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시대 남겨야할 유산 #5] 1986년 포뮬러 원 엔진 - 출력에 대한 갈망

1.5L 터보 엔진으로 1000마력 이상 출력을 냈던 시절

  • 입력 2021.09.08 15:00
  • 수정 2021.09.28 08:41
  • 기자명 류청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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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모터스포츠에서 성공의 기본기는 경주차의 성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 경주 내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경주차 성능만 뛰어나다고 해서 경주에서 좋은 성적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성능 우위는 만고불변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1980년대 F1 맥라렌 경주차에 쓰인 TAG 1.5L 터보 엔진
1980년대 F1 맥라렌 경주차에 쓰인 포르쉐 설계의 TAG V6 1.5L 트윈터보 엔진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인 포뮬러 원(F1)도 마찬가지다. 특히 1980년대 ‘터보 시대’의 성능 경쟁은 무척 치열했다. 당시 다른 모터스포츠 분야도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F1은 포뮬러 자동차 경주의 정점에 있는 장르답게 경쟁의 정도도 화끈했다. 무엇보다도 경쟁에서 두드러진 것은 엔진 출력이었고, 그 중심에는 터보차저가 있었으며, 터보 엔진 출력경쟁이 절정에 이른 시기는 1986년이었다. 

1977년에 F1의 터보 엔진 시대를 연 르노 RS01. 그러나 초기 터보 엔진은 신뢰성이 낮았다
1977년에 F1의 터보 엔진 시대를 연 르노 RS01. 그러나 초기 터보 엔진은 신뢰성이 낮았다

F1에 등장한 첫 터보 엔진 경주차는 1977년 시즌에 출전한 르노 RS01이었다. 터보차저는 작은 배기량의 엔진에서 큰 출력을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1.5L 터보 엔진의 출력은 규정에서 정한 3.0L 자연흡기 엔진보다 더 높일 수 있으면서 연료소비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초기 터보 엔진은 내구성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아 완주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터보 래그가 극심해 드라이버들이 차를 다루기 어려웠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점들은 조금씩 개선되었고,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터보 엔진은 차츰 자연흡기 엔진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기술 발전은 놀라왔다. 1980년 시즌에 가장 오랜 경험을 반영해 만든 르노의 V6 트윈 터보 엔진은 550~600마력의 힘을 냈다. 그러나 모든 팀들이 터보 엔진으로 갈아탄 1986년에 이르자 그 정도 출력은 옛말이 되었다. 특히 ‘예선용’ 엔진은 고출력 경쟁의 백미였다. 예선용 엔진들은 결승용 엔진보다 출력이 훨씬 더 높았다. 결승 출발 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예선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내구성을 희생하고 성능은 극대화한 ‘1회용’ 엔진이었다. 그런 엔진들을 가리켜 그레네이드(grenade) 즉 수류탄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 폭발한다는 뜻이다.

1986년 F1 시즌에 알랭 프로스트를 챔피언에 올려놓은 맥라렌 MP4/2C 경주차 (Michael Barera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1986년 F1 시즌에 알랭 프로스트를 챔피언에 올려놓은 맥라렌 MP4/2C 경주차 (Michael Barera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누구도 공식적으로 성능 수치를 밝히지 않았지만, 예선용 엔진들은 최소 800마력에서 대부분 1,000마력은 훌쩍 넘겼다. 힘을 잃어가고 있던 르노도 1,000마력 정도는 냈으리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고, 혼다도 1,200마력대는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출력 제한도 없었고, 정확한 출력 측정도 어려웠다. 당시 대부분의 다이나모미터는 1,000~1,100마력 정도가 측정할 수 있는 출력의 한계였다. 당시 F1 경주차들의 무게는 540kg 남짓이었으니, 무게당 출력은 2,500마력/톤을 오갔다. 최근 출시된 현대 아반떼 N의 무게가 1,450kg(수동 6단 기준)이니, 아반떼 N에 3,600마력 엔진을 얹은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당시 가장 높은 출력을 냈던 BMW M12/13 엔진은 1,000마력대 중반의 최고출력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가장 높은 출력을 냈던 BMW M12/13 엔진은 1,000마력대 중반의 최고출력을 기록하기도 했다

가장 무시무시한 성능을 냈던 것은 브라밤, 베네통, 애로우즈 경주차에 올라간 BMW 엔진이었다. BMW의 4기통 M12/13 엔진은 V6 형식이었던 다른 업체들과 달리 직렬 4기통 형식이었고 터보차저도 두 개가 아닌 하나만 달았다. 일설에 의하면, 베네통 경주차에 올라간 예선용 엔진은 1,850마력/톤의 성능을 냈다고 한다. 다만 1986년 시즌에 BMW 엔진을 얹은 경주차들은 엔진 냉각과 동력계에 관련된 여러 문제 때문에 출력만큼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986년 시즌에 BMW 엔진을 얹고 출전한 베네통 B186 경주차.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86년 시즌에 BMW 엔진을 얹고 출전한 베네통 B186 경주차.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강력한 출력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뿐, 강력한 출력은 형편없는 연비와 직결되었다. 차에 실을 수 있는 연료량은 연료탱크 크기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사소한 연비 차이가 승패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성능과 연료소비의 균형을 잘 맞춘 혼다와 TAG(포르쉐), 르노 엔진을 얹은 경주차들이 시즌 상위권에 오른 것은 기술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은 첨단 기술로 가득하던 시대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드라이버들은 터보 래그와 터보 래그 뒤에 다가오는 충격적인 토크라는 극단적인 변화와 싸우며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경주차를 몰아야 했다. 1985년에 브라밤 BT54 경주차로 출전했던 마크 슈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으면 4단 기어를 넣은 상태에서도 바퀴가 헛돌았다”고 이야기했다. 

윌리엄즈 FW11 경주차는 혼다 엔진의 균형잡힌 성능과 효율이 돋보였다
윌리엄즈 FW11 경주차는 혼다 엔진의 균형잡힌 성능과 효율이 돋보였다

변속기와 타이어도 혹사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윌리엄즈 경주차를 몰고 전에 없이 놀라운 성적을 낸 나이젤 만셀이 1986년 드라이버 챔피언 자리를 맥라렌 팀의 알랭 프로스트에게 내어준 것도 시즌 최종전인 호주 그랑프리에서 경주 막판 혹사 당한 타이어가 고속에서 터진 탓이 컸다.  

F1에 출전한 모든 경주차에 터보 엔진이 올라간 시즌은 1986년이 유일했다. 지나친 경쟁은 비용과 안전에 모두 부담을 주었다. FIA는 규정을 바꿔 1989년부터 터보 엔진을 퇴출하기로 했고, 1987년부터 다시금 자연흡기 엔진이 쓰이기 시작했다. 엔진 출력도 강제로 제한했다. 끝모르고 높아지던 엔진 출력이 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로터스 98T 경주차는 출력이 열세인 르노 엔진을 얹었지만 아이르턴 세나가 출력이 좋은 성적의 절대 조건이 아님을 입증했다
로터스 98T 경주차는 출력이 열세인 르노 엔진을 얹었지만 아이르턴 세나가 출력이 좋은 성적의 절대 조건이 아님을 입증했다 (Poppyseed Media Ltd)

30년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F1 경주차 엔진의 출력이 1986년에 쓰인 것들을 넘어선 적이 없다. 모터스포츠 역사에서는 장르마다 수시로 ‘광란의 시기’를 발견할 수 있는데, F1에서는 1986년이 그 광란의 시기의 절정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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