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로망 페라리 그리고 엔초 페라리

  • 입력 2013.01.02 13:08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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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는 자동차 레이서로 유명했던 엔초 페라리에 의해 1947년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탄생됐다. 레이스와 스피드에 한평생을 바친 고집스러운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이 오늘날 페라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창립자 엔초 페라리가 남긴 것은 페라리의 명성 그 이상이다.

이러한 창업주의 정신을 통해 페라리는 완벽한 성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유명 디자인업체인 피닌파리나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스타일이 더해져 전세계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페라리 엔쵸(사진 페라리 사이버 박물관)

1898년 2월 18일에 모데나(Modena)에서 태어난 엔초 페라리는 1988년 8월 14일에 아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사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포츠카의 설계 및 제작, 그리고 트랙에 일생을 바친 그는 1924년에 알파 로메오(Alfa Romeo)의 공식 선수가 된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는 모데나의 비알레 트렌또 트리에스떼(Viale Trento Trieste)에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스쿠데리아사(社)는 엔초 페라리가 알파 코르세(Alfa Corse)사의 레이싱 매니저가 되던 해인 1938년까지 알파 로메오(Alfa Romeos) 차량의 레이스를 지원했으며,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의 차로 경주를 벌였다.

엔초 페라리는 1년 후인 1939년에 퇴임해 기존 스쿠데리아 페라리 본사에 자신의 회사인 오토 아비오 코스트루찌오니(Auto Avio Costruzioni)를 설립, 낡은 스쿠데리아 건물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이 신설 회사는 1,500 cc 8기통 815 스파이더를 제작했으며, 그 중 2대는 1940년에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경주를 위해 제작됐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모든 자동차 경주가 중단됐고, 1943년 말 오토 아비오 코스트루찌오니 작업장은 모데나에서 마라넬로로 이전했다. 1944년 11월과 1945년 2월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생산은 계속 됐다.

 1967년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출전한 페라리의 레이싱카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디자인과 자동차 생산이 재개돼 페라리의 가장 첫 번째 차량인 1,500cc 12기통 ‘125 Sport’ 가 탄생했다. 이 차는 프랑코 코르테즈(Franco Cortese)에 의해 1947년 5월 11일에 열렸던 삐아첸짜(Piacenza) 서킷에서 데뷔했다. 2주 뒤인 그 달 25일에는 떼르메 디 까라깔라(Terme di Caracalla) 서킷에서 열린 로마 그랑프리(Rome Grand Prix)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이 때부터 페라리의 차들은 전세계의 자동차 경주에서 5000회 이상의 우승을 달성하게 되고, 그 명성은 전설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10년 말까지 페라리는 ▲F1 Drivers 세계 타이틀 15번 ▲F1 Constructors 세계 타이틀 16번 ▲Sports Car Manufacturers 세계 타이틀 14번 ▲르망 24시(Le Mans 24 Hours) 우승 9번 ▲밀레 미그리아(Mille Miglia) 우승 8번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 우승 7번 ▲F1 그랑프리 우승 215번을 기록하며 전 세계인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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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페라리는 F1에서의 뛰어난 기술을 도로 주행용 차량에 접목시켜 개발함으로써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모델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1969년 엔초 페라리는 늘어나는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회사 지분 중 50%를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 그룹(Fiat Group)에 매각했으며, 그 지분은 1988년에 이르러서 90%까지 증가했다. 페라리의 자본 지분은 현재 피아트 그룹 90%, 피에로 페라리 10%로 나뉘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라리는 그 제품들의 특수성 덕분에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돼 온 것이 사실이다. 1977년에는 1950년대부터 페라리의 GT 섀시와 차체를 만들어온 카로체리아 스칼리에티(Carrozzeria Scaglietti)라는 모데나의 자동차 디자인 및 설계 회사가 페라리에 합병됐다.

1997년에는 피아트가 1993년에 인수한 모데나의 전설적인 브랜드 마세라티의 지분 중 50%를 페라리에 넘겼고, 1999년에는 페라리가 마세라티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마세라티는 모데나의 역사적인 스포츠카 제조사였고, 탁월함과 우아함의 대명사였으며, 이탈리아 경주용 자동차 계의 지지 않는 별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페라리의 오랜 라이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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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의 새로운 출발은 페라리 경영진의 진두지휘 하에 진행됐고, 마세라티의 모델과 공장단지 전부가 철저히 재정비됐다. 엔초 페라리는 1988년 세상을 떠났다.

페라리를 상징하는 ‘도약하는 말’ 모양의 전설적인 문양,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의 유래에는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영웅적인 기원이 담겨있는 이 문양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비행기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Francesco Baracca)가 자신의 비행기 기체에 그려 넣었던 것으로 ‘바라카의 말(Baracca’s Cavallino)’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23년 레이서로 활약했던 엔초가 첫 우승을 차지했던 사비오(Savio) 레이스에서 바라카의 부모를 만난 이후, 엔초의 레이스에 감명 받은 바라카의 부모는 행운을 기원하며 아들의 까발리노 람판떼(Cavallino Rampante, 뒷발로 뛰어오르는 말(Prancing Horse)) 문양을 엔초에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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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엔초는 프랜싱 호스와 노란색 방패 문양을 형상화 시켜 페라리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고의 바탕인 카나리아 노란색은 그의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본거지인 마라넬로의 상징 색깔이다.

 

현재 사각형 프레임의 프랜싱 호스 로고는 경주용 차량과 도로용 양산차 등 페라리에서 생산하는 모든 차량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고, 방패형 프레임과 프랜싱 호스 로고는 페라리 레이싱 팀을 상징한다. 또한 페라리 차량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붉은 색은 1900년대 초 국제자동차협회(International Automobile Federation)에서 개최한 그랑프리 경주에 참여한 이탈리아 차량에 부여된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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