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느린 자동차 '잠보니' 빙판 스피드의 기록을 만드는 마술사

  • 입력 2020.02.17 08:53
  • 수정 2020.02.17 09:2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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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월드컵 2019-2020시즌이 끝났다.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시작해 어제(16일)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 6차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6차전을 치른 결과는 각 선수의 세계 랭킹이 되고 이 순위에 따라 오는 3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선수권대회 예선에도 사용된다. 공식 명칭은 'ISU 월드컵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겨울 스포츠 중에서 쇼트트랙을 즐겨보는 이유는 솔직히 우리 선수들이 잘해서다. 꼴찌로 달려도 별 조바심 없이 '저러다 치고 나올 것'이라는 확신, 또 그런 기대에 맞게 몇 사람을 추월해 기어코 1위로 들어와 금메달을 따낸다. 또 하나 모터스포츠와 다르지 않은 운동 역학을 보는 재미가 있다. 

쇼트트랙에서 가장 짧은 거리를 질주하는 500m 경기는 엄청나게 빠른 반응으로 시작하는 가속력이 보인다. 단거리의 특성상 출발 신호에 맞춰 얼마나 빠른 시간에 몸이 반응해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안쪽을 선점하는지가 결정되고 승부에도 영향을 준다.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해 여지없이 부정 출발을 잡아내는 심판도 놀랍다)

평균 시속 40km, 빠를 때는 시속 60km의 속도에서 관성을 이겨내며 코너를 공략하는 능력도 놀랍다. 선수의 유연성과 순발력 그리고 판단력이 순간적으로 이뤄지며 쇼트트랙의 승부를 결정짓는다. 자동차로 비교하면 헤어핀에 가까운 코너를 직선에서 도달한 스피드로 달리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고(차체자세제어장치) 왼발과 오른발의 그립력을 제어하는(토크 백터링) 등 코너링 성능을 높이기 위한 수많은 자동차의 시스템을 오직 인간의 능력만으로 해낸다. 동계 스포츠 가운데 가장 빠른 스피드는 알파인스키 활강으로 최고 시속이 160km에 달한다. 봅슬레이와 루지도 시속 150km 이상을 낸다. 

엄청난 스피드 경쟁을 벌이는 빙속 경기에서 매번 가장 느린 속도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종목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답답할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정빙기(整氷機). 격렬한 속도 경쟁을 벌이는 만큼 패이고 깎여 나간 아이스링크의 표면을 고르는 기계지만 엄연한 자동차다. 

잠보니(Zamboni)로 더 잘 알려진 정빙기는 1949년 미국인 프랭크 잠보니가 발명했다. 얼음 공장을 운영했던 잠보니는 아이스링크를 만들었지만 표면을 고르는 작업에 매번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들어가자 정빙기 제작에 골몰했고 1948년 '모델 A'를 제작했다. 이전에 작은 아이스링크 정비에 두시간 가량이 걸렸는데 정빙기는 10분 만에 그 일을 끝냈다.

한 종목이 끝나거나 또는 필요할 때 어김없이 등장한 정빙기는 느린 속도로 지나간 자리를 거짓말처럼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고르게 다져놓는다. 비결은 날카로운 칼날(컨디셔너)로 빙판의 표면을 깎아내고 다시 노즐로 물을 뿌려 부드러운 얼음층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정빙기가 지나간 자리에 유독 윤기가 나는 것은 온기가 있는 물로 얼음의 표면을 부드럽게 만들어 놔서다. 

정빙기라는 기계로 불리지만 움직이는 방식은 자동차와 다르지 않다. 스티어링 휠과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이 있고 엔진의 힘으로 움직인다. 대부분은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지만 요즘에는 전기로 구동되는 모델이 일반적이다. 지금도 정빙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잠보니의 모델 450을 예로 보면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에 리튬 이온 배터리를 탑재, 64마력의 최고 출력을 낸다.

정빙기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후미 쪽으로 얼음 생성을 위한 대형 물탱크가 마련돼 있다. 3840mm나 되는 전장을 갖고 있고 회전반경은 4.57m다. 정빙기는 엄청난 속도 경쟁을 벌이는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지만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쇼트트랙 뿐만 아니라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 스케이팅 등에서도 활약하는 정빙기에는 독특한 별칭이 붙기도 한다.

평창올림픽에서 사용된 정빙기는 소주, 삽겹살, 클라우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전기 모터를 사용하는 정빙기가 일반화됐고 요즘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블레이드의 정밀 제어로 최상의 빙판질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가격은 대상 수 억 원대 이상이다. 한편 세계 최강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월드컵 6차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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