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자동차는 타이밍 '반도체와 전기차'로 갈리는 명암

  • 입력 2021.03.02 12:00
  • 수정 2021.03.02 12:0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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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문까지 닫게 했던 코로나 19가 잦아들자 이번에는 반도체가 발목을 잡았다. 주요 자동차 제작사들이 차량용 맞춤형 반도체(Automotive Semicondctor)를 확보하지 못해 공장문을 닫거나 생산을 축소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연간 80만대가 팔리는 포드 F 150도 최근 생산을 멈췄다는 소식이다. GM, 폭스바겐, 토요타, 테슬라는 언제 끝내야 할지 모르는 감산에 돌입했다.

반도체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신경망이다. 수많은 센서에서 모이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명령을 내리고 작동하게 하는 반도체가 대당 많게는 300개 이상 필요하다. 자동차 모든 계통에 반도체가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하이패스, 오디오, 내비게이션은 물론이고 엔진과 섀시, 운전보조시스템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단 하나만 빠져도 자동차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안전 또는 편의 기능을 상실한다. 

전장화, 전기화 시스템이 많아지면서 반도체 수요와 비용도 급증했다. 10년전 30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차량 1대당 반도체 비용이 요즘 100만원을 넘었다.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제작사마다 각각 다른 조건에 맞춰 생산 공급되는 '맞춤형'이기 때문에 아무 것이나 사용할 수 없다. 지금 수많은 제작사가 반도체 부족난을 겪는 것도 일반적인 것, 다른 회사 것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차량용 반도체 비축량에 여유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감각이 있는 건지, 이런 상황을 예상 했는지 지난해 연말부터 차량용 반도체 확보에 전력을 다했고 필요 이상(?)으로 비축을 해 놨다고 한다. 현대차그룹 역시 자동차 수요가 줄 것으로 보고 생산량을 줄이고 있지만 NXP, 인피니언 등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려고 하자 향후 수요 회복이나 증가에 대비해 확보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현대차그룹과 다르게 다른 제작사는 생산량에 맞춰 반도체 주문량을 크게 낮췄는데 예상과 달리,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 수요가 빠르게 회복하자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했고 가격도 치솟았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수요에 충분한 차량용 반도체를 가장 저렴한 가격에 쌓아놓은 덕분에 예외없이 생산 차질에 직면해 있는 주요 제작사들과 명암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사실 현대차그룹은 10년도 전부터 차량용반도체 독립을 꿈꿔왔다. 인포테인먼트 분야에 적용되는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것이 2008년이다. 아직까지는 외부 의존도가 높지만 차량용 반도체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당장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안 팔리는 차와 팔리는 차, 지역 수요 등에 맞춰 생산량을 조절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전기차 아이오닉 5도 대박이 날 기세다. 사전 예약 대수가 신기록을 세웠고 전기차 수요가 많은 유럽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탑기어, 모터트렌드, 카앤드라이버 등 유명 잡지도 호평 일색이다. 아이오닉 5가 적어도 유럽에서는 단 한 방의 펀치로 테슬라 모델3와 폭스바겐 ID.3를 눕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두고보면 알겠지만 현대차 아이오닉과 곧 출시되는 기아 CV는 글로벌 전기차 판세를 바꿀 것이다.

자동차는 신차나 신기술, 차종과 차급 모두 내 놓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너무 앞서 나가도 뒤쳐저 있어도 안된다. 현대차그룹은 전통적으로 돌다리까지 두들겨 보고 건너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러나 정의선 체제 이후 현대차그룹은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목덜미를 낚아채서까지 선제 대응하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꼭 필요한 보스턴다이낵스를 전격 인수하는가 하면 별 필요도 없는 애플의 거만한 제안을 과감하게 뿌리친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얻은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속화한다면 자동차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자동차는 역시 타이밍이다. 뜬금없지만 소비자 불만에 대응하는 현대차그룹 타이밍도 빨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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