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파일럿, 파이터 밥 샙의 느리지만 강력한 잽

  • 입력 2013.01.06 19:52
  • 기자명 김흥식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 멍청하게 생긴 녀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길이 말고는 11인승 국산 미니밴 기아차 카니발R보다 큰 덩치가 주는 위압감 말고는 외모에서도 딱히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겉모습의 황량함 못지않은 인테리어, 그렇다고 비장의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혼다가 지난 해 11월 한국 시장에 출시한 2세대 파일럿(Piolt) 얘기다. 그런데도 파일럿은 미국에서 꽤 잘나가는 패밀리 SUV다.

메이드인 USA, 월 평균 1만대의 베스트 셀링카

MPV니 뭐니 파일럿은 복잡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아주 정직하고 순수하게 SUV(Sport Utility Vehicle)로 소개되고 있다. 혼다의 미국 앨라배마공장에서 만들어진 미국産, 그 곳에서는 8인승이지만 국내 규정상 7인승으로 승인을 받았다.

생소하지만 파일럿은 미국에서 월 평균 1만대, 작년에만 11만4848대가 팔려 나간 동급 최고의 베스트셀링카다.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의 활용가치가 더 요구되는 북미 시장에서 이름값 좀 한다는 얘기다. 사물을 대하는 마음이 긍정적이면 장점이 보인다고 했다.

파일럿도 자세하게 뜯어보니 묘한 매력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산길이나 다닐 법한 큰 덩치는 각 모서리 부분을 부드럽게 처리해 부분적으로는 아주 작은 소형 SUV의 느낌이 나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육중한 차체와 어울리도록 헤드라이트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사이즈를 크게 잡아 적당한 카리스마도 느껴진다.

측면은 18인치 대형 휠(타이어 규격 235mm/60/18inch), 그리고 캐릭터 라인을 최소화하고 심플하게 설계돼 깔끔하고 시원하다.

폭이 큰 테일 게이트 도어의 크롬, 작게 배치된 리어 라이트, 듀얼 머플러의 후면은 전체적으로 반듯한 박스타입의 정사각형에 가깝게 디자인됐다. 덕분에 시각적인 안정감이 뛰어나다.

 

그 흔한 '우드 그레인' 하나 없는 실내

1톤 트럭에도 스티어링 휠과 대시보드에 우드 그레인이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한국의 소비자다. 그 화려함에 익숙해진 한국에서 파일럿의 인테리어는 너무 촌스럽다.

감각적이지도 않고 재질의 고급감도 느끼기 어렵다.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기도, 좋게 말하면 검소하고 평범하다. 그러면서도 기능적이라는 점을 빼 놓을 수가 없다.

기능적, 좋은 재질을 갖고 멋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을 빼면 파일럿 인테리어의 장점은 이 기능적이라는 것에 있다.

화이트 컬러 패널의 클러스터가 주는 시인성, 촉감이 좋고 응답성과 세심하게 배열된 센터페시아의 여러 버튼은 큰 공간임에도 작은 동선만으로 아주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

CD 플레이어와 USB/i-Pod 재생기능, CD 라이브러리(2GB 자체 플래시 메모리) 기능까지 갖춘 오디오 시스템은 음악 CD는 최대 18장까지 저장이 가능하다.

수납공간도 크고 넉넉하다. 글러브 박스 상단, 센터 콘솔에서 센터페시아로 이어지는 공간, 도어 안쪽과 후석에도 큼직한 덩치에 어울리는 여러 개의 넉넉한 수납공간들이 마련됐다.

파일럿의 좌석은 7인승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 8인승으로 사용되는 시트의 구성에서 3열 가운데에 컵 홀더를 배치해 자리 하나를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3열 시트를 접어 화물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고 테일 케이트의 글라스 윈도우는 플립업 기능이 적용돼 작게 열고 닫을 수 있다.

 

파일럿의 진가는 파이터 밥 샙처럼 느리지만 강력한 잽

파일럿은 혼다의 최신 V6엔진 기술을 적용한 3.5L VCM엔진이 탑재했다. 최대출력 257 마력과 최대 토크 35.4kg·m 의 강력한 제원을 갖고 있다.

넉넉한 출력과 함께 큰 덩치에도 가볍게 반응하는 조향감은 도심 주행에서 안정감 있는 주행 능력을 발휘한다.

혼다의 독창적 기술인 ANC(Active Noise Cancellation) 및 ACM(Active Control Engine Mount) 시스템 덕분에 실내에서 체감하는 소음은 가솔린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숙한 드라이빙 능력을 보여준다.

액셀러레이터의 반응, 적당한 탄력과 무르기를 갖고 있는 서스펜션은 일상적인 드라이빙에서 특별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세팅됐고 헤어핀 구간에서의 차체 안정성도 잘 잡아준다.

파일럿에는 센서를 통해 자동 모드와 수동모드를 운전자가 직접 선택하고 각 바퀴의 토크까지 직접 제어할 수 있는 VTM-4 기술이 적용된 파워트레인을 갖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무난한 주행 능력을 보여주지만 덩치가 큰 SUV의 한계는 파일럿도 예외가 아니다. 거친 코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차체의 쏠림, 세밀한 운전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럼에도 파일럿에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충분하다. 베라크루즈나 모하비를 파일럿처럼 쉽고 날렵하게, 특히 민첩하게 움직이기 어렵다고 봤을 때 충분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엄청난 덩치의 파이터 밥 샙이 느리지만 강력하고 효과적인 잽을 날리는 것과 비슷하다.

미니밴과 다른 쉽고 편한 운전과 충분한 기동성, 특히 효율적인 공간을 생각한다면 파일럿은 미국 고속도로 보험협회(IIHS) 충돌 안전성 평가에서 받은 최고 안전등급과 함께 가족형 SUV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파일럿의 국내 판매 가격은 4890만원이다.

저작권자 © 오토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