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소형차 멸종국, 1000만원 아래 승용차 달랑 2개

  • 입력 2020.02.27 10:46
  • 수정 2020.02.27 11:03
  • 기자명 오토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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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엑센트

현대차 소형 세단 엑센트의 최고급형은 20년전인 1999년 785만원에 팔렸다. 1990년대 얘기지만 준중형 아반떼도 2005년까지 최저 트림의 가격을 900만원대로 유지했다. 자가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88 서울올림픽 직전까지 기아차 프라이드는 옵션을 다 구겨 넣어도 700만원을 넘지 않았다.

국가 경제와 개인 소득의 규모, 기술 발전 속도로 봤을 때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자동차는 꽤 비싼 물건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시기 500원 정도였던 자장면 값이 지금 5000원으로 10배 이상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의외로 적었다는 것에 위안이 된다.

가격보다는 자동차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변화가 더 컸다. 중고로 산 포니2로도 충분히 폼을 잡을 수 있었던 그 시절과 다르게 지금은 웬만해서는 시선을 끌지 못할 정도로 흔한 필수재가 됐다. 국민 2명 중 1명이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고 일반적인 물가와 비교해 가격 상승률이 높지 않은데도 변하지 않은 것은 '자동차는 비싸다'는 인식이다.

현대자동차 i20

수입차는 말할 것도 없이 국내에서 팔리는 수 백여 종의 자동차 가운데 1000만원 아래의 가격에 팔리는 모델은 단 4종이다. 한국지엠 다마스와 라보를 제외하면 승용차는 달랑 2종, 기아차 모닝과 쉐보레 스파크뿐이다. 이마저도 기아차 모닝은 자동변속기를 걷어내는 독특한 옵션을 선택해야 965만원이 되고 쉐보레 스파크는 수동변속기를 기본 장착한 모델을 982만원에 팔고 있다.

경차를 제외한 국내 브랜드별 최저가 모델은 현대차가 1437만원(아반떼 스타일 MT), 기아차는 1611만원(K3 트렌디 MT), 쉐보레 2408만원(말리부 LS), 르노삼성 2450만원(SM6 SE), 쌍용차 1710만원(티볼리 V1 MT)이다. 브랜드별 전체 판매 모델의 시작 가격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소형차의 부재 때문이다.

현대차 엑센트와 기아차 프라이드, 르노삼성과 쉐보레는 준중형 모델인 SM3와 크루즈가 단종되고 준중형, 중형부터 제품군이 짜지기 시작하면서 자동차의 평균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일본에서는 모델의 수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경차와 소형차가 경쟁한다. 토요타는 120만엔(한화 130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비츠를 비롯해 그보다 낮은 가격대의 다양한 소형 모델을 팔고 있다.

기아자동차 CEED GT

유럽에서도 B 세그먼트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다. 국산 소형차의 부재는 일차적으로 현대차의 잇속 챙기기에 책임이 있다. 현대차는 경차 아토스, 소형차 엑센트를 이윤이 적다는 이유로 단종시켰지만 유럽에서는 i10, i20으로 A, B 세그먼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기아차도 씨드와 같은 걸출한 소형차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국내 투입 여부는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저렴한 가격대의 소형차 부재는 자동차 가격이 무조건 비싸다고 생각하는 소비자 심리의 형성으로 제조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한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제조사 말대로 손해를 보더라도 소형차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소형차의 부재는 시장의 왜곡도 초래한다. 세상 어디에도 준대형 세단이 판매 1위를 차지하는 곳은 없다. SUV 시장도 소형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경제 활동에 제한을 받는 은퇴 세대의 증가로 저렴한 가격대의 소형차가 필요해지면 현대차나 기아차, 그리고 다른 업체도 소형차 시장을 외면하기 힘들 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

현대차가 3월 열리는 2020 제네바모터쇼에 유럽 소형차 시장을 겨냥해 전략적으로 개발한 i20의 3세대 모델을 공개한다는 뉴스에 누군가 "마진이 없다는 이유로 엑센트 단종시켰으니까 유럽에서는 손해 보고 판다는 얘기", "이런 차를 국내에서 팔지 않는 이유가 뭐냐"는 댓글을 보고 푸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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