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vs. 오리지널] 레트로란, 과거에서 현재 또 미래로 이어질 '내리사랑'

오리지널 모델이 성공적이었던 경우에는 레트로 디자인이 새 모델의 성공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레트로 디자인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통해 표현되고 그에 어울리는 제품 특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입력 2022.09.26 15:15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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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디자인은 현대적 기술과 개념을 바탕으로 복고적 디자인 특징을 반영해 만든 제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오리지널 모델이 성공적이었던 경우에는 후광효과에 힘입어 레트로 스타일의 새 모델이 주목받을 수 있는 만큼, 새 모델의 성공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레트로 디자인이 그 자체만으로 성공의 보증수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자동차 업체마다 접근방식이 다르고, 소비자들이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의 전반적 특징과 가치를 납득하느냐는 별개의 문제기 때문이다.

플리머스 프라울러는 미국의 독특한 자동차 문화로 자리잡은 핫 로드(Hot rod) 스타일을 살려 화제가 되었다 (출처: Stellantis)
플리머스 프라울러는 미국의 독특한 자동차 문화로 자리잡은 핫 로드(Hot rod) 스타일을 살려 화제가 되었다 (출처: Stellantis)

디자인 관점에서는 좋은 평을 들었지만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의 대표적 사례는 레트로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플리머스 프라울러와 크라이슬러 PT 크루저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크라이슬러 계열 브랜드가 내놓은 두 모델은 폭스바겐 뉴 비틀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레트로 디자인을 개척한 모델들로 손꼽힌다. 다만 그들은 특정 모델을 재현하기보다는 1930년대 유행하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었다.

크라이슬러 PT 크루저는 1990년대 후반 레트로 디자인을 개척한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 Stellantis)
크라이슬러 PT 크루저는 1990년대 후반 레트로 디자인을 개척한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 Stellantis)

특히 먼저 선보인 프라울러는 미국의 독특한 자동차 문화로 자리잡은 핫 로드(Hot rod) 스타일을 살려 화제가 되었다. 다만 프라울러는 스타일에 걸맞지 않은 성능과 실용성이 전혀 없는 꾸밈새와 부실한 만듦새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크로스오버 SUV 개념으로 만든 PT 크루저는 초반에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아 미국에서만 10년에 걸쳐 100만 대 이상 판매되고, 컨버터블 모델이 더해지기도 했다.

1940~50년대에 쉐보레가 만든 픽업 트럭 디자인을 참고해 만든 쉐보레 SSR (출처: General Motors)
1940~50년대에 쉐보레가 만든 픽업 트럭 디자인을 참고해 만든 쉐보레 SSR (출처: General Motors)

레트로 디자인에 소극적이었던 GM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독특한 모델들을 내놓았는데, 2002년에 만든 쉐보레 SSR과 PT 크루저 디자이너였던 브라이언 네스비트(Bryan Nesbitt)를 영입해 디자인하고 2005년에 출시한 쉐보레 HHR이 대표적이다. 두 차들은 모두 1940~50년대에 쉐보레가 만든 픽업 트럭과 왜건 디자인을 참고했는데,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것도 두 차의 공통점이었다.

GM은 PT 크루저 디자이너였던 브라이언 네스비트를 영입해 쉐보레 HHR을 디자인했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출처: General Motors)
GM은 PT 크루저 디자이너였던 브라이언 네스비트를 영입해 쉐보레 HHR을 디자인했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출처: General Motors)

그러나 크라이슬러와 GM의 초기 레트로 디자인 차들은 단명하거나 제품 수명이 한 세대를 넘기지 못했다. 모두 틈새 시장에 한정된 제품이어서 영향력을 키우기 어려웠고, 플랫폼과 동력계 등을 기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만든 탓에 한계도 뚜렷했다. 그렇다고 해서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장르 개성이 강하지도 않았다. 이후 나온 레트로 디자인 차들 중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포르쉐 911처럼 성공을 거둔 모델은 세대교체와 더불어 새 모델이 나와도 초기 모델의 디자인 특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Porsche)
포르쉐 911처럼 성공을 거둔 모델은 세대교체와 더불어 새 모델이 나와도 초기 모델의 디자인 특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Porsche)

오히려 성공을 거둔 모델들은 세대교체와 더불어 새 모델이 나와도 초기 모델의 디자인 특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차들의 공통점은 제품 자체의 특징이 뚜렷하고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제품 자체의 개성과 장르가 갖춰야 할 자질이 뚜렷하다는 점이 디자인과 어우러진 덕분이다.

지프 랭글러처럼 제품 자체의 특징이 뚜렷하고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모델은 옛 디자인을 이어나가며 발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출처: Stellantis)
지프 랭글러처럼 제품 자체의 특징이 뚜렷하고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모델은 옛 디자인을 이어나가며 발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출처: Stellantis)

포르쉐 911이나 지프 랭글러 같은 차들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911의 경우 996에서 이른바 '달걀 프라이' 헤드램프를 쓴 것, 랭글러의 경우 CJ 시대를 마감하고 랭글러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각형 헤드램프를 쓴 것이 팬들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두 모델 모두 다음 세대 모델에서는 기존 스타일 요소를 되살려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화된 안전 및 환경 관련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와 동력계 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달라졌지만, 그 덕분에 장르 특성을 잘 살린 성능과 더불어 '혈통'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으로 팬층을 더 두텁게 만들 수 있었다.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의 사례 1)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출처: Mercedes-Benz)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의 사례 1)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출처: Mercedes-Benz)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의 사례 2) 케이터햄 슈퍼 세븐 (출처: Caterham Cars)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의 사례 2) 케이터햄 슈퍼 세븐 (출처: Caterham Cars)

정말로 큰 변화 없이 장수한 모델들도 있다. 1979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케이터햄이 1957년에 첫선을 보인 로터스 7의 설계와 권리를 넘겨받아 지금도 생산하고 있는 슈퍼 세븐, 1977년에 처음 생산을 시작한 러시아 라다의 니바(Niva) 등이 대표적 예다. 모건의 현행 모델인 플러스 포 및 플러스 식스도 새로 설계한 플랫폼과 동력계를 쓰고 있지만, 디자인만큼은 1950년대에 첫선을 보인 옛 모델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의 사례 3) 모건 플러스 포와 플러스 식스 (출처: Morgan Motor Company)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의 사례 3) 라다 니바 레전드 (출처: AvtoVAZ)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 사례 4) 모건 플러스 포와 플러스 식스 (출처: Morgan Motor Company)
옛 디자인을 고수하는 장수 모델 사례 4) 모건 플러스 포와 플러스 식스 (출처: Morgan Motor Company)

그런 차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았지만, 모델과 더불어 디자인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오리지널 모델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본질에 충실했던 데 그 이유가 있다. 즉 레트로 디자인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통해 표현되고 그에 어울리는 제품 특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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