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전기차'

전기차 100만대면 250만 가구 전력 필요

  • 입력 2013.11.04 06:16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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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다. 따라서 충전소를 짓거나 하는 등의 인프라에 투자할 계획은 없다".

지난 1일, 전기차(SM3.Z.E.) 출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질 노만 르노그룹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부회장은 전기차를 개발하고 생산해서 파는 것 말고는 자신들이 할 역할이 없다는 의미로 이 같이 말했다. "전기차 보급을 위해서는 앞으로 5년간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하다".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을 확대하고 세제 혜택을 늘려 달라"며 우리 정부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질 노만 부회장이 이날 밝힌 내용은 지금까지 한국 전기차 시장을 두들리고 있는 다른 수입차 업체와 국내 업체인 현대, 기아차도 다르지 않다. 이런 황당한 요구의 당위성은 전기차가 완벽한 '제로 이미션 비클(Zero Emition Vehicle)'로 인식을 한데서 시작됐다. 시대적 필요성과 정치적 판단, '환경'이라는 대전제를 전기차가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의 의구심이 든다. 과연 몇 대의 전기차가 현재의 내연 기관차를 대체할 수 있을 지(무한정 전기를 생산할 수 없다는 가정에서다), 몇 대의 전기차가 내연 기관차를 대체해야 환경, 그리고 에너지라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지.

대한민국에서 운행되는 차량 1900만대의 10%, 즉 190만대의 자동차를 전기차로 대체했다고 가정해봤다. 항속거리가 130km 남짓한 소형 전기차의 1회 충전 전력량은 20kW다. 100만대의 차가 충전을 한다면 2000만kW의 전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1가구당 일 평균 전력 소비량이 8kWh(월 272.6kWh)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250만 가구가 매일 사용 할 수 있는 전기다.

 

우리나라 총 가구수를 1800만 가구로 계산하면 14%의 인구가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전기를 전기차가 사용한다는 논리다. 물론 전기차의 운행 거리, 충전 횟수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는 700kw급 원자력 발전소 2개 이상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이다.

전기차가 완벽한 친환경 교통수단, 에너지 고갈에 대비한 미래형 자동차를 주목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따라서 친환경 전력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기 이전까지 전기차는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에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총 에너지의 산업별 소비량을 살펴보면 수송분야는 21% 남짓에 불과하다. 56%가 산업용 에너지로 소비되고 있고 나머지는 가정 및 상업, 그리고 공공 부분에서 사용이 된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100만대의 전기차가 보급된다고 해도 대한민국 대기 환경을 개선하고 에너지를 절감하는데 어떤 효과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전기차가 필요하다면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해야 한다. 제품을 팔려는 사람들이 좌판까지 깔아달라는 요구를 계속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미 제한없이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미쓰비시와 닛산 등 완성차 업체들이 충전 인프라를 늘리는데 직접 나서고 있다.

 

이 충전소는 경쟁업체들의 전기차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개방하고 있으며 관공서 등에 설치된 충전시설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는 곳이 많다. 이런 사정은 유럽이나 미국도 비슷하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전기차 전문기업 테슬라도 독자적으로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해서 운영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내년까지 미 전역에 100여개의 전기 충전소를 설치해 98%의 이용자가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질 노만 부회장을 비롯해 전기차 제조사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우리 정부에 떠 넘기듯 하는 자세가 마땅치 않은 이유다. 일부에서는 전기차보다는 더 적극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차, 그리고 이 과정에 도달하기까지 내연기관의 연료 효율성을 높이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타입의 자동차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우치야마다 다케시 도요타 회장은 "순수 전기차 시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순수 전기차 시장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성장할 여지도 분명하다. 반면, 전기차가 미래 운송수단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기차 시장은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 정부는 보조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 정치적 목적의 '녹색성장', 여기에 편승한 부처간 과도한 경쟁이 전기차 산업의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을 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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