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3억5000만원 벤틀리 플라잉스퍼 V8 "뒷자리만 앉으면 절반만 쓰는 꼴"

  • 입력 2021.08.25 08:31
  • 수정 2021.08.25 15:10
  • 기자명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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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12 대비 정확히 107kg 가벼워진 V8 모델은 5.3미터가 넘는 차체를 너무도 가볍게 밀고 나가며 산뜻한 주행감을 나타냈다. 적당히 무게감을 더한 스티어링 휠 반응은 대형 세단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날렵하고 저속과 고속은 물론 어떤 노면 상황에서도 일관된 안정적 승차감이 만족을 넘어 이상적인 느낌이다. 쇼퍼드리븐의 전유물로 여겨지며 뒷자리 승객에게 많은 것들을 양보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어느새 더없이 운전이 즐거운 대형 세단으로 탈바꿈했다. 3.5억 찻값을 제대로 누리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뒷좌석에 승객을 태우고 직접 주행해 볼 것을 권유한다. 

올해로 창립 102주년을 맞이한 벤틀리는 창업 초기부터 르망 24의 연이은 우승을 기반으로 모터스포츠 정신이 깃든 자동차 브랜드로 시작됐다. 한때 롤스로이스에 인수되며 이런 정신이 잠시 희석된 사례도 있었지만, 벤틀리를 더욱 벤틀리답게 만들고 현재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반열에 오르게 한 원동력은 역시 모터스포츠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뒷자리에 안락함보다 직접 스티어링 휠을 잡고 도로를 달리는 맛을 즐겨야 하는 자동차고, 최근 경험한 3세대 플라잉스퍼는 이런 벤틀리 정신을 맛보기에 충분한 모델이다. 

벤틀리 플라잉스퍼는 2005년 1세대 모델이 첫선을 보인 이후 2013년 2세대 그리고 2019년 6월 3세대 모델이 공개됐다. 국내에는 지난해 V8 모델이 프라이빗 형태로 공개된 이후 올해 본격적인 고객 인도가 시작됐다. 벤틀리 3세대 플라잉스퍼 V8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언급했듯 이전 쇼퍼드리븐에서 오너드리븐이 가능하도록 콘셉트가 변화된 부분이다. 플라잉스퍼 라인업에는 좀 더 큰 엔진의 W12 모델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있지만 아무래도 V8 모델은 이들에 비해 오너드리븐이 더욱 강조됐다. 

먼저 해당 모델의 차체 크기는 전장, 전폭, 전고가 각각 5316mm, 2220mm, 1483mm에 휠베이스 3194mm로 대형 세단의 당당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굳이 차체 크기를 비교한다면 제네시스 G90에 비해 전고를 제외한 대부분이 길고 넓으며 특히 전장과 휠베이스의 경우 각각 111mm, 34mm 더 여유롭다. 외관은 2세대에서 3세대로 진화하며 그릴 디자인이 가장 크게 변화됐다. 이전 촘촘한 격자무늬에서 세로형으로 변경되고 크기도 더욱 확대된 느낌이다. 또한 하단 범퍼 역시 크롬 라인이 추가되며 보다 력셔리 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헤드램프 변화도 뚜렷하다. 4개의 둥근 램프는 이전 바깥쪽이 더 큰 디자인에서 안쪽 램프를 더 키우고 내부 디테일을 마치 보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모습으로 변경했다. 측면은 전통적 3박스 세단 모습을 나타내고 무려 22인치 폴리쉬드 휠을 장착하고 V8 윙 뱃지가 더해져 럭셔리 세단의 고급스러움 또한 강조했다. 여기에 앞뒤로 강인한 캐릭터 라인과 특히 후면 도어 손잡이에서 시작된 날렵한 라인은 벤틀리 플라잉스퍼의 전통을 계승한 모습이다. 후면부는 쿼드 배기 파이프가 자리해 차량의 강력한 동력성능을 암시한다. 테일램프는 새로운 랩 어라운드 형태 두툼한 디자인으로 깔끔한 모습이고 램프가 점등될 때 알파벳 'B' 형태를 나타내는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벤틀리 하면 실내 디자인이 가장 기대되는데 이번 완전변경에서도 역시 최고 수준의 마감과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참고로 플라잉스퍼는 지난 6월 30년 역사의 롭 리포트가 주최하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어워드 중 최고의 자동차 인테리어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플라잉스퍼 실내는 벤틀리의 '날개(Wing)' 테마를 적용한 하부 콘솔과 전체 페시아 및 시트가 운전자를 감싸는 형태로 제작됐다. 수평으로 펼쳐져 있는 베니어는 대시보드를 가로질러 도어 쪽으로 이어지며 탑승자로 하여금 실내를 더욱 세련되고 넓게 느껴지도록 한다. 또한 센터콘솔 상단에는 3웨이 로테이팅 방식 12.3인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가 자리해 운전자 취향 따라 다양하게 돌려가며 선택할 수 있다. 시인성도 우수하고 조작감과 UI 또한 이질감이 덜하다. 다만 길 안내와 지도 데이터 등 일부 기능은 국내 적응이 조금 미흡해 보인다. 

이 밖에 실내는 수공예로 제작된 가죽 시트와 다이몬트 퀄팅이 적용된 고급 가죽으로 채워지고 곳곳에 크롬 마감과 천연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며 높은 완성도를 나타낸다. 또 휠베이스가 이전에 비해 130mm 증대되며 뒷좌석 공간은 더욱 늘어나고 다양한 첨단 디지털 장비와 오랜 장인 정신으로 빛나는 것들이 서로 맞물려 더없이 만족스럽다. 

플라잉스퍼 V8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파워트레인이다. W12에 비해 가벼운 차체는 민첩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스티어링 휠에 따른 반응성 또한 우수하다. 실제 뒷좌석에만 앉아 있기에는 운전이 너무 즐겁다. 기본적으로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되어 굉장히 고요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고 또 큰 차체에도 불구하고 48V 전자식 액티브 롤링 테크놀러지와 전자식 올 휠 스티어링, 다이내믹 라이드 등이 결합되어 도심 주행에서도 의외로 굉장히 민첩한 움직임 또한 가능하다. 

플라잉스퍼의 4.0리터 트윈터보 V8 가솔린 엔진은 최대 출력 550마력, 최대 토크 78.5kg.m을 발휘한다. 여기에 가변실린더 방식도 더해져 주행 상황 따라 4개의 실린더만 사용해 연료 효율성 또한 이전에 비해 약 16% 증가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또한 감소했다. 도심에서 더없이 정숙한 실내는 고속도로에서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고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폭발적 성능을 만날 수 있다. 해당 모델의 정지상태에서 100km/h 도달까지 4.1초 순발력을 감안하면 절반만 느껴도 만족할 수준이다. 당연히 고속에서 안정성도 또한 매우 우수하며 흥미롭게도 저속과 고속 모두에서 일관된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또 이때 모터스포츠에서 이어져 온 브랜드 헤리티지가 반영된 듯 커브길 주행에서도 스포티한 주행감을 만날 수 있다. 

벤틀리 플라잉스퍼 V8의 국내 판매 가격은 클래식 3억 3300만원, 스포츠 3억 36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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