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사키치의 효심으로 시작된 ‘토요타’
소년 사키치의 효심으로 시작된 ‘토요타’
  • 김흥식 기자
  • 승인 2013.01.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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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ichiro Toyoda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 일본 토요타는 가난한 소년의 효심에서 시작됐다. 

1867년 일본 시즈오카현 야마구치라고 시골마을의 가난한 목수집안에서 토요다 사키치가 태어났다. 아버지가 목수였고 집안의 장남으로서 가업을 이어야 했기 때문에 사키치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사키치는 마음속에서 다른 길을 걷고자 했다.

비록 정규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훈련도 받지 못했지만,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한 근대화의 영향으로 시골소년 사키치는 발명가가 되겠다는 큰 꿈을 꾸게 된다.

소년 사키치가 눈을 뜬 분야는 바로 베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베틀을 돌리며 고생하던 것을 보고자란 사키치는 반드시 보다 쓰기 편한 직기를 만들어 고품질의 직물로 생활을 윤택하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의 직물은 직접 사람의 손을 짠 거친 베였다.

 Toyopet Model SD

가업을 잇기를 원했던 그의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키치는 밤낮으로 직접 설계도를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1894년 지금까지 두손을 사용하던 베틀을 한손으로 작동할 수 있는 그의 첫 발명품인 ‘토요다식 목제인력직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는 기존 베틀에 비해 50%정도 빠르게 직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사키치는 그야말로 기존 제품의 개선에 개선을 거듭했다. 불편한 점이 나오면 끊임없이 연구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냈다. 1894년부터 1914년까지 그가 개발한 대표적인 직기는 총 6개에 달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개선이 오늘날 토요타자동차의 경영정신인 TOYOTA WAY를 이루는 양대 축중의 하나인 ‘끊임없는 개선(Continuou Kaizen)’의 모태가 됐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개선을 통해 ‘사람을 편하게 해주겠다(Respect to People)’로 이어져 토요타 경영철학을 완성하게 된다.

 Toyota Model SF

1924년 그는 그의 일생일대의 대작인 ‘G형 자동직기’의 개발에 성공했다. ‘G형자동직기’는 당시 전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자동직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동경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졸업한 그의 장남 토요다 키이치로’는 대학 졸업후 엔지니어로서 아버지의 자동직기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자동직기 개발 및 생산과정에서의 노하우를 토대로 훗날 토요타자동차를 설립하게 된다.

'G형 자동직기’의 품질이 어느정도였나 하는 예로서 직기의 실이 끊기면 작업자의 안전을 위하여 직기가 멈추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실제 향후 토요타자동차 생산라인의 ‘라인스톱(불량이 발생하면 누구든지 라인을 스톱할 수 있는 장치’)의 기원이 되기도 햐였다.

‘G형자동직기’의 성공으로 사키치는 1926년 ‘토요타자동직기제작소’를 설립한다. 일생의 대작을 완성하고 얼마안된 1930년 토요다 사키치는 타계한다. 평생을 끊임없는 발명의 삶을 살았던 사키치는 타계하기 몇 년 전 미국 유럽방문을 통해 앞으로 자동차가 새로운 산업의 축으로 부상할 것임을 예상한다.

GM,포드 등 미국업체들이 세계 자동차 산업을 좌지우지할 당시, 사키치는 반드시 자신들의 손으로 국산승용차를 만들어보겠다는 새로운 신념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늙고 쇄약했다.

그는 그가 일궈놓은 모든 것인 ‘G형 자동직기’의 자동직기 특허권을 영국 회사인 플랫 브라더스(Platt Brothers)에 매각하여, 당시로서는 거금인 100만엔을 손에 넣게 된다.

 Toyoda Model AA

사키치는 당시 동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아버지의 회사에서 새로운 직기개발에 열중이던 장남 토요다 키이치로를 불러 “이돈은 모두 네가 가질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이돈을 반드시 자동차의 연구에 사용하라” “반드시 우리의 손으로 국산승용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키이치로는 막막했다. “어떻게 우리가 GM과 포드와 같은 거대메이커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시도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이다”

키이치로는 미국출장에 올랐다. 조립라인과 부품라인을 둘어보았다. 돌아와서 그는 10여명으로 토요다자동직기제작소에 ‘자동차사업부’를 만들고 끊임없이 엔진을 분해하고 기술을 익혔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엔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이치로 토요다는 다시한번 미국출장때 본것으로 되돌아가 두가지를 깨닫게 된다. 하나는 그들이 매우 정확한 규격의 부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래서 고품질의 엔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재와 도구를 사용했다.

 Crown Eight

둘째는 조립라인과 같은 대량생산을 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는 직기를 생산하던 컨베이어 시스템을 응용했다.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키이치로는 끊임없는 개선과 불굴의 의지로 10여명의 인원으로 마침내 1934년 최초로 토요다 프로토타입엔진 개발에 성공한다. 1935년 5월 그의 첫 프로토타입 승용차인 모델A1이 탄생하게 되고 1936년 마침내 국산 승용차를 판매를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차를 판매하면서 그들은 브랜드의 이름을 보다 쓰기 쉽고 보다 모던한 ‘토요타’로 바꾸고 A1의 개량형인 AA부터 토요타 브랜드를 사용하게 된다.

이어 1937년 키이치로는 마침내 보다 효율적으로 고객의 니즈에 맞는 승용차의 대량생산을 위해 토요다자동직기에서 분사하여 아이치현 코모로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토요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공장건설 이후 키이치로는 생산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가가 낮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코모로(오늘날의 토요타시) 라인에 증설되는 라인에는 전혀 낭비가 없었다. 그는 부품을 어떻게 이동시키는 것인지, 한 작업에 얼마나 많은 인원의 사람이 필요한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라인에 반영했다.

Celica Camry

그결과 시장수요에 맞게 생산규모는 계속 확대할 수 있었다. 바로 토요타생산방식의 근간을 이루는 저스트인타임의 시초가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을 가로지르는 일본 역사 속에서 토요타자동차 또한 위기를 맞게 된다. 패전 뒤 심각한 디플레이션으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노조와 “인원 감축은 절대 않겠다”는 각서도 썼다. 토요타 키이치로는 “사람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 경영자의 도리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즉 토요타자동차는 경영자만의 소유가 아닌 임직원 모두의 소유라는 경영 철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947년, 토요타는 첫 소형차 모델인 SA을 선보였으나 회사 상황은 더욱 악화돼 49년에는 도산 지경에 몰렸다. 간신히 얻은 은행의 협조 융자 조건에는 대대적인 인원감축이 포함돼 있었다. 1950년, 토요타는 유일한 파업을 맞는데 노사는 이를 계기로 상호 신뢰와 존중의 원칙을 굳히고 이를 오늘날 성장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 철학으로 확립했다.

토요타의 생산 시스템은 1950년대에 들어서 개선되기 시작하였는데 이후 토요타의 생산 표준화인 ‘토요타 프로덕션 시스템 (Toyota Production System)'으로 정착되기에 이른다.

1959년, 첫 해외 생산기지인 브라질 공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생산기지의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충해나갔는데, 이 때부터 토요타는 현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철학은 현지의 공급업체들과의 장기적으로 상호 유익한 관계를 만들어 주었으며 현지에 고용된 직원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MR-S

1970년대에 이르러 토요타 프로덕션 시스템은 TPS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 시스템의 목표는 자원의 낭비를 없애는 것. 이를 위한 대표적인 수단인 JIT(Just-in-time)시스템은 협력업체와의 부품재고량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여 필요할 때 필요한 부품을 가지고 제때 필요한 차를 만드는 것으로 토요타의 대표적인 경영방식이 된다.

또한 끊임없는 개선을 통한 발전을 의미하는 '카이젠(개선)', 토요타 웨이 또한 토요타 공장 및 협력업체들에게 재고와 결함을 줄여주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이는 전세계 토요타 사업을 떠 받드는 근간을 이루고 있다.

현재 토요타자동차는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를 통한 사회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적인 기업의 모습으로 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환경을 위한 자동차 등 최초의 시도와 연구를 거듭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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