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가 무게를 늘려 연비가 떨어진다는 황당 이유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 입력 2018.07.15 08:41
  • 수정 2018.07.15 08:45
  • 기자명 오토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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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부터 추진해 온 5인승 이상 차량의 탑재 의무화가 슬그머니 없던 내용이 됐다. 차량 소화기는 목숨과도 관계된 비상용품이다. 지난 2017년 국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망자 수는 평균의 3배를 넘기고 있다. 2000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정부의 얘기지만 벌써 수년째 나온 얘기로 관심도는 크게 떨어졌다. 

지금의 상태로는 사망자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에 한계가 있지만, 소화기와 같은 비상용품을 탑재해 제대로 사용했다면 다수의 목숨을 구하지 않았을까. 2016년 국민안전처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현재의 7인승 이상의 차량용 소화기 탑재 의무화를 5인승 이상의 차량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의 관련법을 국민안전처 소방법으로 이관해 소방안전을 도모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자동차 전문가의 의견 등을 이유로 기존 관행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유는 소화기를 적재할 공간이 없고 중량 증가로 연비에 영향을 주고 흉기로 작용할 수 있고 무역마찰 얘기까지 나왔다. 

사람 목숨과 관계된 설비에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작은 소화기 하나가 무슨 공간을 차지하고 무게를 늘린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무게가 늘어나 연비가 준다는 발상은 기가 막힌다. 

공간의 경우도, 필요 없이 무거운 옵션을 끼워 판매하는 메이커의 관행이나 비용을 생각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설치비용도 저렴해서 필요 없는 옵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연비가 준다는 발상, 에코드라이브 운동본부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3급 운전으로 약 30% 이상 연료가 낭비된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한다. 

필요 없는 물건으로 꽉 찬 트렁크만 정리하여도 한 사람 몸무게 저감이 가능하다. 소화기가 살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자동차 전문가의 얘기는 아닐 것이라 본다. 어떤 이유로 살상 무기가 된다는 것인지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자동차 관리법에서 관련 항목을 국민안전처에 뺏기는 국토교통부의 생각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 비용 부담을 우려한 메이커의 로비에 의한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소화기는 간단한 물건이다. 더불어 비상시 유리를 깨는 비상 망치의 의무화도 필요하다.

해외 선진국이 의무가 아니어서 우리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은 해당 국가의 문화나 시스템을 모르는 단순 비교의 무지에서 나온 핑계다. 차량에 화재가 발생하면 사진을 찍거나 구경하느라 정체가 발생하는 것이 우리지만 해외 선진국은 너도나도 하나씩 소화기를 꺼내 함께 불을 끄는 것이 보통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차량 화재는 하루 평균 13건, 연간 5000건이 넘는다.  누구나 운전을 하면서 한 두 번은 볼 정도로 많고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당할 수도 있는 일이고 재산상 손실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다른 화재와 달리 자동차 화재는 유류로 인해 확대가 빠르고 크며,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만큼 초기 진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소화기와 비상 망치는 트렁크가 아닌 비상시 바로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운전석 주변 설치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비상용품의 의무 비치는 고사하고 면허 취득 때 비상조치의 방법 등 교육 자체도 없다. 관련 교육 그리고 비상 장비의 비치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불이 나거나 유리창을 깰 필요가 있는 사고가 나면 운에 맡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의무화 과정을 보면 참으로 어이없고 심각한 책임 회피라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전체를 보는 시각으로 생명 한명 한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았으면 한다. 

차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전이 필요한 것이고 차량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전체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당연히 차량용 소화기 탑재 의무화와 비상 망치의 탑재는 꼭 재추진돼야 하며 더불어 선진국과 같이 안전 야광조끼도 포함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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