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미국의 우상 ‘헨리 포드’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미국의 우상 ‘헨리 포드’
  • 김흥식 기자
  • 승인 2013.01.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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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자동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수제품으로 제작되다 보니 값도 비싸고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서민들에겐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100여 년 전 이런 고가의 자동차를 대중들에게 안긴 이가 있다.

V8 엔진을 살펴보고 있는 헨리 포드

바로 자동차 대중화의 초석을 쌓은 ‘자동차왕’ 헨리 포드(Henry Ford·1863~1947년)다. 그가 젊은 나이에 자동차를 바라보며 가졌던 꿈은 “부자들의 전유물인 자동차를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바람대로 오늘의 역사는 부침을 거듭한 끝에 최초로 값싸고 튼튼한 차를 대량 생산한 인물로 그를 기록하고 있다.

포드(Ford) 자동차 회사의 창설자인 그는 자본금 10만 달러와 노동자 12명으로 1903년 포드사를 설립했다. 지인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Dearborn)에 공장을 마련한 그는 5년 후인 1908년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모델 T’를 세상에 내놓는다.

모델T

모델 T는 1999년 ‘세기의 자동차’에 선정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1913년 첫 대량 생산 시스템인 컨베이어식 조립라인을 개발·도입했고 미국 최대의 자동차회사로 우뚝 서게 된다.

헨리 포드와 자동차의 인연은 이렇다. 그가 어렸을 적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말을 타고 이웃 도시로 의사를 데리러 갔다. 하지만 돌아왔을 땐 이미 어머니는 운명을 달리했고, 슬픔에 휩싸인 그는 그때 ‘말보다 빠른 것을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아주 어릴 땐 고장 난 시계를 만지작거리다 조금 자라서 증기자동차를 처음 보고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중에 절친이 된 에디슨의 전기회사에 들어간 일에서부터 이후 전기기술을 익힌 후 가솔린 차량을 제작했고, 차량에 문제가 있자 도끼로 자동차를 부순 일화 등 그는 유소년 시절부터 자동차와 커다란 인연을 맺어왔다.

 

미국인들이 헨리 포드를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드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자동차 대중화의 실현, 그리고 중산층의 확대, 부의 재분배 등이 그것이다. 포드의 성공, 특히 자동차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포드 ‘모델 T’는 1903년 제작에 들어가 1908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피케트 공장(Piquette Plant)에서 본격적인 생산·판매에 들어갔다.

배기량 2,900cc 4기통 엔진은 22마력의 출력으로 시속 60㎞를 달렸다. ‘모델 T’는 1927년까지 18~19년 사이에 1,500만대 이상을 판매해 도요타 코롤라, 폭스바겐 비틀과 함께 세계 3대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고 있다.

포드가 세상에 처음 내 놓은 ‘모델 T’의 천문학적인 판매가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가격경쟁력 덕분이다. 차값이 대당 2,000달러를 넘어서는 고가로 서민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던 시절 ‘모델 T’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850달러에 판매, 중산층에 강하게 어필했다.

또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조립공정 시스템의 도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드는 1913년 말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을 세계 최초로 소개하면서 섀시 조립을 12시간 30분에서 무려 2시간 40분으로 단축하는 믿지 못할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로써 3분에 한 대씩, 노동시간은 10분의 1 수준으로 단축시켰고, 원가절감으로 이어진 효과는 급기야 300달러 이하로 판매가 가능토록 했다. 조립공정의 자동화는 차량 공급의 급속화를 가져왔고, 이 흐름은 중산층의 확대로 이어져 결국 미국 경제가 세계를 주도하는 데 밑거름 역할을 하게 된다.

포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도한 미국인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머스탱’이다.(Mustang·일명 무스탕)이다.

1964년 3월 9일 디어본 시에서 생산된 머스탱은 같은 해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생전 스포츠 경주대회를 무척이나 즐겼던 헨리 포드의 작고 이후 이런 명차가 개발됐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아무튼 머스탱의 흥행몰이는 대단했다.

머스탱은 주행성과 실용성, 가격 경쟁력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출시 첫해 4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수많은 자동차회사들이 이를 벤치마킹 했으며, 1999년 세기의 자동차에 선정되는 등 머스탱은 자동차 역사에 기념비적인 차로 기억되고 있다. 머스탱 시리즈는 높은 인기를 반증하듯 영화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자동차 추격전의 대명사 ‘블리트’와 영화 007 시리즈 ‘골드 핑거’, 우리나라에 소개된 미드 ‘전격 Z작전’ 등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진화를 거듭한 머스탱은 오늘날까지 남성들의 질주 본능을 자극하면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포드는 1989년에 영국의 애스턴 마틴, 재규어, 다임러(메르세데스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AG가 아닌 재규어 자동차의 사업부), 그리고 랜드로버를 사들였고, 스웨덴의 볼보 자동차도 인수했다. 또한 일본 마쓰다의 지분 33.4%를 확보하여 포드 산하의 회사로 만들었다.

마쓰다와 미국 미시간 주 플랫 록(Flat Rock)에 오토 얼라이언스 인터내셔널(Auto Alliance International)이라는 조인트 벤처 공장을 설립한다. 오토 얼라이언스 인터내셔널의 부품 사업부는 이후 비스티온(Visteon)으로 분사한다.

애스턴 마틴,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를 묶어서 PAG(Premier Automotive Group)라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 그룹으로 묶었으나, 포드의 사정이 악화되어 2007년에 프로드라이브에게 애스턴 마틴을, 2008년에 인도 타타그룹에게 랜드로버와 재규어를 매각하였고, 2010년 8월 볼보를 중국의 지리자동차에 매각하였다.

 

따라서 인수를 통한 고급 브랜드 그룹 계획은 4사를 모두 매각함으로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마쓰다 의 지분 또한, 현금 확보를 위해 주식을 매각 하여, 현재 13.4%의 지분만 보유 하고 있다. 2010년 말에는 판매 부진을 이유로 머큐리 브랜드를 폐기하여 포드 본 브랜드와 고급 브랜드인 링컨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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