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온통대세' 한 발짝도 떼지 못한 현대차 시동은 언제 걸리나

  • 입력 2021.06.22 11:09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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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가 전국 전시장을 새로운 사명과 로고로 교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줄었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바뀐 일상 가운데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이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꼭 들러 오랜 시간 기다려 맛볼 수 있었던 맛집 메뉴, 빵이나 커피까지 배달이 가능하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매우 능숙해졌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몇 번씩 택배가 도착하고 저녁을 배달 음식으로 때우는 일도 많아졌다. 새벽도 길다며 요즘 당일 배송이 가능한 것도 차츰 늘고 있는 모양이다.

술이나 담배 같은 특정 품목을 빼면 사실 온라인을 통해 세상 모든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사고파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 듣고 나누는 교감까지 온라인으로 통하는 '온통 대세' 시대가 코로나 19로 더 빠르게 확산했다.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다. 테슬라는 온라인으로 모든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시작해 막대한 비용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그걸 지켜봤던 벤츠, 포드, 볼보 등도 코로나 19 확산 이후 비대면 영업이 가능성을 높이자 같은 시스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벤츠와 볼보는 오는 2025년 온라인 판매 비중을 각각 25%, 50%로 늘리겠다고 선언했고  전기차와 같은 특정 차종 또는 특정 지역은 100% 온라인 판매만 하겠다는 브랜드도 속속 나오고 있다. 현대차도 동남 아시아 지역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자동차 온라인 판매가 가장 활발한 곳 가운데 하나가 인도다. 코로나 19 확산 정도가 매우 심각한 인도는 현대차와 기아는 물론,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마루티 스즈키 그리고 토요타와 혼다, 메르세데스 벤츠 또 현지 제작사인 마힌드라와 타타까지 대부분 브랜드가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 운용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에 가장 적극적인 마루티 스즈키는 접근 방식과 구매 절차를 간소화해 전체 판매량 가운데 절반을 온라인이 차지한다.

온라인 직접 판매뿐만이 아니라 기존 소셜 커머스,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채널과도 협력해 자동차를 팔고 있다. 마루티 스즈키는 "자동차 소비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기존 대리점 역할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온통이 대세지만 우리나라 '자동차'는 먼 얘기다. 전시장을 찾아 영업사원 설명을 듣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형식과 절차는 그렇지만 자동차 구매 과정에서 영업사원을 직접 대면하는 일은 많지 않다. 전화로 상담하고 인터넷 뱅킹으로 대금을 치르는 것이 보통이어서 새 차를 받을 때 말고 사람 볼일은 없다.

우리나라에도 자동차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BMW, 아우디, 푸조, 볼보와 같은 수입차 브랜드에 한정된 얘기다. 현대차와 기아 사이트에서 '내 차 만들기'로 부지런히 손을 놀려 원하는 차를 골라놔도 본 계약은 가까운 전시장을 찾거나 카마스터를 만나거나 전화 상담을 해야하고 뭘 주고 받고 해야만 가능하다.

국내 기업 해외 사정은 다르다. 제네시스는 유럽에서 온라인 판매 방식을 전격 도입했다. 현대차와 기아도 해외 일부 국가에서 온라인 판매 방식을 도입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온라인 사전 예약조차 쉽지 않다. 기아는 전기차 ‘EV6’ 사전 예약을 온라인으로 받다가 판매 노조 반대로 결국 포기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받아 전국 영업소에 배정하려고 했던 계획도 무산됐다.

당시 기아는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소비자에게 신차 구매 편의성을 제공하고 새로운 전기차에 대한 시장 평가와 반응을 살펴보려 했다. 온라인 판매는 기업은 막대한 경비 절감 효과, 소비자는 더 저렴해진 제품을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자동차는 구매에 필요한 온갖 정보가 인터넷에 차고 넘치기 때문에 굳이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원하는 차종과 트림, 색상, 옵션 등을 차분하게 조합해 선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업직 사원은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온라인 판매를 생존권이 달린 위기로 보고 있다. 맞는 얘기지만 지금 상황과 미래를 보면 무턱대고 반대 할 일이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영업을 전담으로 하는 신규 인력 채용을 오래전부터 사실상 중단했다. 이 때문에 영업사원 평균 연령대가 50세 이상으로 높아졌다. 영업 인력 고령화와 자연 감소에 따른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영업사원의 '친절한 상담'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 구매자는 많지 않다. 온라인 세대는 특히 그렇다. 그런데도 현대차와 기아는 전국에 1500개에 이르는 전시장을 갖고 있다. 자동차 전시장 대부분이 임대료가 바싼 번화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문제는 하루 방문객이 한 명도 없는 전시장이 제법 있고 연간 판매 실적이 전혀 없는 '무실적' 영업사원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동차 영업사원에게 매장 당직은 기회였다. 전시장을 찾는 방문객은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기본은 했다. 그러나 전시장 방문객이 크게 줄면서 '당직 판매'에 의존해 왔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무실적자가 됐다. 일 년 동안 자동차 한 대 팔지 못해도 이들에게 지급할 연봉 수 천만 원을 꼬박 챙겨야 하는 것이 회사다.

현대차와 기아는 통신판매를 포함해 오프라인 이외 어떤 채널로도 자동차를 판매할 수 없도록 판매 노조와 협약을 맺어놨다.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지금 영업 방식의 틀을 전혀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방문객 하나 없는 전시장을 없애거나 통합하는 일, 무실적자 정리도 회사는 손을 댈 수 없다.

현대차와 기아 노사는 영업 거점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일부터 전향적으로 협의해야 할 때다. 그랬다면 요즘 기아가 전국 전시장을 새로운 사명과 로고로 교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줄었을 것이다. 또 지금과 같은 전통적 영업 방식을 고집하면 이미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구축한 수입차 시장 장악력은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GM과 르노삼성차 같은 외국계, 아우디와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 등 온라인 구매 플랫폼을 열었거나 연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온통 대세에 맞춰 영업 인력이 우려하는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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