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모든 남자들의 로망 ‘람보르기니’

  • 입력 2012.12.28 07:40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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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0 GTV(1963)

폭스바겐 그룹의 또 다른 가족으로 최고 성능의 스포츠카를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열정이 만든 수퍼카의 상징 람보르기니(Automobili Lamborghini S.p.A)는 모든 남자의 로망이기도 하다.

람보르기니의 역사는 창업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의 고성능 수퍼카에 대한 열정과 집념에서 비롯된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2차 대전 후 트랙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잡는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사랑했던 페루치오는 자신의 피아트 차량을 개조해 레이싱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자동차 광이었지만, 처음부터 직접 자동차 회사를 설립할 생각은 없었다.

▲ Miura Roadster(1968)

람보르기니가 수퍼카 제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벌 브랜드인 페라리와의 악연 때문이다. 1960년대 초 페루치오는 당시 인기 스포츠카였던 페라리 250 GT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잦은 클러치 결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농기계를 생산했지만 뛰어난 엔지니어였던 페루치오는 페라라의 이런 결함을 알려주기 위해서 엔쵸 페라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호의를 가지고 찾아간 페루치오에게 엔쵸 페라리가 “당신이 자동차에 대해서 뭘 아느냐? 트랙터나 잘 만들라”라며 문전박대로 수모를 당하고 만다.

자신을 최고의 엔지니어로 생각하며 유달리 자신감과 자존심이 강했던 람보르기니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수퍼카를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즉각적으로 회사 설립에 착수했고 지금의 본사인 볼로냐 인근에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동시에 최정예 기술자들을 끌어 모았고 1962년 마침내 람보르기니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다.

▲ Islero(1968-69)

1963년 람보르기니는 토리노 모터쇼에서 12기통 엔진이 장착된 첫번째 모델인 350GTV를 공개해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된다. 그리고 후속 모델인 400GT까지 잇따라 성공시키며 페라리 엔초는 물론 ‘수퍼카를 만드는 것은 무모한 시도’라고 비웃던 업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1966년은 람보르기니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해다. 당대 최고의 명차이자 지금까지도 최고의 수퍼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우라가 탄생한 해이기 때문이다. V12 4,000cc 엔진을 탑재한 미우라는 최고 출력 350마력, 최고 속도 280km/h라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진정한 수퍼카였다.

▲ Countach LP 400(1973-81)

미우라가 수퍼카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최초로 미드십 (엔진을 운전석 뒤쪽에 배치해 차량의 전후 밸런스를 이상적으로 맞춘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미우라 이후 람보르기니는 페라리를 능가하는 수퍼카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미우라에서 시작된 미드십 방식은 경쟁사인 페라리를 비롯해 경쟁사들도 채택해 지금은 정통 수퍼카의 상징이 됐다.

람보르기니는 1970년대 트랙터 사업 부진과 파업으로 위기를 맞으면서 창업주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1974년 모든 지분을 스위스 투자사에 넘기고 은퇴를 했다.

▲ Ferruccio Lamborghini

그리고 페루치오의 은퇴 이후 오일쇼크가 닥치면서 수퍼카들의 판매가 크게 감소했고 1978년 결국 람보르기니는 파산하고 만다. 이후 스위스의 투자가인 밈란 형제가 파산한 람보르기니의 공장을 인수한 이후 카운타크 개발 및 출시를 적극 지원해 다시 부활했고 크라이슬러로 넘겨 진 후 전설적인 수퍼카 디아블로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모회사였던 크라이슬러의 재정난으로 1994년 인도네시아의 부호인 토미 수하르토가 이끄는 투자자 그룹에 매각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은 수하르토 가문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람보르기니는 1998년 8월 아우디에 인수되면서 안정을 찾게 된다.

▲ 350 GT(1964)

아우디와 손잡은 이후 람보르기니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무르시엘라고, 베이비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등 수퍼카의 전설적 모델들을 연이어 개발하면서 이 시대 최고의 수퍼카로 성장했다.

모델명 무르시엘라고는 1879년 스페인 투우장에서 투우사의 칼에 24번이나 찔리고도 죽지 않은 황소의 이름이며 스페인어로 박쥐를 뜻한다. 가야르도 역시 스페인 투우 역사에서 전설적인 맹우로 명성을 떨쳤던 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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