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vs. 오리지널] 전기차 덕분에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고 이어질 것 -맺음글-
[레트로 vs. 오리지널] 전기차 덕분에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고 이어질 것 -맺음글-
  • 류청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9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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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동력계와 함께 자동차 사용 환경에 일어나는 변화들은 레트로 디자인의 입지를 더욱 키우고 있다. 주류로 자리를 잡기는 어렵겠지만 당분간 레트로 디자인이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고 이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동안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동차 디자인에 큰 변화가 생기리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전기 동력계에 필수적인 배터리 팩이 차체 구조에 영향을 줘, 동력계와 배터리 팩을 묶어 만든 하체 구조가 일반화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른바 '스케이트보드(skateboard)' 플랫폼이 그것으로, 앞뒤 바퀴 사이에 배터리 팩을 배치하고 앞뒤로 서스펜션과 차축, 동력계 등을 배치한 하체 구조다.

기아가 PBV(목적 기반 차량)에 쓰기로 한 카누의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출처: 기아)
기아가 PBV(목적 기반 차량)에 쓰기로 한 카누의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출처: 기아)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을 쓰면 그 위에 올리는 차체는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인의 자유도가 훨씬 더 높아지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실제로 폭스바겐 그룹의 MEB 플랫폼이나 현대자동차그룹의 E-GMP 플랫폼은 공통된 아키텍처를 쓰면서도 다양한 장르와 형태의 제품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폭스바겐 ID.버즈나 현대 아이오닉 5처럼 레트로 디자인을 도입한 차들도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 레트로 디자인을 구현한 현대 아이오닉 5 (출처: 현대자동차)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 레트로 디자인을 구현한 현대 아이오닉 5 (출처: 현대자동차)

한편,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의 혁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미래적 디자인을 내세운 사례가 많았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주행거리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동안 미래적이고 공기역학 특성을 고려한 유선형 디자인의 콘셉트 카와 양산차가 많이 나온 이유다.

메르세데스-벤츠 비전 EQXX 콘셉트 카는 효율을 극대화한 공기역학적 차체 디자인이 특징이다 (출처: Mercedes-Benz)
메르세데스-벤츠 비전 EQXX 콘셉트 카는 효율을 극대화한 공기역학적 차체 디자인이 특징이다 (출처: Mercedes-Benz)

그러나 기술적 기반이 만들어지고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기존 디자인 흐름을 이어받거나 아예 레트로 디자인을 반영한 콘셉트 카와 제품이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기술적으로는 짧은 시간 사이에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제 구매자들은 기존 자동차의 연장선에서 전기차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전기차가 디자인의 급진적 변화를 추구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진은 레트로 디자인이 특징인 피아트 뉴 500 (출처: Stellantis)
모든 전기차가 디자인의 급진적 변화를 추구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진은 레트로 디자인이 특징인 피아트 뉴 500 (출처: Stellantis)

특히 내연기관 기반 자동차로 자리를 잡은 기성 자동차 업체들은 레트로 디자인을 제품에 구현하는 데 적극적이다. 한편으로는 이미 시장에서 성공한 차들의 디자인 특징을 가져옴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고, 디자인의 실패 가능성을 낮출 수도 있다. 아울러 브랜드와 제품의 역사와 전통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즉 레트로 디자인은 자동차 업체 관점에서는 안전한 선택 중 하나다.

기성 자동차 업체가 레트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전한 선택이라는 데 있다. 사진은 옛 504 쿠페의 디자인을 재해석한 푸조 e-레전드 콘셉트 카 (출처: Stellantis)
기성 자동차 업체가 레트로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전한 선택이라는 데 있다. 사진은 옛 504 쿠페의 디자인을 재해석한 푸조 e-레전드 콘셉트 카 (출처: Stellantis)

물론 일부 신생 전기차 업체도 레트로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그 역시 이유는 비슷하다. 이미 자동차 사용자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선택의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디자인 관련 지적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브랜드나 모델의 디자인을 그대로 활용하기보다는 특정 시대 차들의 공통적 이미지를 가져와 나름의 재해석을 거쳐 구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기차 스타트업 알파 모터 코퍼레이션은 레트로 디자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1960~70년대 일본차를 연상케 하는 에이스 쿠페 (출처: Alpha Motor Corporation)
전기차 스타트업 알파 모터 코퍼레이션은 레트로 디자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1960~70년대 일본차를 연상케 하는 에이스 쿠페 (출처: Alpha Motor Corporation)

아울러 레트로 디자인은 그동안 자동차를 경험해왔던 세대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으면서, 젊은 세대들에게는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최신 유행을 따른 차들은 거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비록 현대화되기는 했어도 과거의 디자인 특징을 반영한 레트로 디자인의 차들은 색다르고 특별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소형차 판다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피아트의 전기 콘셉트카 첸토벤티 (출처: Stellantis)
차세대 소형차 판다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피아트의 전기 콘셉트카 첸토벤티 (출처: Stellantis)

또한 자동차 디자인에서 도로교통 환경과 사용 행태가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다. 그런 관점에서 메가시티의 확대, 이동수단의 서비스화 등은 자동차 자체의 장르 분화와 더불어 레트로 디자인이 더 든든히 뿌리내릴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장거리 주행에 초점을 맞춘 차들은 여전히 효율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디자인해야겠지만, 굳이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아도 되는 도심에서 주로 쓸 차들은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즉 공기역학 효율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옛 차들의 형태나 디자인 요소를 반영하는 데 더 유리하다.

BMW 이세타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도시형 초소형 전기차 마이크로리노. 저속 전기차는 충돌안전 규제가 덜 엄격해 디자인 자유도가 더 높다 (출처: Micro Mobility Systems AG)
BMW 이세타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도시형 초소형 전기차 마이크로리노. 저속 전기차는 충돌안전 규제가 덜 엄격해 디자인 자유도가 더 높다 (출처: Micro Mobility Systems AG)

아울러 저속 전기차의 경우에는 충돌안전 관련 규제가 일반 자동차만큼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구조 설계에 따른 디자인의 부담은 더 가벼워진다. 도시형 이동수단을 염두에 둔 전기차들 가운데 레트로 디자인을 반영한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동력계와 함께 자동차 사용 환경에 일어나는 변화들은 레트로 디자인의 입지를 더욱 키우고 있다. 물론 자동차 역시 유행에 좌우되는 상품인 만큼, 레트로 디자인이 주류로 자리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당분간 레트로 디자인이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고 이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류청희 캄럼니스트의 '레트로 vs. 오리지널' 연재는 이번 글로 끝을 맺습니다. 그 동안 관심을 갖고 연재를 지켜봐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더 유익한 콘텐츠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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