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로 대량생산 기초를 다진 ‘닛산’

  • 입력 2013.01.08 07:0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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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자동차 1933년에 설립된 이래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의 전세계 시장에서 닛산 고유의 디자인과 수준 높은 품질로 세계 소비자들의 신뢰와 믿음을 받아오고 있다.

‘일본산업(日本産業)을 줄인 닛산(日産)은 1914년 도쿄에 세워진 카이신자동차공장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나라의 시발과 같은 일본의 제1호 국산차 ‘DAT’는 당시 공동 창업자인 덴 켄지로, 아오야마 로쿠로, 타케우치 메이타로의 이름 가운데 앞 글자를 모두 눠서 만든 모델명이고 한 동안 ‘DAT자동차’로 불리기도 했다.

 

초기에는 군용트럭을 만들다가 1931년 소형차 ‘닷선’을 선보였고 같은 해 닛산그룹이 DAT자동차를 인수해 자회사인 ‘닛산자동차’가 출범하게 된다.

닛산은 1935년 일본 자동차 회사 최초로 자동차 대량 생산(Type 15)을 성공시키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성능, 품질, 안전, 혁신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기술 공백을 회복하는 기간 동안 닛산은 기술력에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닛산은 이 기간 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튼튼한 조직을 구성하고, 후에 닛산이 세계 시장에서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960년대에 ‘닷선(Datsun)’ 이라는 브랜드로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했으며, 대만에 조립 공장 ‘위룽자동차(Yulon Motor Co.)’와 멕시코에 닛산 멕시코를 설립하는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1980년대에는 미국과 영국에 두 개의 해외 생산 기지를 세웠다.

한 때 일본의 선두 자동차 기업으로 맹위를 떨치던 닛산은 1970년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 업체로 명성을 날렸지만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연속되는 적자로 극심한 재정 위기에 처하고 만다. 결국 닛산은 1999년 프랑스 르노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게 되고 그 해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된 카를로스 곤(Carlos Ghosn)이 ‘닛산회생계획’(NRP)을 통해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부활에 성공했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

“그 시작부터 ‘운전자의 가치 있는 경험이 차보다 더 중요하다’는 럭셔리 카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닛산(Nissan)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인피니티(Infiniti)는 ‘고성능 럭셔리 카’라는 새로운 시장 공략을 목표로 지난 1989년 북미 지역에 처음 진출했다.

시판을 시작한 것은 1989년 11월 8일이지만, 인피니티 브랜드 탄생의 배경은 새로운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고자 1985년에 설립된 닛산 내부의 비밀 부서, ‘호라이즌 태스크 포스(Horizon Task Force)’에서 비롯된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미 미국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닛산은 높은 투자비와 큰 위험 요소를 감수해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닛산은 대중적인 브랜드에서 나아가 차별화되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춘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백지 한 장”에서 시작한 호라이즌 태스크 포스 팀은 차를 제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아가 구매와 소유의 전 과정을 통해 고찰하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운전자의 가치 있는 경험을 강조한 새로운 고성능 럭셔리 카 브랜드, 인피니티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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