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시대 남겨야 할 유산 #3] 쉐보레 스몰블록 V8 엔진, '가성비 갑' 대명사

1955년 탄생해 지금까지 명맥 잇고 있는 명작 엔진 중 하나

  • 입력 2021.09.03 15:00
  • 수정 2021.09.28 08:42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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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관련 뉴스를 전하는 외국 웹사이트를 보면, 종종 작은 차에 V8 엔진을 올리는 튜닝 사례를 종종 접할 수 있다. 마즈다 MX-5 미아타나 폭스바겐 클래식 비틀처럼 엔진룸 자체가 작은 차에 V8 엔진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러나 그런 차들에 올렸다는 V8 엔진을 보면 GM 것인 경우가 많다. 흔히 스몰블록(Small Block) V8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 엔진의 특징을 알고 나면 그런 튜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스몰블록 V8 엔진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점이 많고, 어떤 측면에서는 내연기관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에서는 스몰블록 V8이 자동차 역사를 바꾼 엔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미국 편향적 관점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미국이 세계 자동차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1세대 쉐보레 스몰블록 V8 엔진 투시도
1세대 쉐보레 스몰블록 V8 엔진 투시도

그리고 스몰블록 V8이 미국 자동차의 전성기에 GM이 포드와 더불어 미국 시장에서 V8 엔진을 대중화한 원동력인 것도 사실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어쩔수 없이 '다운사이징'을 하기 전까지, GM이 대중차부터 머슬카에 이르기까지 V8 엔진을 폭넓게 쓸 수 있었던 것은 스몰블록 V8 덕분이었다.

스몰블록 V8 엔진은 GM 중에서도 쉐보레의 산물이다. GM이 거느린 여러 브랜드는 오랫동안 각자 연구개발 부문이 있어 엔진도 각자 개발하고 필요한 것들만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중차 브랜드인 쉐보레는 1950년대 전까지는 V8 엔진과 거리가 멀었다. 1917년에 V8 엔진을 처음 개발했지만 수명은 길지 않았고, 그 뒤로는 오랫동안 직렬 6기통 엔진이 주력이었다.

1953년에 처음 나온 쉐보레 콜벳은 멋진 스타일과 달리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어 혹평을 받았다
1953년에 처음 나온 쉐보레 콜벳은 멋진 스타일과 달리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어 혹평을 받았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난 뒤 찾아온 풍요의 시기가 쉐보레에게 새 V8 엔진 개발의 시동을 거는 계기가 되었다. 대중차에서도 출력 경쟁이 시작되며 경쟁 브랜드들과 맞설 강력한 엔진이 필요했고, 특히 야심차게 개발한 스포츠카 콜벳이 빈약한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심장병 환자 취급을 받은 것도 계기가 되었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겨우 28개월 만에 완성되어 1955년에 탄생한 것이 첫 스몰블록 V8 엔진인 배기량 265 세제곱인치(4.3L)의 265 터보파이어(Turbo-Fire)였다. 스몰블록 V8 엔진의 설계 원칙은 단순명료했다. 값싸고 단순하며 내구성은 뛰어나고, 그러면서도 경쟁사인 포드의 V8보다 강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쉐보레 콜벳을 단종 위기에서 살려낸 1955년형 265 터보파이어 V8 엔진
쉐보레 콜벳을 단종 위기에서 살려낸 1955년형 265 터보파이어 V8 엔진

짧은 시간에 완성되었지만, 설계는 영리했다. 90도 각도로 배치한 실린더 뱅크 안쪽에 OHV 방식 밸브를 구동하는 푸시로드 구조를 넣어, 엔진 전체 크기는 직렬 4기통 엔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밸브계가 단순해 무게중심도 낮고 부품 수도 적었다. 관리하기도 편하고 내구성도 뛰어났다. 심지어 그 뒤로 배기량을 키운 여러 버전이 나왔지만, 상당수 부품은 공유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튜닝의 여지가 무궁무진했던 셈이다.

쉐보레는 벨 에어와 콜벳에 먼저 이 엔진을 얹어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엔진은 꾸준히 발전하며 여러 모델에 폭넓게 쓰였고, 나중에는 GM 계열 브랜드의 다른 엔진들을 대체해 GM의 표준 V8 엔진처럼 자리를 잡았다. 스몰블록 V8을 사랑한 것은 GM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핫 로드 애호가가 경주차 제작에 활용했고, 튜너들과 개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다용도로 쓰기에 스몰블록 V8만큼 좋은 소재가 없었다.

2015년 쉐보레가 스몰블록 V8 엔진 탄생 60주년 기념으로 정리한 계보
2015년 쉐보레가 스몰블록 V8 엔진 탄생 60주년 기념으로 정리한 계보

1955년에 나온 1세대 스몰블록 V8은 꾸준히 개선되어 무려 1992년까지 이어졌다. 이후 1992년에 2세대, 1997년에 3세대, 2005년에 4세대, 2012년에 5세대가 나왔다. 2세대 이후로는 성능 이상으로 환경과 소음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개선이 중요한 변화였는데, 그럼에도 주요 특징은 그대로 이어졌다. 실린더 수는 줄곧 8개였고, V자 배치된 양쪽 실린더가 이루는 각도(뱅크각)은 늘 90도였다. 밸브계는 캠 하나로 푸시로드를 움직이는 OHV 형식이고, 실린더 보어 간격은 줄곧 4.4인치(111.8mm)였다.

2019년 세대교체와 더불어 역대 첫 미드엔진 구조로 탈바꿈하며 놀라움을 안겨준 최신 8세대 콜벳 스팅레이도 심장은 여전히 스몰블록 V8이다. LT2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V8 6.2L 엔진은 5세대 스몰블록 V8의 가장 진화한 버전이다. 가변 밸브 타이밍(VVT), 실린더 비활성화(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 AMF) 등 OHV 엔진에 적용 가능한 최신 기술이 모두 담겨 있다.

8세대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에도 스몰블록 V8 엔진이 올라간다. 배기량 6.2L 자연흡기 엔진으로 502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8세대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에도 스몰블록 V8 엔진이 올라간다. 배기량 6.2L 자연흡기 엔진으로 502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이 엔진의 최고출력은 502마력, 최대토크는 65.0kg・m이다. 요즘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들의 엔트리급 미드엔진 모델들이 대부분 600마력 이상의 최고출력을 자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치상으로는 다소 아쉬운 수준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더 저렴한 차값은 숫자에 대한 불만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스몰블록 V8 엔진의 뛰어난 가성비는 지금도 유효하다.

최신 스몰블록 V8엔진은 4.3L, 5.3L, 6.2L 등이 있고, 콜벳 스팅레이뿐 아니라 대형 SUV 중심으로 GM의 여러 다른 모델에도 쓰이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엔진과 주변 시스템이 별도로 판매되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튜너들이 특별한 차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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