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가짜 배기음에 순간 가속력 좋다고 '슈퍼카' 행세하는 전기차

  • 입력 2021.07.21 13:47
  • 기자명 김흥식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운전의 재미를 빼앗는 전기차를 만들 계획이 없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전기차가 별 주목을 받지 않았던 수 년 전 한 슈퍼카 브랜드 CEO가 면전에서 이런 말을 분명히 했다. 내연기관차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었다. 그는 전기차를 슈퍼카로 보지 않았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고성능을 일관성 있게 그리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휘하는 것을 슈퍼카 기준으로 본다. 

뜨문뜨문 순간 가속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전기차가 슈퍼카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전기차는 제로백으로 불리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이미 내연기관 슈퍼카를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항속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랬던 슈퍼카들이 이제 한결같이, 아니 어쩔 수 없이 '배터리'를 찾기 시작했다.

V12 파워트레인을 끝까지 가져가겠다며 고집을 부린 페라리 또 다른 슈퍼카 람보르기니, 애스턴 마틴 등도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같은 부분적인 전동화 또는 순수 전기차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강경하게 전기차를 회의적으로 바라봤던 페라리는 V8과 V6 하이브리드 시스템 도입을 밝혔고 람보르기니도 오는 2023년 하이브리드 슈퍼카, 2025년 순수 전기차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애스턴 마틴은 한 술 더 떠 브랜드를 대표하는 밴티지 로드스터와 DB11 후속 모델을 순수 전기차로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세라티는 오는 2025년 이후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가장 접근이 쉬웠던 포르쉐도 요즘 타이칸에 주력하고 있고 리막과 손 잡고 '부가티 리막'도 출범을 시켰다. 맥라렌, 파가니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 중심으로 전동화 드라이브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브랜드가 내연기관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는 내연기관을 갈 데까지 갖고 가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시기 차이는 있지만 내연기관 신차를 더는 만들지도 팔지도 않겠다는 대부분 유럽 브랜드와 다른 입장이다. 토요타와 마즈다,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은 전기차 이상으로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내연기관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사실 슈퍼카 브랜드가 전기차로 선회하는 것, 일본 브랜드가 내연기관을 고집하는 것, 미국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공생을 수용하는 것 모두는 시장 특성에 맞춘 전략이다. 유럽에 대부분 거점을 두고 있는 슈퍼카는 2035년 내연기관 완전 퇴출을 선언한 EU 정책 때문에, 상대적으로 환경 규제가 느슨한 일본과 미국은 반 전동화나 효율성이 높은 내연기관으로 대응할 수 있어서다.

아쉬운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가든, 엄청난 배기음과 가벼운 떨림으로 심장을 떨리게 하는 슈퍼카가 가까운 미래 우리 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로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게 가상 사운드로 인상적인 배기음을 만들고 팝콘까지 튀겨주고 있지만 밸브와 피스톤, 커넥팅 로드와 크랭크 샤프트와 같은 쇳덩이들이 서로 맞물리고 밀어내며 회전할 때 나오는 그 미세한 떨림을 감동으로 만들어 전달할 수는 없다. 

전기차가 제로백 2초대 벽을 허물기는 했다. 그러나 선풍기 돌듯, 논물 대는 모터처럼 감각을 상실한 차체에서 나오는 그 요란한 소리에 무슨 감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더 전동화에 내몰려 전설적인 해리티지로 위상을 쌓아 온 그 영명한 슈퍼카들이 멸종하는 것은 아닌지 아쉬울 뿐이다. 그대로 두고 '슈퍼 전기차'라는 해괴한 차가 없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