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조? 토요타 아키오 CEO는 왜 가명까지 쓰면서 르망 24시에 출전했을까.

  • 입력 2022.05.11 10:55
  • 수정 2022.05.11 11:25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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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안전하고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 방법으로 레이싱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올림픽 선수들이 자신의 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듯 자동차 또한 레이싱을 통해 한계에 부딪히며 점점 진화한다.”(토요다 키이치로. 사진)

토요타 창업자 토요다 키이치로는 극한의 성능에 도전하는 자동차 레이싱이 인간을 위한 보다 더 나은 차를 만들 방법이라고 봤다. 극한의 가혹한 환경에서 서킷과 교감하며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차량 성능을 향상시킬수 있는 노하우를 취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다는 토요타 이념이기도 하다. 

더 나은 차를 만들기 위한 도전 '가주 레이싱'

창업주의 철학으로 탄생한 것이 20년 역사를 가진 '토요타 가주 레이싱(TOYOTA GAZOO Racing)'이다. 가주(GAZOO)는 이미지나 화상을 의미하는 명칭에서 가져왔는데, 인터넷이 일반화하기 이전인 1990년대 중반에 각 대리점 재고 차량 정보를 이미지로 제공하는 사이트 '가주 닷컴(Gazoo.com)'이 가주 레이싱의 시작이 됐다.

토요타와 비교하면 가주 레이싱 역사는 길지가 않다. 토요타 가주 레이싱이 국제무대에 처음 등장한 때는 ‘팀 가주(Team GAZOO)’라는 팀명으로 처음 도전한 2007년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레이스다. 이 대회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토요타는 2015년 렉서스 등 그룹의 모든 모터스포츠를 통합해 '토요타 가주 레이싱'으로 통합하고 2017년 이를 전담할 토요타 가주 레이싱 컴퍼니를 설립했다.

사실 토요타 모터스포츠의 역사는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 가야 한다. 1957년 일본 자동차 산업 역사의 전환점이 된 토요펫 크라운 (Toyopet Crown)이 호주 대륙을 일주하는 랠리(Round Australia Trial; Mobilgas Rally)에 참가해 해외 제작사 3위로 포디엄에 오르며 처음 존재를 알렸다. 이후 1979년 다카르 랠리, 1985년 WEC 르망 내구레이스, 1987년 마카오 그랑프리 첫 출전 및 우승, 1988년 영국 F3 챔피언십 우승 등 경쟁사에 비해 짧은 모터스포츠 경험에도 단기간에 엄청난 성적을 거둔다.

최고 경영자, 드러나지 않는 ‘차의 감성’을 포착하기 위해 레이서로

하이라이트는 1993년 일본 메이커 최초로 WRC 제조사 및 드라이버 부문 우승과 1995년 사파리 랠리 4년 연속 우승이다. 두 대회 모두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가혹한 랠리로 알려져 있으며 우승은 곧 제조사의 기술을 인정 받는 기회였다. 토요타는 1999년에도 WRC 제조사 부문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세계적인 레이싱 대회에서 꾸준한 성과를 거뒀다. 토요타의 도전은 일반적인 내연기관 자동차로 그치지 않았다. 2021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소 엔진을 탑재한 코롤라로 ‘후지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했고 2021년 르망 24시간 결승 레이스에서는 신설된 ‘하이퍼카’ 레이스 부분에서 1, 2위로 원투 피니시를 기록하며 최초 우승을 기록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토요타 아키오 CEO가 ‘모리조(MORIZO)’라는 가명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고 레이스에 참가한다는 사실이다. 토요타 아키오는 2000년대 초반, 토요타의 마스터 드라이버인 고(故) 나루세 히로무에게 1대 1로 운전 훈련을 받으며 극한의 주행 상황 속에서 설계도와 데이터로 드러나지 않는 ‘차의 감성’을 배웠다. 그 후 2007년 독일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시작으로 레이스에 직접 출전하며 마스터 드라이버로서 수많은 차를 직접 테스트하고 조율해왔다. CEO 주도로 오랜 기간 동안 모터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새로운 기술과 솔루션을 연구해 온 브랜드는 전 세계에서 토요타가 유일하다. 이런 노력으로 토요타 가주 레이싱은 세계적인 모터스포츠에서 독보적인 성과로 거두기 시작했다.

혹독한 내구 레이싱의 한계 극복이 곧 좋은 자동차의 초석

토요타 가주 레이싱은 단순한 속도의 경쟁보다 경주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차량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내구 레이스에 특히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녹색지옥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 세계 내구 선수권 대회(WEC)에서 거둔 성과가 특히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 세계 모터스포츠 가운데 가장 가혹한 것으로 알려진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는 반복되는 급경사와 험한 도로, 170여 개의 코너, 약 300m의 극심한 고저차를 극복해야만 한다. 완주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대회다.

토요타 가주 레이싱 팀이 2007년 처음 레이스에 참가했을 당시의 일화는 지금까지 전설이 되고 있다.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화려한 경력을 가진 레이서와 튜너를 영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전문 드라이버가 아닌 사내 기술자들과 팀을 꾸리고 중고차를 개조해 뉘르부르크링 내구 레이스를 완주했다. 개발 현장에 있는 인력이 내구 레이스에 직접 참여하게 해 현장에서 체험한 것들을 양산차에 적용, 더 나은 차를 만들 수 있게 한 배려였다. 이후 뉘르부르크링 레이스는 토요타의 스포츠카 개발 시험장이 됐다.

가주 레이싱팀은 이때의 경험으로 다듬은 렉서스 LFA로 2010년 SP8 클래스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후 10년간 치러진 대회에서 렉서스 RC F, 렉서스 LC 등이 무려 10차례의 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 출범해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FIA 세계 내구 선수권 대회(WEC)에서도 가주 레이싱팀은 독보적인 성적을 거둔다. WEC는 세계 각지에서 6라운드에 걸쳐 최단 6시간에서 최장 24시간까지 다양한 길이의 레이스에서 경쟁해야 한다. 따라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는 WEC를 통해 차량의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 받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긴다.

가주 레이싱팀은 2012년부터 매 시즌 히가시-후지 연구소가 환경친화적이고 ‘운전의 재미’를 극한의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레이싱카로 참가하고 있다. WEC에서 거둔 성적도 화려하다. 2018-2019 르망 24시간 시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TS050 하이브리드는 2019-2020시즌에도 포디엄 정상에 섰다. 2021 시즌에서는 GR010 하이브리드가 1위와 2위로 체커기를 받아 레이싱 팀뿐만 아니라 제조사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가주 레이싱이 내구 레이스에서만 돋보인 것은 아니다. 일반도로에서 양산차를 베이스로 한 레이싱카로 달리는 WRC에서도 토요타 야리스로 참가해 2018년 이후 매년 제조사와 드라이버 부문 우승을 번갈아 가며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2022년 FIA 규정에 맞춰 새로운 랠리카로 투입한 GR 야리스 랠리1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으로 최고 출력 500마력 이상, 최대 토크 500Nm 이상의 강력한 성능을 기반으로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 밖에 토요타는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e-모터스포츠에도 공을 들인다. 소니 플레이 스테이션4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 'GR 수프라 GT 컵'이 대표적이다.

CJ 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등 국내 모터스포츠 참여

토요타는 국내 모터스포츠의 발전을 위한 활동과 참여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국내에서는 2020년부터 ‘CJ 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6000 클래스’의 레이싱 카에 GR 수프라(GR Supra)의 외관 디자인을 적용하는 공식 카울(cowl)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슈퍼 6000 클래스 경주차는 중량은 줄이고 강도는 높은 경량화 소재의 강화 플라스틱 등 가벼운 소재로 제작한 카울을 입히며 4년마다 보디를 교체해 오고 있다.

2020년부터 공식 카울 스폰서로 참여하게 된 GR 수프라는 지난 2002년 이후로 모델 생산이 중단됐다가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 17년 만에 재탄생한 모델이다. 단순히 디자인만 변화한 것이 아니라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도전정신과 더 나은 자동차를 향한 철학이 함께 담겨있어 모터스포츠와 떼어놓을 수 없는 모델로 평가되곤 한다.

2021년 9월에는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GR 수프라 고객을 대상으로 ‘GR 수프라 레이싱 클래스’를 개최했다. 국내 정상급 레이싱팀인 ‘아트라스 BX 모터스포츠’와 함께 운전 테크닉 이론교육과 실전 서킷 주행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GR 수프라의 퍼포먼스를 안전하면서도 즐겁게 체험하는 자리였다. 올해도 지난 4월,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진행된 GR 수프라 레이싱 클래스는 ‘토요타 86’, 렉서스 고성능 스포츠카 ‘RC’ 라인업으로 확대됐다.

가주 레이싱팀의 현장 체험으로 완성된 역대급 GR 라인업

토요타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쌓은 드라이빙 경험과 여러 노하우, 축적된 기술력을 양산 모델에 적극적으로 적용해 운전의 재미를 극대화한 GR 모델 라인업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GR 모델의 스펙트럼을 최대화해 더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보다 재미있게 운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2019년 GR 스포츠카 시리즈 첫 번째 양산형 글로벌 모델인 수프라가 선을 보였고 이후 GR 야리스, GR 수프라, GR86이 등장했다. 이 외에도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최상위 라인업인 GRMN 야리스, 하이럭스 GR SPORT, 랜드크루저 GR SPORT, C-HR GR SPORT, 코펜 GR SPORT, 프리우스 PHEV GR SPORT 등 완성차 가운데 가장 풍부한 스포츠카 라인업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GR 야리스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WRC 출전 차량으로, 극한 상황에서도 달릴 수 있는 정밀하고 뛰어난 완성도를 양산차에 실현하고자 하는 토요타의 의지가 담긴 모델이다. GR 야리스는 토요타 모토마치 공장에 있는 GR 전용 라인 ‘GR 팩토리’에서 생산되는데, 최고의 품질을 위해 기존의 컨베이어 벨트식 대량 생산이 아닌 숙련공들에 의한 소량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토요타 야리스 양산 모델에는 공력 성능을 위한 전용 어퍼 보디, 알루미늄 소재를 통한 경량화, 높은 강성의 스트럿식 프런트 서스펜션, 뛰어난 응답성과 그립력을 제공하는 더블 위시본식 리어 서스펜션, 액티브 토크 스플릿 4WD 시스템(GR-FOUR) 등 WRC에서의 노하우가 곳곳에 녹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토요타 GR 시리즈의 첫 글로벌 모델인 GR 수프라는 1978년 토요타 셀리카 새시를 늘리고 직렬 6기통 엔진을 실어 탄생했다. 이후 2019년 5세대로 이어졌다. 국내에는 2020년 1월 첫선을 보였다. GR 수프라는 가주 레이싱의 노하우가 가장 적극적으로 담긴 고성능 슈퍼카다. 전설적인 토요타 스포츠 헤리티지인 2000GT를 디자인을 계승해 더블 버블 루프 전·후면 휀더의 볼륨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스포츠 주행에 최적화된 3.0L 6기통 엔진구조와 FR 패키징, 최대토크 51kg?m, 최고 출력 387PS로 다이내믹한 주행의 즐거움을 그리고 가벼운 공차중량과 전 후면부의 50:50 하중 배분으로 발휘하는 안정적인 코너링 퍼포먼스가 압권이다.

토요타를 상징하는 코롤라 기반의 GR 코롤라는 1973년 토요타 첫 WRC 우승, 1975년 1000 레이크스 랠리 우승 등을 차지한 코롤라의 모터스포츠 역사를 계승한 모델이다. 2022년 3월 GR 라인업에 추가됐으며 최대출력 304PS(북미 기준)의 1.6L 3기통 터보 엔진과 완벽한 코너링을 가능하게 하는 GR-FOUR 4WD 시스템, 엔진의 출력을 더욱 극대화하는 3중 배기 시스템 등이 특징이다.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GR 라인업은 GR86이다. 토요타의 대중 스포츠카 '토요타 86'이 2021년 GR86으로 변경되면서 엔진 배기량을 기존의 2.0L에서 2.4L로 늘리고 제로백을 6.3초로 단축됐다. 차체 곳곳에 알루미늄을 적용해 경량화를 실현하고 수동 변속기, FR 패키징, 수평대향 자연 흡기 엔진 등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수많은 운전자의 로망이 가득하다.

한국에서는 2022년 3월 전국 토요타 공식 딜러 전시장에서 신형 GR86의 사전 계약을 시작했고 5월 데뷔를 앞두고 있다. 신형 GR86은 후륜 구동에 수동변속기를 조합한 모델로 2.4L 수평대향 엔진, 6단 수동 변속기 및 GR86 전용 신규 FR 플랫폼, 고강도 차체가 특징으로 스탠다드와 프리미엄 2개의 트림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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