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vs. 오리지널] 25.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vs. 랜드로버 디펜더 '소송으로 이어진 인연'

신생 자동차 업체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첫 모델인 그레나디어는 디자인의 모티브가 된 랜드로버 디펜더와 너무 닮아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이김으로써 디펜더의 '정신적 후계 모델'로 빛을 보게 되었다

  • 입력 2022.09.15 08:17
  • 수정 2022.09.15 09:08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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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설립한 신생 자동차 업체 이네오스 오토모티브(Ineos Automotive)는 첫 모델을 생산하기도 전에 화제가 되었다. 그레나디어(Grenadier)라는 이름의 정통 오프로더를 내놓으면서 랜드로버 디펜더를 빼어닮은 디자인을 선보여 주목받았고, 곧 오리지널 디펜더를 만든 재규어 랜드로버와의 송사에 휘말린 것이 화제가 되었고, 소송에서 승소해 무리없이 그레나디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어 정통 오프로더 애호가들로부터 환영받았다.

신생 자동차 업체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첫 모델인 그레나디어 (출처: Ineos Automotive)
신생 자동차 업체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첫 모델인 그레나디어 (출처: Ineos Automotive)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모기업은 영국에 뿌리를 둔 다국적 화학기업인 이네오스다. 이네오스의 전신인 인스펙을 설립하고 현재 이네오스 그룹 회장인 짐 래트클리프 경(Sir Jim Ratcliffe)은 2017년에 오프로더 개발과 생산을 위해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래트클리프 경은 오랜 디펜더 팬이었고, 오리지널 모델의 단종이 아쉬워 재규어 랜드로버와 생산권을 넘겨받기 위한 협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협상이 실패하자 디펜더의 ‘정신적 후계 모델’을 직접 만들기 위해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최신 안전 및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최신식 디펜더를 꿈꿨던 그는 BMW, 마그나 슈타이어 등 업계의 쟁쟁한 회사들과 협력해 제품 개발에 나섰다. 아울러 새 모델 디자인을 위해 토비 에퀴어(Toby Equyer)를 영입했다. 에퀴어는 이전까지 자동차 디자인 경험이 없었던 인물이다. 그는 사회 생활을 건축가로 시작했고, 이후 호화 요트 디자인에 뛰어들어 명성을 얻었다. 

외모는 오리지널 랜드로버 디펜더와 닮았지만 부분적으로 개성 있는 요소를 넣었다 (출처: Ineos Automotive)
외모는 오리지널 랜드로버 디펜더와 닮았지만 부분적으로 개성 있는 요소를 넣었다 (출처: Ineos Automotive)

에퀴어에게 주어진 과제는 당연히 ‘오리지널 디펜더에 가까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포드 브롱코, 미츠비시 파제로,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등 비슷한 성격의 차들과 함께 헬리콥터, 보트 등 자동차 이외의 것들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단순한 디자인이 가장 실용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울러 디펜더 디자인이 주는 친근한 느낌도 살리고자 했다. 그래서 외관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면서, 그레나디어만의 특징을 부여하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그레나디어의 겉모습은 누가 봐도 오리지널 디펜더의 모습을 닮았다. 2박스 스타일의 왜건 차체와 면을 단순하게 처리한 옆 부분, 양쪽 헤드램프를 감싸는 직사각형 패널, 지붕 모서리의 ‘알파인 창’ 등 기본적 요소들은 디펜더 110(롱 보디)와 무척 비슷하다. 그러나 두툼한 보닛과 돌출된 그릴 가운데 부분, 박력있게 처리한 앞 범퍼, 30:70 비율로 나뉘어 마주보고 열리는 비대칭 뒤 도어와 둥근 테일램프 등에는 그레나디어만의 개성이 표현되어 있다.

실내는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디펜더와 뚜렷하게 다르다 (출처: Ineos Automotive)
실내는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디펜더와 뚜렷하게 다르다 (출처: Ineos Automotive)

실내는 디펜더와는 뚜렷하게 다른 모습이다. 대담한 디자인의 센터 페시아에 주요 장비를 모아놓았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대형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맨 위에 배치하고 아래에 시계와 공기 배출구, 그 아래에 각종 장비를 위한 다이얼과 버튼, 스위치를 배치한 모습은 고급 오디오나 계측장비를 연상시킨다. 천장 가운데에 길게 놓인 오버헤드 패널도 비슷한 분위기다. 2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원을 주제로 삼은 것이 돋보인다. 실내 다른 부분은 지극히 간결하고 기능적인 모습이다.

재규어 랜드로버가 그레나디어의 디자인을 놓고 이네오스에 건 지적재산권 소송은 2020년 8월에 영국 고등법원이 이네오스의 손을 들어주며 끝났다. 재규어 랜드로버의 패소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영국 지적재산권청(IPO)이 디펜더의 모습이 ‘충분히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랜드로버가 과거에 오리지널 디펜더의 형태는 물론 디펜더라는 이름까지도 상표로 등록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25년 이상 장수한 오리지널 랜드로버 혈통의 마지막 모델 디펜더 (출처: Jaguar Land Rover)
25년 이상 장수한 오리지널 랜드로버 혈통의 마지막 모델 디펜더 (출처: Jaguar Land Rover)

랜드로버가 아닌 이네오스에게 디자인을 물려준 디펜더는 시리즈 랜드로버의 혈통을 이은 마지막 세대 모델이다. 편의상 5세대 랜드로버로 분류할 수 있는 디펜더는 1983년부터 생산된 나인티(90)와 원 텐(110)을 개선한 모델로, 1990년 말부터 생산되어 2016년 1월에 마지막 차가 솔리헐 공장에서 출고되었다. 25년이 조금 넘는 생산 기간은 오리지널 랜드로버 가운데 가장 길었다.

기본적인 디자인은 이전 모델과 거의 같지만, 앞 유리 아래의 통풍창이 사라지고 대형화된 엔진과 간섭이 생기지 않도록 보닛 윗부분을 부풀린 것 정도가 두드러진 차이점이었다. 기능에 충실하도록 단순하게 디자인한 외형은 1948년에 만들어진 프로토타입부터 이어진 오리지널 랜드로버의 특징이기도 하다.

최종 생산형 디펜더의 내부는 초기 시리즈 랜드로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 (출처: Jaguar Land Rover)
최종 생산형 디펜더의 내부는 초기 시리즈 랜드로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 (출처: Jaguar Land Rover)

최종 생산형의 내부는 넓은 센터 페시아의 양쪽 위에 둥근 공기배출구를 달았고, 초기 모델과는 달리 철판이 드러난 곳 없이 모두 내장재로 마감했다. 트랜스퍼 케이스와 프로펠러 샤프트가 차지하는 공간 때문에 센터 터널이 넓어 실내 공간은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일부 실내 부품은 랜드로버의 다른 모델과 공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오래전부터 써왔던 것을 그대로 쓰거나 부분적으로 개선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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