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첨단 자동차 시대 운전면허 시험 '전기차 번호판 색은 왜 묻나?'

  • 입력 2022.08.29 11:46
  • 수정 2022.08.29 11:49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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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는 1987년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취득했다. 오전에 필기시험을 봤고 오후에 장내 기능 시험을 통과했다. 1주일 후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이 손에 들렸다. 전날 예상 문제집을 풀어보고 학원에서 알려준 공식을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친구 중 가장 먼저 운전면허를 땄다.

다시 35년 만에 인터넷에서 예상 문제집을 풀어봤다. 70점 이상을 받아야 하는 1종 보통 문제를 풀었는데 그 이상을 받았다. 문제의 유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면허에 관한 것들, 법규 위반에 따른 처벌 내용, 표지판, 위험 상황을 예측하는 것까지 유형으로 보면 낯설지 않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전기차 번호판은 무슨 색이고 어린이 통학버스나 긴급, 구난차를 누가 몰 수 있는지 뭘 달면 안 되는지 묻는 문제 따위가 대표적이다. 2종 보통 문제 중에는 캠핑 트레일러의 차종을 묻는 문제가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문제도 보인다.

도로 주행 시험에서 실격 처리하는 항목을 묻는 문제도 있다. 컨닝을 하다 들키면 부정행위냐 아니냐를 묻는 듯하다. 단 40문항으로 운전에 필요한 기본, 기초 상식을 모두 묻기 불가능하다고 해도 이건 문제의 낭비다. 필요한 것일 수 있지만 일반 운전자가 꼭 알아야 할 것을 하나라도 더 묻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우선은 면저 종별과 함께 내국인과 외국인, 특수 용도 면허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자동차가 첨단화하면서 이런 기능을 바르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운전자가 반드시 알고 지켜야 할 상식이 많아졌는데 이와 관련한 문제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ADAS)이 요즘 대부분 신차에 기본 적용되거나 선택 비중이 높아졌지만 관련 문제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ADAS를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오인하거나 그런 것처럼 쓰는 운전자가 사고를 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운전대에 헬퍼(Helper)를 달아 안전 경고를 무력화하고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크루즈를 활성화해 짧은 시간 딴짓을 하다 사고를 낸다. 

자동차 회사들이 자율주행과 거리가 먼 초보 수준의 시스템을 과장되게 홍보한 탓도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첨단운전보조시스템의 올바른 사용법 그리고 자율주행 시대에 맞춰 운전면허 취득과 교육 과정에 관련 문항을 반영하고 있다. 

영국 교통안전 단체인 IAM 로드 스마트(IAM RoadSmart)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많은 운전자가 ADAS나 제한된 자율주행 성능을 모든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으며 인간의 통제가 더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이 지적처럼 많은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차선과 차량 간격, 설정된 속도를 유지하고 자동 조향, 차로 변경 등의 운전 보조 사양을 자율주행 기능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테슬라는 아예 오토 파일럿, 풀 셀프 드라이빙(FSD)이라고 홍보한다. 따라서 운전자들이 면허를 취득하는 과정부터 안전운전보조시스템과 자율주행차 안전에 대한 바른 상식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고속도로와 같은 제한된 지역에서 자동운전이 가능한 자율주행차도 곧 등장한다. 지금대로라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누가 묻지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동차를 실전에서 몰고 다녀야 하게 됐다. 단 40문항에 운전에 필요한 기본 상식을 모두 담기 불가능하다고 해도 완전자율주행이 임박한 지금 35년 전 봤던 예상 문제집 출제 유형이 지금 낯설지 않다는 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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