 돌아와 일본통 지인에게 "왜 제설 작업을 안 하냐"라고 물었다. 그는 "제설차로 눈을 치우기는 하는데 제설제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눈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도심지나 일반도로 제설 작업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날 운전을 하고 안하고는 본인이 결정해야 하고 책임도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스노타이어는 필수"라며 "여기는 겨울이 오기 전 미리 스노타이어나 스노체인을 준비하는 게 일상이고 그래서 웬만큼은 눈이 내려도 운전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라고 했다. 대부분 자동차가 눈 덮인 길, 빙판길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도 스노타이어 효과였다. 거짓말 같겠지만 쌓인 눈이 자동차로 다져져 빙판처럼 변한 도로 를 수 백km를 달렸는데 단 한 건의 사고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정체도 보지 못했다.

만약 서울 도심에 이만한 눈이 내렸다면 어땠을까? 도시 전체 기능은 마비됐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 저기 눈에 갇힌 자동차,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시 제설 대책에 대한 비판, 책임자 처벌 등의 지적이 끓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린 눈이 그대로 있어도 별일 없다는 듯 오가는 일본의 자동차를 보면서, 그럴 때마다 발생하는 대혼란의 책임이 미리 대비하지 않은 스스로에데도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했다. 겨울 대비 스노타이어를 장착한 차가 우리는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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