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타이어, 20년 만에 100년 기업을 따라 잡은 비결

  • 입력 2018.04.02 13:35
  • 수정 2018.04.02 13:55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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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타이어가 해외 메이커의 OE 제품으로 공급된 것은 1999년 일본 다이하쓰 경상용차 ‘하이제트(HIJET)’에 장착된 것이 처음이다. OE는 ‘오리지널 이큅먼트(Original Equipment)’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새 차를 처음 받았을 때 장착돼 있는 타이어를 말한다.

한국타이어는 다이하츠 제품 공급을 시작으로 OE 비즈니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고 2000년 중국 상하이 폭스바겐 산타나, 2001년 베이징 현대 엑센트, 둥펑 기아 천리마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나 국산 타이어는 현대ㆍ기아차의 해외 진출에 따른 협력사 정도의 역할에 머물렀고 이를 통해 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택시 상하이 폭스바겐 산타나에 탑재되면서 가격 대비 우수한 내구성을 갖춘 타이어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국내 타이어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해외 OE 시장 개척에 나선 한국타이어는 2008년까지 현대ㆍ기아차 해외 공장 생산 차종에 집중하다가 그해 크라이슬러 저니(Journey)의 출고 타이어로 채택됐지만 이 때도 그 이상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미쉐린, 컨티넨탈, 피렐리, 브리지스톤 등 오래전부터 타이어 시장을 선점해온 글로벌 기업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현재 내홍을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도 한국타이어보다 늦게 해외 OE 시장에 진출해 여러 완성차 회사에 OE 제품을 공급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와 마찬가지로 크라이슬러 퍼시피카, 스코다 파비아, 닷지 듀랑고 등 대중 브랜드의 일반 모델 공급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력을 인정받으려면 프리미엄 또는 고성능 모델에 OE 제품이 장착돼야 했는데 좀처럼 그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당시의 고충을 말했다. 

국산 타이어가 프리미엄 자동차의 OE 타이어로 채택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복잡하고 정교한 타이어 기술의 한계와 소재 배합이 조금만 달라져도 자동차의 승차감, 코너링, 제동력, 핸들링이 다르게 느껴지는 만큼 타이어 파트너를 바꾸는 일이 흔치 않아서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의 OE 타이어는 소비자의 사소한 불만까지 제조사가 모두 감당을 해야 하므로 최초로 장착된 제품을 고집하는 경향이 어느 곳보다 강했다. 국내 타이어 기업들이 이런 벽을 허물기 위해 주목한 것은 소재와 배합이다. 

대중적인 완성차 OE 시장이 중국의 가세로 치열해지면서 시장을 옮겨 가야 할 필요성이 절박했다는 것도 작용했다. 이때부터 국내 타이어 업체는 연구 인력을 보강하고, 첨단 연구 시설 및 복합소재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제품 포지셔닝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타이어의 주요 소재는 천연 및 합성고무가 사용된다. 여기에 마모가 잘되지 않고 강성을 높이기 위해 카본 블랙이나 실리카 소재가 섞는다. 방향족 또는 파라핀계 오일이 첨가되고 항오존제나 항산화제도 안정제로 사용된다. 

이 밖에 접착제, 반응 촉진제 등 수 많은 소재와 첨가물이 오차 없이 사용돼야만 자동차의 하중을 버텨내며 최상의 구동력과 제동력, 승차감 등에 최적화된 제품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각 소재의 비중 노하우가 제품력의 중요 열쇠가 된다.

타이어의 기술력이 오랜 기간 축적한 노하우에서 판가름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1888년 존 보이드 던롭의 자전거 공기압 타이어로 시작해 대부분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해외 메이커와의 경쟁에서 국내 업체가 물리적 시간을 극복할 방법은 기술 개발 속도가 전부였다. 

경쟁 업체가 한 번의 배합 실험을 할 때, 국내 업체는 같은 기간 두 번 세 번 실험을 하며 기술 축적 속도를 따라 잡았다. 2000년 이후 국내 타이어 기업들의 연구능력이 대폭 확대된 데는 기술을 따라잡아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2010년 이후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타이어는 기존 공급사였던 현대ㆍ기아차, 포드, 크라이슬러 외에 BMW, 벤츠, 아우디 등 프리미엄 브랜드와 링컨, 닛산, 토요타, 폭스바겐 등의 고급 모델에 OE 제품을 공급했고 금호타이어도 BMW 일부 차종에 장착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가장 뒤늦게 프리미엄 완성차 OE 시장에 뛰어든 넥센도 지난해 포르쉐 공급을 성사시키며 기존 공급사였던 미쉐린 및 컨티넨탈, 피렐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국산 타이어 기업의 꾸준한 연구 개발과 집중 투자는 최근 미래형 자동차의 선두로 치고 나가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타이어가 보유한 고무와 실리카의 최적 배합 IMS(Innovative Mixing System) 기술, 금호타이어의 내마모용 마이크로 구조 변경 합성고무 등은 이미 우리의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산 타이어는 이미 확보한 기술만으로도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 OE 공급을 크게 늘려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에도 벌써 금호타이어가 해외 매각을 놓고 주춤하는 사이 한국타이어가 아우디 뉴 RS4 아반트에 프리미엄 제품인 벤투스 S1 에보2 타이어 공급을 성사시켰다.

한국타이어는 또 BMW M4 GT4에는 벤투스 F200과 Z207 공급도 성사시켜 국산 타이어가 과거 대중적인 모델의 OE 위주로 공급됐다면 이제는 고성능 차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타이어 회사의 기술과 품질, 미래 경쟁력이 어떤 브랜드, 어떤 차종의 OE로 공급되고 있는지를 놓고 판단할 수 있다고 봤을 때 국산 타이어와 수입 타이어의 격차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BMW와 벤츠, 아우디 등 세계적인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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