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동화 시대 남겨야할 유산 #6] 목표는 최고속-더 빨리 달리기 위한 끓임없는 도전

내연기관 자동차 역사와 함께 인간의 열정과 의지를 상징하는 드라마 속도 경쟁 130년

  • 입력 2021.09.11 06:30
  • 수정 2021.09.28 08:41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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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영역에 닿으려는 사람들의 도전은 자동차 분야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가장 빠른 속도 역시 도전의 중요한 대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를 만들려는 시도는 처음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로 끊이지 않았고, 기록을 세우려는 도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빠른 차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모는 것도 도전이었기 때문에, 세계 최고속 기록 수립을 위한 도전은 인간의 열정과 의지를 상징하는 드라마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번에는 내연기관 시대에 이루어진 자동차 최고속 도전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차들과 이야기들을 다룬다.

FIA가 공인한 세계 최고속 자동차, 트러스트SSC (Cmglee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FIA가 공인한 세계 최고속 자동차, 트러스트SSC (Cmglee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국제 자동차 연맹(FIA)이 공인한 '압도적(outright)' 세계 육상 속도 기록은 트러스트SSC(ThrustSSC)가 1997년 10월에 세운 시속 1227.985km다. 이는 음속의 1.016배 즉 마하 1.016에 해당하는 것으로, 세계 처음으로 자동차가 음속의 벽을 깬 기록이기도 하다. 세계 기록에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다. FIA의 속도 기록 공인 기준은 항목이 수백 가지에 이를 만큼 세분화되어 있는데, 모든 기준을 통틀어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는 뜻이다.

트러스트SSC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두 개 제트 엔진을 단 '제트 카'다. 제트 엔진이 등장한 뒤로는 속도 기록 도전용 차에 제트 엔진을 쓴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 영향으로 기록의 수준은 빠르게 높아졌다. 트러스트SSC를 설계한 리처드 노블은 그 전에도 제트 엔진을 단 속도 기록용 차인 트러스트2(Thrust2)를 만들어 1983년 10월에 시속 1,001.667km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약 13년 만에 깬 것이 트러스트SSC였다. 즉 한 사람이 설계한 두 대의 차가 잇따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가 된 셈이다.

트러스트SSC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세계 최고속 기록을 보유했던 트러스트2 (Tristan Surtel via Wikimedia Commins, CC BY-SA 4.0)
트러스트SSC에 의해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세계 최고속 기록을 보유했던 트러스트2 (Tristan Surtel via Wikimedia Commins, CC BY-SA 4.0)

'제트 엔진을 쓴 차를 과연 자동차라고 할 수 있느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제트 엔진 역시 내연기관의 한 종류고, 자체 동력원을 이용해 움직이는 바퀴 달린 이동수단이라는 자동차의 보편적 개념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국제적 자동차 및 모터스포츠 관련 활동을 관할하는 FIA가 자동차 관련 기록을 인정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득력은 충분하다. FIA의 속도 기록 관련 동력원 구분은 오토 사이클, 디젤 사이클, 로터리 방식의 내연기관에 과급기 유무로 나뉘고, 그밖에 전기 엔진, 터빈 엔진, 증기기관, 하이브리드도 구분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한편, 다양한 분야의 세계 기록을 인정하기로 유명한 기네스 세계 기록에는 일반적으로 자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스톤 엔진 즉 왕복형 엔진을 사용한 차로 세운 속도 기록이 올라 있다. 2018년 8월에 챌린저 2(Challenger 2)가 세운 시속 722.204km다. 트러스트 SSC를 비롯한 속도 기록 도전용 차들이 대부분 그렇듯, 챌린저 2도 날개 없는 비행기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챌린저 2로 피스톤 엔진 차 속도기록 도전 성공 후에 개발진 및 후원자들과 함께 선 대니 톰슨(차 앞, © Bubb Lannan/Thompson LSR)
챌린저 2로 피스톤 엔진 차 속도기록 도전 성공 후에 개발진 및 후원자들과 함께 선 대니 톰슨(차 앞, (c) Bubb Lannan/Thompson LSR)

챌린저 2는 1968년에 속도 기록용으로 제작된 차를 50년 만에 개선하고 손질해 만든 것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포드 427 V8 엔진을 썼지만, 새로 기록에 도전할 때에는 크라이슬러의 '헤미' V8 엔진을 썼다. 엔진은 특수 연료를 사용하고 냉각수 없이 작동하도록 개조되었고, 두 개의 엔진을 앞뒤 차축에 각각 달아 네바퀴굴림 방식으로 만들었다.

챌린저 2의 기록에 흥미로움을 더하는 것은 속도 기록 도전을 준비하고 직접 차를 몰아 새로운 기록을 세운 대니 톰슨이 50년 전 처음 챌린저 2를 만든 미키 톰슨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미키 톰슨은 미국 모터스포츠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오프로드 타이어로 유명한 미키 톰슨 타이어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온로드와 오프로드 레이스를 두루 석권했을 뿐 아니라, 챌린저 2의 전신인 챌린저 1로 '시속 400마일(시속 약 644km)의 벽을 깬 첫 미국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서 다룬 차들은 특별한 목적으로 특별히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성격의 자동차 특히 소비자가 실제로 구매해 번호판을 달고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차로 세운 속도 기록일 것이다. 세계 기록에 관한 주장과 의견이 가장 부분한 영역이 시판 양산 승용차기도 하다.

FIA 공인 가솔린 엔진 차 최고속 기록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가 보유하고 있다
FIA 공인 가솔린 엔진 차 최고속 기록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가 보유하고 있다

FIA 공인 기준에 따라 세운 가솔린 엔진 차 최고속 기록은 2002년 2월에 이탈리아 나르도 트랙에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가 기록한 시속 320.023km다(100km 주행에서 기록한 최고 속도).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최근의 최고속 기록들과는 거리가 있는 숫자다. 이미 부가티가 베이롱 EB 16.4를 내놓았을 때부터 시속 400km가 양산차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고속 기록을 주장하는 여러 자동차와 업체들이 FIA 공인 기록에 오르지 않은 것은 기록 인정을 위한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에 SSC 노스 아메리카는 최신 모델 투어타라(Tuatara)로 시속 508.73km의 양산차 최고속 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때 투어타라가 세운 기록은 공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인터넷 상에서 특정 지점간 이동 시간을 계산해 보니 SSC 노스 아메리카가 발표한 내용과 맞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양산 내연기관 승용차 최고속 기록을 갈아치운 SSC 투어타라
양산 내연기관 승용차 최고속 기록을 갈아치운 SSC 투어타라

한동안 논란은 이어졌고, 나중에는 계측장비 업체도 기록 측정에 쓰인 장비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올해 1월, SSC 노스 아메리카는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 센터 활주로에서 다시 기록에 도전해, 시속 455.3km의 평균치를 얻었다. 이는 먼저 발표한 기록에는 못미치지만, 이전 최고 기록이었던 코닉세그 아게라 RS의 시속 447.19km(2017년 11월에 기록)를 깬 것이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기록한 최고속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빨라져 왔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운 속도기록 도전은 쉽지 않을 듯하다. 속도 기록용으로 특별히 제작하는 차들은 자금 부족으로 프로젝트가 좌초되고 있고, 양산 스포츠카 업체들은 환경과 안전에 관한 여론을 의식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속도 경쟁에서 물러서고 있다. 일반적인 자동차들이 그렇듯, 자동차의 속도 기록을 외한 동력원 역시 전기 모터와 배터리에게 자리를 내어줄 듯하다. 그리고 새로운 동력원을 사용한 새로운 도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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