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vs. 오리지널] 01. 폭스바겐 비틀 '원과 반원의 기하학적 요소'

대규모 양산차 업체에서 시도한 레트로 디자인의 첫 주자로 꼽을 수 있는 차는 1997년에 선보인 폭스바겐 뉴 비틀이다. 혁신적 디자인 변화를 통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에 브랜드의 시발점이었던 오리지널 비틀만큼 좋은 소재도 없었을 것이다. -류청희 칼럼리스트-

  • 입력 2022.06.25 08:53
  • 수정 2022.06.25 09:16
  • 기자명 류청희 칼럼리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고풍 디자인 즉 레트로 디자인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시작된 레트로 디자인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일부 요소를 변형해 당대의 스타일에 접목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 또는 미래적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표현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전체적인 인상은 누가 보더라도 바탕이 된 차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만큼 옛 차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당대 팔리고 있는 차들과 비교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그 무렵 유행이 된 레트로 디자인의 흐름을 레트로 퓨처리스틱 디자인(retro-futuristic design)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규모 양산차 업체에서 시도한 레트로 디자인의 첫 주자로 꼽을 수 있는 차는 1997년에 선보인 폭스바겐 뉴 비틀이다 (출처: Volkswagen)
대규모 양산차 업체에서 시도한 레트로 디자인의 첫 주자로 꼽을 수 있는 차는 1997년에 선보인 폭스바겐 뉴 비틀이다 (출처: Volkswagen)

대규모 양산차 업체에서 시도한 레트로 디자인의 첫 주자로 꼽을 수 있는 차는 1997년에 선보인 폭스바겐 뉴 비틀이다. 폭스바겐 그룹 PQ34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든 뉴 비틀은 기술적으로는 4세대 폭스바겐 골프와 크게 다를바 없었다. 차체 앞쪽에 있는 보닛을 열면 골프와 똑같은 엔진이 가로로 놓여 있었다. 4기통 가솔린 또는 디젤 엔진이 대부분이었지만, 골프와 마찬가지로 VR5 5기통이나 VR6 6기통 엔진이 올라간 것도 있었다.

그러나 안팎만 봐서는 골프와의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뉴 비틀의 디자인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1994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폭스바겐이 공개한 콘셉트 원(Concept One) 콘셉트 카가 그 시작이었다. 당시 폭스바겐 캘리포니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던 제이 메이스(J Mays)와 프리먼 토마스(Freeman Thomas)가 새로운 시대의 비틀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것이 콘셉트 원이었다.

뉴 비틀의 디자인은 1994년에 폭스바겐이 공개한 콘셉트 원이 그 시작이었다 (출처: Volkswagen)
뉴 비틀의 디자인은 1994년에 폭스바겐이 공개한 콘셉트 원이 그 시작이었다 (출처: Volkswagen)

콘셉트 원의 디자인을 이어받은 뉴 비틀은 오리지널 비틀 디자인을 원과 반원이라는 기하학적 요소에 맞춰 단순하게 재해석한 모습이 특징이었다. 완전한 원형에 가까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곡면이 두드러진 앞뒤 펜더와 매끄럽게 이어지는 앞뒤 범퍼, 거의 반원이나 다름없는 윤곽을 지닌 지붕과 원을 잘라낸 듯한 옆 유리 등 반복적 요소들이 차의 전체 이미지를 만들었다.

실내는 오리지널 비틀보다는 훨씬 더 현대적 분위기였지만, 단순한 디자인과 더불어 스티어링 휠 뒤에 놓은 반원형 계기판, 대시보드에 꽂을 수 있는 꽃병과 같은 고전적 요소들을 재치있게 배치했다. 크게 보면 대시보드 아래에서 시작해 뒷좌석까지 이어지는 센터 터널의 형태나 작고 단순한 뒷좌석 등 실내 공간 구성에서도 오리지널 비틀과의 연관성을 느낄 수 있다.

오리지널 비틀의 양산 확정 버전인 VW38이 만들어진 것은 1938년이었다 (출처: Volkswagen)
오리지널 비틀의 양산 확정 버전인 VW38이 만들어진 것은 1938년이었다 (출처: Volkswagen)

오리지널 비틀이 폭스바겐 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차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본격적인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 설계와 디자인이 완성된 것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산 확정 버전인 VW38이 만들어진 것이 1938년이고, 그에 앞서 다양한 모습의 시험용 차가 나온 바 있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최종 양산 버전의 설계와 스타일은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지휘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뉴 비틀과는 달리, 오리지널 비틀의 디자인은 철저하게 '합리적인 구조와 기능을 갖추고 적절한 값에 팔 수 있는 대중차'라는 성격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네 명이 타고 적당한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 당시 독일 도로 환경에서 쓰기에 알맞은 성능과 경제성 등을 고루 고려해 설계되었다. 그리고 디자인은 그 설계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당시 자동차 설계자들이 주목했던 곡면 중심의 유선형 차체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오리지널 비틀은 폭스바겐 디자인의 변화를 예고했던 뉴 비틀의 소재로 안성맞춤이었다 (출처: Volkswagen)
오리지널 비틀은 폭스바겐 디자인의 변화를 예고했던 뉴 비틀의 소재로 안성맞춤이었다 (출처: Volkswagen)

1990년대 중반 폭스바겐 디자인 책임자였던 하트무트 바르쿠스(Hartmut Warkuß)는 콘셉트 원을 두고 '50년 넘게 살아남은 (비틀의)형태를 재해석할 특별한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바르쿠스는 폭스바겐 디자인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제품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었고, 브랜드 제품 전반의 디자인 변화를 예고하는 차원에서 뉴 비틀을 내놓은 듯하다. 혁신적 디자인 변화를 통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에 브랜드의 시발점이었던 오리지널 비틀만큼 좋은 소재도 없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