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멋진 도발 '우리 리콜합니다'

  • 입력 2013.12.16 00:00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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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매우 희귀한 '보도자료'가 나왔다.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자사 차량의 리콜 사실을 보도해 달라며 국내 미디어에게 보낸 참고자료다. 자료에는 리콜의 사유, 그러니까 어떤 결함 때문에 리콜을 실시하는지, 무엇을 수리하는지, 대상 차종은 무엇이고 언제부터 무상 수리가 시작되는지의 내용이 소상하게 담겨져 있었다.

같은 날, 국토교통부는 모두 4건의 리콜 관련 보도자료를 냈다. 두 건은 폭스바겐과 아우디, 나머지 두 건은 한국지엠 쉐보레의 토스카 LPG, BMW 모터바이크가 각각의 결함때문에 리콜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 식구인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스스로 리콜 사실을 먼저 공개했다.반면 한국지엠과 BMW의 리콜 사실은 국토부의 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물론 자신들은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리콜 스스로 밝히는 폭스바겐=12월 15일 현재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올 들어 각각 3건씩 모두 6건의 리콜을 실시했다. 폭스바겐은 지난 6월에도 자사의 주력 모델인 골프의 리콜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같은 방법으로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도요타도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글로벌 웹 사이트에 자사 모델의 리콜 사실을 안내하고 공개하고 있다. 한국도요타의 웹사이트 리콜안내 페이지에는 리콜 제도에 대한 안내와 함께 라브-4(RAV)의 리콜 실시 내역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반면 국내 및 수입차 업체들을 포함한 나머지 업체들은 모두 국토교통부에 리콜 사실 고지를 맡기고 있다. 올해 실시된 총 59건의 국토부 리콜 가운데 업체 스스로 리콜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린 메이커는 폭스바겐을 제외하면 단 한 곳도 없다. 가능하다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정서에서 폭스바겐이 벌인 이 의외의 행동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긍정적이다.

한 소비자는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를 우리가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리콜을 해야 할 분명한 사유가 있는 결함까지 어물쩡 넘어가려는 국내외 업체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업 마인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감추기에 급급한 소극적 리콜=리콜제도는 1970년대 미국의 변호사 랄프 네이더의 소비자보호운동으로 시작이 됐다. 제품에 결함이 발견됐을 때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결함을 시정하도록 조치하는 대표적인 소비자 보호제도다.

우리나라에 제조물배상책임법이 마련된 것은 2000년, 법 시행이 시작된 것은 2002년이며 자동차 관련 리콜이 본격 시작된 것은 2004이다. 자동차 업계의 로비로 초기 소극적이었던 리콜은 이후 자동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소비자의 권리강화 요구로 크게 늘기 시작했고 올해에는 대상 차량의 수가 1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이 되고 있다.

문제는 폭스바겐, 도요타와 같은 극히 일부의 업체를 제외하고 대 다수의 업체들이 리콜 사실 자체를 소비자들에게 적극 알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제작결함 센터의 조사 등을 통해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정돼 리콜이 결정되면 제조업체는 각 차량 소유자에게 우편으로 통보를 하고 일간지에 리콜 사실을 알리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편을 통해 소유 차량의 리콜 사실을 통보받는 소비자는 60%를 조금 넘고 있고 최근 일간지 구독자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만큼 상당수는 자기 차량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 이 때문에 리콜을 통한 무상수리가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 리콜 시정율은 7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자동차 리콜현황(2013년 1월~12월 15일 현재/자료 국토부 자동차제작결함센터)

리콜에 대한 인식, 업체부터 바뀌어야=국내 완성차 업체 중에는 리콜 사유가 충분한 중대한 결함을 이름만 바꾼 '무상수리' 조치로 둔갑을 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강제 또는 자발적으로 시정조치(리콜)가 필요한 사안을 무상수리 조치로 사태를 마무리한 해당 업체 직원들은 쾌재를 부르고 대단한 성과로 삼았을 것"이라며 "리콜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이런 편법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체들이 리콜에 인색하고 이를 알리는데 소극적인 이유는 리콜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품질 문제로 이어져 당장 판매가 줄어들기도 하고 경쟁업체의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섣불리 리콜을 받아 들이거나 규모를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폭스바겐과 도요타가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직접 리콜을 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도요타 관계자는 "자동차는 단 한개의 부품 이상만으로도 결함이 발생할 수 있는 제품"이라며 "있을 수 있는 결함을 굳이 감추거나 축소하려했을 때 오히려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콜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데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폭스바겐과 도요타와 같이 제조사가 직접 리콜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안 또는 정서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결함이 있는 차가 단 한대만 있어도 거기에는 소중한 생명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리콜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런 인식의 변화에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제조사들이다.

폭스바겐과 도요타가 세계 1위 경쟁을 벌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저력이 리콜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는 등 소비자들의 안전을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2013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총 59건의 자동차 강제 또는 자발적 시정조치(리콜)가 시행됐으며 이 가운데 승용차종은 44건, 상용차 2건, 이륜차는 13건이 포함됐다. 15일 현재 리콜 건수가 가장 많았던 업체는 BMW와 포드로 각각 6건이다. 총 리콜 대수는 98만 59대로 이 가운데 국내 자동차는 29종 94만 3771대, 수입 자동차는 186개 차종에 3만 6287대가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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