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 벤츠 박물관 ‘역사를 담은 위대한 공간’

  • 입력 2017.09.15 09:27
  • 수정 2017.09.15 10:2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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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기록한 자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실증에 따른 객관적 서술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증이 가능한 사물의 역사는 보이는 그대로, 그래서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주관적 판단으로 해석한다.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 가에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이 그렇다. 뫼비우스의 띠 세 개를 나선형으로 겹쳐 놓은 듯한 이 독특한 조형의 건물 속으로 들어가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여정을 오롯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만나 볼 수 있다.

▲독일 슈트트가르트 메르세데스 벤츠 뮤지엄

프랑크푸르트에서 모터쇼 일정을 마치고 2시간 넘게 달려 벤츠 박물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57분, 정문 쪽이 아니면 10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입장료 10유로, 우리 돈 1만3500원을 주고 관람권과 가이드 맵을 받아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벤츠 역사’의 기행이 시작된다. 관람은 캡슐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 다시 내려오는 동선을 따라가는 식으로 이뤄진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20세기 이전까지 인간의 이동 수단으로 군림했던 말(馬)이다. 그리고 말의 시대를 종식한 역사적 발명품,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다임러의 모터쿠세가 시야에 들어온다. 

빙 둘러 두 선구자의 이야기와 벤츠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가솔린 엔진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젊은 시절의 칼 벤츠, 그의 가족이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찍은 기념사진 등도 보인다.

▲ M1 Pioneers(1886~1900) The Invention of the Automobile
 

이곳에서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가면 ‘혁신적인 선구자’ 벤츠가 창조해낸 모든 역사를 좇는다. 예전 방앗간에서 봤던 벨트 컨베이어가 목재에 쇠를 두른 바퀴를 돌리고, 밤길을 달릴 때 요긴하게 쓰였을 가스등 헤드라이트, 다임러가 만든 최초의 모터사이클 리트바겐(1885년), 항공기와 선박에 사용한 엔진도 만나 볼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복도를 따라 내려가면 다임러 벤츠 ’브랜드의 탄생’을 알리는 공간이 나타난다. 고틀리에프 다임러와 칼 벤츠가 손을 잡고 다임러 벤츠라는 브랜드를 탄생시킨 것은 1926년부터다. 1901년부터는 자신의 딸 이름을 사용해 달라는 한 딜러의 요구로 ‘메르세데스 벤츠’로 이름을 바꾼다.

▲ M2 Mercedes(1900~1014) Birth of the Brand
▲ M3 Times of Change(1914~1945) Diesel and Supercharger

다임러 벤츠의 창조물은 황홀하고 아름답다. 1902 심플릭스 40 PS, 1938 260 D 풀만 리무진, 1930 Typ SS, 1936 500K 스페셜 로드스터 등, 바라만 봐도 심장이 떨리는 모델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장담하는데 벤츠 박물관의 백미는 바로 이곳이다.

▲ M4 Post-war Miracil(1945~1960) Form and Diversity

아래로 내려가면 벤츠가 도전했던 ‘형태와 다양성’의 변화를 만난다. 걸 윙 도어를 활짝 열고 있는 300SL 로드스터와 쿠페 등 속도 경쟁을 벌이기 위한 날렵한 모델이 전시됐다. 

이런 차들이 2차 세계 대전 시기, 군사용 도로였던 속도 무제한 아우토반을 초고속으로 달리면서 사고가 급증하자 벤츠는 ‘안전과 환경’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 M5 Visionaries(1960~1982) Safety and Environment
▲ M6 New Start(1982) The Road to Emisson-free Mobility

바로 아래 전시 존에는 에어백과 안전띠, ABS 등의 당시 첨단 안전사양이 장착된 모델과 시험 차, 더미를 이용한 충돌실험 장면도 재현해 놨다. 

세계 최초의 연료 전기차 네카 1, 공기저항계수를 낮춰 연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벤츠가 시도했던 노력도 여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마지막 전시 존에는 ’은빛 화살처럼 달린 벤츠의 탁월한 경주용 차들’, F1 머신부터 초대형 트럭이 가득 채워져 있다.

▲ M7 Silver Arrows Races and Records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놓치기 쉬운 것도 있다. 각 전시 존 동선의 반대편 공간에 버스와 승합차, 상용차와 특장차 등을 따로 모아놨다. 

이 중에서도 비운의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탔던 500SL, 교황 요한 바오로 3세의 230G 파파모빌, 최고 권력자의 방탄차로 사용됐던 600 풀만 리무진, 비틀스 링고 스타의 190E 2.3 AMG(사진 아래) 등 역사를 담은 공간은 꼭 찾아보기를 권한다. 층수로 보면 4층에 있다.

 

여기까지다. 지금의 벤츠가 보여주고 있는 혁신적 모델은 보이지 않는다. 이걸로도 충분하다는 오만함은 아니다. 각각의 스테이지가 갖고 있는 주제를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 벤츠라는 자신감이 숨겨져 있다.

관람을 시작했던 곳으로 내려와 정문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지금의 벤츠를 만난다. 1층에는 벤츠와 스마트 브랜드의 라인업 그리고 2층에는 EQ 브랜드의 모델과 전기차, AMG 라인업이 전시됐다. 

 

동선을 꼼꼼하게 따르지 않았는데도 족히 2시간이 걸렸지만, 여운은 길게 이어진다. 공장 설계도, 경리 장부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지금의 것들보다 더 완벽한 상태로 전시된 수많은 자동차, 여기에서 드러나고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 자부심, ‘벤츠는 이래서 벤츠고 벤츠일 수 있었구나’라는 부러움이 짙어졌다.

 

1911년 고종 황제의 어차 ‘로열 다임러 리무진’을 자동차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면 이미 우리도 100년이라는 시간을 짚고 넘어섰다. 1955년 최초의 국산 차 시발이 등장한 것도 60년이 지났고 생산 규모의 순위도 전 세계 6위다. 

벤츠에는 미치지 못해도 역사를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할 때다. 언젠가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 고위임원이 “벤츠 같은 규모로 박물관을 지어도 전시할 차가 없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지나간 것을 스스로 미천하게 여기지 않고 차곡차곡 쌓고 기록해 놨다면 지금 우리도 규모는 달라도 벤츠의 것과 유사한 자동차 박물관 하나쯤은 갖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도 쌓여 가겠지…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역사의 물증을 이 잡듯 찾아보고 복원해서 제대로 된 우리의 자동차 역사를 다음 세대에 전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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