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시대 남겨야 할 유산 #2] 포드 F-시리즈, 73년을 지배한 픽업트럭
[전동화 시대 남겨야 할 유산 #2] 포드 F-시리즈, 73년을 지배한 픽업트럭
  • 류청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01 1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동차와 시장 상호작용 뚜렷하게 보여주는 현대적 픽업트럭 상징...전기차 변신 중

칼 벤츠 모토바겐(Motorwagen. 1885년), 헨리 포드 컨베이어 시스템, 르노가 대중을 상대로 처음 시도한 전시형 세일즈는 지난 130년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왔다. 내연기관을 대량 생산해 전시하고 파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큰 틀에서 변한 것이 없다. 규모의 변화는 컸다. 100년 전 전 세계 자동차 등록 대수는 1만여 대에 불과했다. 펜데믹 이전 2019년 세계 시장에 등록된 자동차는 약 14억여 대다.

OCIA(세계자동차공업연합회) 자료를 보면 전 세계 39개국, 136개 제작사가 연간 8000만대에 이르는 내연기관차를 매년 생산한다. 이제 새로운 변혁기에 들어섰다. 스타트업 수준인 브랜드에 이어 대량 제작사들도 앞다퉈 전기차를 쏟아내고 기한을 정해 더는 내연기관차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를 성장시킨 주역 내연기관이 전기차에 밀려나는 순간이다. 전기차는 1896년 벨기에 카뮈 제나티가 시속 100km를 돌파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해 1920년대까지 내연기관을 몰아내고 자동차 시장을 지배했다.

전기차가 시장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전 시동키 때문이다. 초기 자동차는 크랭크 핸들로 힘겹게 시동을 걸어야 하는 패트롤식이었다. 그러나 내연기관차 시동을 키 하나로 쉽게 걸 수 있게 되면서 전기차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100여 년 만에 '환경' 이슈로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천문학적 투자, 환경에 대한 범지구적 관심으로 전기차는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사라져 가겠지만 내연기관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한 공은 크다. 이른 점은 있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내연기관 유산을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는 늘 시장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자동차 업체들은 소비자 취향과 니즈, 주머니 사정과 같은 여러 요소를 고려해 제품을 만든다. 제품 특성이 소비자 요구와 맞아떨어지면 잘 팔리기 마련이다. 특정 국가와 지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을 살펴보면 그 시장 소비자가 자동차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연기관 중심으로 이어져 온 자동차 역사에서 눈여겨볼 차 중 하나로 미국을 대표하는 픽업트럭인 포드 F-시리즈는 빼놓을 수 없다. F-시리즈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는 현대 미국 사회와 자동차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F-시리즈 픽업트럭 역사가 시작된 첫 세대 모델인 1949년형 F-1
포드 F-시리즈 픽업트럭 역사가 시작된 첫 세대 모델인 1949년형 F-1

1948년에 처음 선보인 F-시리즈는 1977년 이후 2020년까지 44년 연속으로 미국 트럭 판매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1982년부터는 39년 동안 세단과 SUV 등 전 차종 미국 최다판매 모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 44년 동안 팔린 F-시리즈는 누적 3000만 대가 넘는다. 지난 20여 년은 F-시리즈 대표 모델인 F-150 최전성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7년 10세대 모델을 시작으로 대형화를 시작으로 F-시리즈 판매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포드 F-시리즈는 오랜 세월 미국 픽업트럭을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를 지켜왔다. 사진은 최신 14세대 F-150
포드 F-시리즈는 오랜 세월 미국 픽업트럭을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를 지켜왔다. 사진은 최신 14세대 F-150

지난 24년간 포드 F-시리즈 판매량이 70만 대 이하로 떨어진 시기는 금융위기로 시장이 얼어붙었던 2007~2012년 뿐이다. 그조차도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50만 대를 넘겼다. 판매량 정점은 2004년에 찍었는데, 무려 93만9511대가 팔렸다. 경기침체로 내수 시장이 얼어붙었던 우리나라에서 같은해 팔린 자동차가 약 109만 4000여 대였다. 10배 남짓한 미국 시장 규모를 고려해도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빅3로 불리는 대중차 브랜드 중 지금은 램 브랜드로 재편된 닷지 픽업트럭과는 별개로, 포드와 쉐보레 경쟁은 100년 이상 이어지며 픽업트럭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소비자 성향도 갈라져 열성 팬들은 대를 이어 같은 브랜드를 고집하는 성향이 매우 짙었다. 그러나 1977년 이후로 쉐보레는 트럭 시장 경쟁에서 한 번도 포드를 넘어서지 못했다.

F-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농부와 블루 칼라 노동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자동차였다. 사진은 농기구를 결합한 1956년형 F-100
F-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농부와 블루 칼라 노동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자동차였다. 사진은 농기구를 결합한 1956년형 F-100

물론 F-시리즈가 미국 자동차 시장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열쇠라고 하기는 어렵다. 넓은 영토와 다양한 인종, 폭넓은 경제사회적 스펙트럼에서 비롯되는 다양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F-시리즈가 중요한 이유는 다양성 가운데에서도 오랜 세월에 걸쳐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소비자 계층과 그들의 성향을 가장 폭넓게 만족시켜 왔다는 점에 있다.

픽업트럭은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와 서부에서 인기를 끌었다. 백인 농부와 '블루 칼라(blue-collar)' 노동자들,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 소비층이었다. 저널리스트 폴 인그래시아가 저서 '엔진의 시대(Engines of Change)'에서 이야기했듯, 픽업트럭은 '텍사스 머스탱'이라고 불릴 만큼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고 맥주, 컨트리 음악 등과 쉽게 어울리는 존재였다.

F-시리즈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한 자리에 모인 2018년형 F-150(왼쪽)과 1949년형 F-1
F-시리즈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한 자리에 모인 2018년형 F-150(왼쪽)과 1949년형 F-1

픽업트럭이 갖고 있는 전통적 이미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이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기름값이 내리면서 크고 여유 있는 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기 시작했고, 과시성 소비로 이어졌다. 덕분에 대형 SUV와 더불어 픽업트럭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20세기 대부분을 농부와 노동자 중심 라이프스타일 자동차로 보내온 픽업트럭이 자기 표현에 익숙한 신세대와 여유 있는 중산층 라이프스타일로 편입하고 있다.

태동기 트럭들에 비하면 승용차 개념을 접목해 일상에서 쓰기 편리했다는 점이 F-시리즈 성장 동력으로 볼 수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외모는 크게 달라졌지만 기술적으로는 첫 등장 이후 30년 가까이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유와 이후 급격하게 덩치는 커지고 편의성이 좋아진 것도 소비자 취향이 변화한데서 찾을 수 있다.

F-시리즈는 잘 알려진 F-150 외에 중대형급 모델들도 있다. 사진은 F-350 '슈퍼 듀티'
F-시리즈는 잘 알려진 F-150 외에 중대형급 모델들도 있다. 사진은 F-350 '슈퍼 듀티'

F-시리즈 중에서도 우리에게는 F-150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1975년 이후 막내 모델로 역할을 했다. F-시리즈에는 체구가 더 큰 픽업트럭 ‘슈퍼 듀티(Super Duty)’ F-250, F-350, F-450, F-550이 있고, 특장용 섀시캡을 적용한 중형급 F-350, F-450, F-550, F-600, 중대형급 F-650과 F-750도 있다. 물론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은 승용차 개념에 가까운 F-150이다. 

73년간 F-시리즈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 중 하나는 기본 모델 적재중량 등급이다.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지만, 1948년 첫 선을 보인 F-1과 현재 팔리고 있는 F-150은 모두 적재중량 ‘1/2톤급’ 모델이다.

역대 F-시리즈 중 처음으로 순수 전기 동력계를 얹어 시판되는 2022년형 F-150 라이트닝
역대 F-시리즈 중 처음으로 순수 전기 동력계를 얹어 시판되는 2022년형 F-150 라이트닝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F-150은 지난해 말에 출시된 14세대다. 역대 F-시리즈 중 처음으로 순수 전기차 버전도 나온다. F-시리즈는 20세기에 다진 토대를 바탕으로 21세기 미국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속에 녹아들 수 있는 21세기형 픽업트럭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