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세상 모든 중고차 '악의 축' 완성차 인증하면 '사마리아인'

  • 입력 2021.11.08 11:07
  • 수정 2021.11.08 14:54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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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업계가 인증 중고차 사업 진출에 목을 매고 있다. 소비자가 주인공이고 시장 참여 주체니까 그 엄중한 권리를 보호하고 피해를 막으려면 완성차가 도장을 찍어 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도록 해달라는 주장이다. 2019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업종을 생계형적합업종에서 제외한 직후부터 완성차 또 주변 단체들은 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유는 한결같다. 무슨 조사를 해 봤더니 소비자 몇 %가 찬성했다거나 소비자 불신이 극에 달했고 불만 접수 건수가 사상 최대치라는 따위다.

중고차 관련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가격 폭리, 성능, A/S에 대한 불만, 허위, 미끼, 강요, 사기, 폭행, 감금, 유인 따위 험악한 표현도 이유가 됐다. 8일, 완성차 제작 및 부품 관련 단체가 모인 자동차산업연합회(KAIA) '중고차 시장, 이대로 괜찮은가?' 포럼 발표 내용도 다르지 않았다. 포럼 발표자 대부분이 중고차 매매 사업자 그리고 종사자를 범법자로 취급하고 이들을 몰아내고 소비자를 보호하려면 완성차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완성차와 그 주변이 이런 주장을 하기 전 먼저 따져 볼 것들이 있다. 중요한 사례로 들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해외 주요 선진국(?) 모두 예외 없이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그러나 우리나라와 완성차를 파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 우리는 완성차가 전시장, 영업사원을 직영하고 고용해 판매망을 완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다르다. 메가 딜러가 있고 지역마다 로컬 딜러가 있고 현대차 말고도 토요타를 같이 취급하는 전시장도 있다. 중고차 대부분이 완성차가 아닌 이들 손을 거친다. 제조사가 직접 중고차를 매집해 되파는 것보다 딜러 거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을지로위원회 중재 때, 중고차 쪽에서 "우리에게도 신차 판매권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뭔 소리냐는 반응이 있었지만 인증 중고차 사업 당위성을 주장할 때 명분으로 삼았던 주요 선진국에서는 딜러가 새 차, 중고차를 가리지 않고 파는 일이 허다하다. 이렇게 해서 제작사와 딜러, 그리고 중고차만 취급하는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신차를 구매할 때 영업사원이 중고차 처분까지 맡아 주는 일, 누구나 경험한다.

따라서 현대차와 기아 시장 점유율이 80% 안팎을 오가는 상황에서 중고차 매집 점유율, 즉 전체 유통량 절반 이상을 장악할 수 있다. 신차에 이어 중고차까지 특정 기업이 장악했을 때 발생할 소비자 피해는 지금 매매 현장에 벌어지는 것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 완성차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했을 때 우량 물건만 가져갈 우려도 크다. 이런 물건은 상태가 좋다는 이유로, 우리가 다 점검을 했고 보증까지 해 준다는 이유로 일반적인, 이전에 형성돼 있던 시세보다 가격이 높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기준 200만대 이상 중고차 거래량을 완성차가 전부 소화하기는 어렵다.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과 장악력으로 신선한 중고차를 선별 매집한 완성차가 인증 중고차라며 더 비싸게 팔고 그래서 선택권이 사라진다면 그건 소비자 피해가 아닌가. 지금도 수입 브랜드 인증 중고차는 같은 연식, 주행거리, 상품 상태라고 해도 그런 이유를 달아 더 비싸게 판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파는 사람이나 사려는 사람이나 가격 저항이 크기 때문에 실제 거래량이 많지는 않다"라며 "대부분이 리스로 나갔던 차고 재고차를 매매업자한테 다시 넘기는 일도 있다"라고 말했다.

완성차가 인증 중고차 사업에 진출하면 매매업자 폭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따라서 아직 베어 물지도 않은 사과 맛을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완성차 쪽은 당사자 간 거래를 했을 때 사업자보다 최대 35% 가격이 저렴하다는 논리를 내 놨지만 이 역시 마진 없이 거래되는 사업자 간, 종사자 간 거래 신고가를 간과한 것이다. 완성차가 취급하는 상품 거래 가격은 모르긴 해도 양질의 상품은 '인증 딱지'를 이유도 더 비싸질 것이고 어려워진 중고차 매매사업자 폭리는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다고 완성차가 연간 200만대 이상 중고차를 다 취급하지도 않을 것이다. 단물 빼 먹듯 돈 되는 장사만 할 것이고 따라서 이런 걸 막자고 완성차가 취급할 수 있는 물량을 총량으로 정해 제한해 달라고 중고차가 요구했다. 총량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제한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

당사자 거래가 급증한 걸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오류도 있다. 전체 거래 55% 이상이 개인 간 거래고 따라서 시장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러 자료에 인용한 당사자 거래 건수에는 소비자가 찾는 상품을 찾아 주거나 여기서는 안 팔리는 상품을 서로 주고받는 딜러와 딜러, 매물 등록 전 종사자와 종사자 등 다양한 형태의 거래가 다 포함돼 있다. 중고차 사업자들 못 믿어서 당사가 거래 비중이 크다며 인증 중고차 사업이 절실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외 당사가간 거래 비중이 낮은 건 중고차 거래 절차, 네트워크 차이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중고차를 전문으로 취급하고 중개하는 대규모 플랫폼이 완벽하고 다양하게 구축돼 있어 굳이 당사자간 거래를 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차량 상태를 보고 매매 가격을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는 전문 사이트도 많다. 우리도 지금 그런 전환기에 있다. 허위, 미끼, 강요, 사기, 폭행, 감금, 유인 이런 살벌한 얘기도 과거와 빈도가 다르다는 것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소비자 피해를 상담하고 구제하는 이런저런 기관 통계에서도 중고차 관련 건수는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소비자 스스로 영악해진 것도 있고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중고차 스스로 정화 노력을 펼친 덕분이기도 하다. 관련된 법 처벌 규정도 강화됐지만 가장 큰 역할은 대기업 중고차 사업자가 대거 등장한 효과가 가장 컸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 중고차는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매집과 경매, 판매, 유통 등 전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해 신뢰를 쌓아왔다. 이들 대기업 시장 장악력도 전체 중고차 거래량 절반을 차지한다.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도 시장을 더 건전하게 이끌고 있다. 완성차 인증 중고차 진출을 반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효과만 기대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중고차 사업자 주장을 기득권으로 몰아가지 말고 귀를 기울여야 할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이날 포럼에서 나온 주장처럼 "선진국 예외 없이 중고차 시장 참여 허용", "완성차 시장 참여시 부작용 없이 소비자 후생 확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완성차 관련 단체로 구성한 협회가 이런 포럼을 열어 중고차 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국 2만 여명 종사자를 죄다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듯한 여론전도 불만이다. 완성차를 '착한 사마리안'으로 보는 소비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완성차가 인증 중고차 사업에 진출했을 때 아주 독특한 우리 산업 구조 특성상 신차와 더불어 강력해진 시장 지배력에 따른 문제가 없을지, 더불어 정부가 중고차 분야를 산업으로 인정해 정당하게 지원하고 정책 결정을 고려하고 있는지도 되돌아보면서 '허(許)'할 일이다. 솔직히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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