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싸구려 수입차 타고 다니는 주제에"

  • 입력 2021.03.15 13:54
  • 수정 2021.03.15 13:57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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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인천 송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참 주차 자리를 찾는데 고성이 들렸다. 짐작건대 새치기 주차를 놓고 시비가 붙은 모양이다. 험한 소리가 나오고 서로 멱살을 잡기 직전 직원이 오면서 상황이 끝났다. 새치기를 당한 것으로 보이는 운전자가 열린 창문 옆으로 지나가면서 내뱉은 말이 귓가에 맴돈다. "싸구려 수입차 타고 다니는 주제에".

새치기로 주차에 성공한 차량은 독일차, 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간 곳에는 국산 프리미엄 브랜드 SUV가 세워져 있었다. 알아보니 수입차 가격은 4000만원대 초반에서 후반, 국산 SUV는 4000만원대 후반에서 5000만원대 후반이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기 것보다 '싸구려 수입차'인 것이 분명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차 가운데 동급 국산 모델과 비교해 가격이 낮은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 그렇기도 했지만 수입차는 브랜드나 모델을 가릴 것 없이 고가라는 인식, 그래서 국내 수입사 마케팅 전략은 고만한 것들까지 프리미엄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수입차를 타는 사람 자신도 과시나 우쭐 감이 없지 않았다.

사정이 달라졌다. 동급 국산차와 수입차 가격이 비슷해졌고 일부 역전되면서 국산차보다 저렴한 '싸구려 수입차'로 볼 수 있는 것들이 꽤 나오기 시작했다. 수입차 가격 대부분이 옵션을 가득 채운 최고급 트림이라고 봤을 때 더욱더 그렇다. 예를 들어 쏘나타 최고급형이 3642만원, 토요타 캠리는 3710만원이다. 사양을 뜯어보면 쏘나타 가격은 더 오른다.

프리미엄 브랜드도 다르지 않다. 제네시스 G80을 BMW 5시리즈와 비슷하게 옵션을 맞추면 가격대가 비슷해진다. 금융 프로모션 또는 조건에 따라 변화가 있지만 폭스바겐 제타는 아반떼 가격으로 팔렸고 티구안은 기아 쏘렌토와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산차 가격이 상승한 때문으로 보는 분석이 있지만 수입차 거품이 빠진 탓이 더 크다. 가격을 내리기 쉽지 않은 수입차들은 언제부터인가 현금 구매, 자사 금융상품 이용할 때 등을 조건으로 파격적인 할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많게는 수 천만원 할인되는 모델도 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수입차를 제값 주고 사면 호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고가일수록 할인 폭이 더 크다. 이달에만 1000만원 이상 할인을 해주거나 많게는 20% 이상 파격 할인을 조건으로 내건 수입차가 수두룩하다. 합리적인 가격, 고객 사은 등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할인 이전 구매한 사람들은 분통이 터질 일이다.

이런 현상은 수입차간 경쟁이라기보다 국산차 품질이 좋아지는 데 따른 경계 대책으로 보는 것이 옳다. 수입차 품질에 대한 맹신이 국산차 품질 향상으로 희석되면서 가격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화가 잔뜩 난 상황에서 내뱉은 말이지만 국산차를 가진, 고급 브랜드나 차급이 높은 모델을 갖고 있으면 '싸구려 수입차'가 더 눈에 들어올 법하다.

자동차를 살 때 가격은 가장 고민스럽게 선택하는 기준이다. 같은 값이면 수입차라는 말도 옛말이다. 요즘은 값은 값이면 국산차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가격대, 차급,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수입차는 무조건 프리미엄이라는 우리 인식이 깨지면 "이게 얼마짜리인데"라며 우쭐 될 일도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가격을 내려도 살아남기 힘든 브랜드가 몇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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