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세상에 혼다가 꼴찌라니요, 일본 車를 달리 보기 시작한 미국의 눈
[김흥식 칼럼] 세상에 혼다가 꼴찌라니요, 일본 車를 달리 보기 시작한 미국의 눈
  • 김흥식 기자
  • 승인 2022.07.2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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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만 해도 생소했던 제이디파워(J.D.POWER)가 우리나라에 익숙해진 건 2006년이다. 제이디파워가 매년 실시하는 2006 초기품질조사(IQS. Initial Quality Study)에서 현대차가 토요타를 제치고 일반 브랜드 1위에 오르자 현지 한 매체가 "사람이 개를 물었다"라고 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1968년 설립한 제이디파워는 자동차와 함께 금융, 보건의료, 주택,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소비자 만족도를 연례적으로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한다. 미국 소비자 상당수는 이 결과를 참고해 제품을 구매할 정도로 공신력을 갖고 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품질에 전사적으로 노력을 다했던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거대 시장 미국에서 입지를 높일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 

사람이 개를 물기는 했는데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이듬해 제이디파워 APEAL 1위 자리는 혼다가 차지했고 현대차는  산업 평균점(125점)과 같은 점수로 떨어지면서 순위가 바닥권으로 떨어졌다. 제이디파워가 연례적으로 하는 내구품질(VDS. The Vehicle Dependability Study), 상품성(APEAL. Automotive Performance, Execution and Layout) 등 더 의미가 있는 조사에서도 현대차는 이후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제이디파워 품질 조사 상단은 늘 토요타와 혼다 계열 그리고 포르쉐가 차지했지만 최근 들어 현대차와 기아 그리고 제네시스가 약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제이디파워는 물론 미국의 권위 있는 평가 기관이 실시한 조사 결과의 순위 목록 상단에서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 이름을 찾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 잦다 보니 수상을 했는데도 보도에 걸러지는 일도 수두룩하다.

올해 제이디파워 APEAL 조사에서 현대차그룹은 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브랜드 순위에서는 미국 토종에 밀려났지만 전체 22개 세그먼트에서 무려 7개 부문의 최우수 모델을 쏟아냈다. 역대 가장 많은 차급과 차종에 미국 소비자들이 높은 만족도를 보인 것이다. 제이디파워 APEAL은 실제 차량을 보유한(90일 이상) 소비자에게 10개 항목에서 총 40개 이상의 세부 사항 만족도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자동차로 다가설 때의 감성을 시작으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실내 장식, 성능, 주행감, 안전성,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안락함 그리고 연비의 경제성까지 전 과정에서의 만족도를 평가한다. 눈으로 보이는 감성부터 차량의 각종 사양과 승차감, 경제성까지 평가하기 때문에 자동차의 종합적인 상품성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하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현대차 그룹 성과보다 일본 브랜드의 부진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제이디파워는 물론 일본 브랜드에 대한 여러 평가 기관과 미국 소비자가 보냈던 일본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APEAL에서 일본 자동차를 대표하는 토요타와 렉서스, 닛산과 인피니티, 혼다와 아큐라 순위는 모두 바닥을 기록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순위에서 렉서스(863점)와 아큐라(851점)는 산업 평균(872점) 아래로 떨어져 전체 14개 가운데 11위, 13위에 그쳤다. 인피니티(866점)도 잘하지 못했다. 순위에 포함하지 않은 테슬라(887점), 폴스타(871점)보다 점수가 낮다.

일반 브랜드는 더 심각했다. 산업 평균(841점) 이상을 받은 건 닛산(845점)이 유일했지만 18개 브랜드 가운데 10위에 불과하다. 기아(4위), 현대차(7위)보다 낮은 순위다. 문제는 나머지 일본 브랜드 전체가 산업 평균 아래로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산업 평균 아래로 떨어진 7개 브랜드 가운데 일본 업체가 5곳이나 됐다. 미쓰비시, 마즈다, 스바루, 토요타 그리고 혼다는 꼴찌라는 수모를 견뎌야 했다.

전통적으로 일본 브랜드가 약세를 보인 부문이 APEAL이긴 했어도 예전 이렇지는 않았다. 혼다가 꼴찌를 기록한 적도 산업 평균점 아래를 일본 브랜드가 독차지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브랜드 순위 못지않게 중요한 차급과 차종별 최우수 모델도 매년 줄고 있다. 일본 브랜드 모두를 합쳐 2020년 8개였던 최우수 모델이 작년 5개로 줄었고 올해는 4개로 또 줄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22개 세그먼트 가운데 7개 최우수 모델을 배출했다.

'품질'에 관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을 지배해 왔던 일본 브랜드의 추락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짐작할 수 있는 건 완성차 간 품질 격차가 좁혀지면서 디자인을 포함한 감성, 인포테인먼트와 커넥티드 시스템, ADAS와 같은 첨단 안전 사양 등 차량 성능 이외의 만족감을 높이는데 소홀했다는 정도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제이디파워 APEAL 사상 처음으로 세그먼트 최우수 모델에 기아 EV6(소형 SUV)와 메르세데스 벤츠 EQS(프리미엄 대형 SUV)가 각각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포드 마하-E가 이름을 올린 데 이어 파워트레인을 구분하지 않은 경쟁에서 순수 전기차가 최우수 모델에 선정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변변한 차가 없다는 것도 고민해 볼 문제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같은 첨단화 정도로 브랜드의 전체 기술력을 판단하고 또 신뢰도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세상에서 속된 말로 올드한 디자인, 극도로 꺼리는 첨단 사양, 전동화 전환의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을 계속 받는 한 순위 목록의 하단에서 일본 브랜드를 찾는 건 지금보다 더 쉬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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