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랜드로버 디펜더 90 "9000만 원대를 수용할 수 있는 하나를 꼽는다면"

  • 입력 2021.07.29 15:00
  • 수정 2021.08.02 09:21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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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디펜더(Defender)였고 디펜더가 곧 랜드로버였다. 1948년 첫 차가 나왔고 긴 세월 간간이 있었던 어려운 시절을 버텨내게 해 준 모델이기도 하다. 디펜더라는 차명은 1989년부터 달기 시작했다고 한다. 투박한 외관을 갖고 있었지만 워낙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이 알려지면서 영국군 군용으로도 쓰였다.

반면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다. 무슨 베짱인지 운전석 에어백을 달지 않았고 디젤 엔진은 여기 저기서 환경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안전과 환경 규제가 강화하면서 디펜더를 팔 수 있는 나라가 조금씩 사라지자 2015년 결국 생산이 중단됐다. 이걸 보강하는데 5년여 세월이 필요했나 보다.

안전과 환경 규제를 맞춘 랜드로버 올 뉴 디펜더가 예전 그대로 90과 110으로 나눠 작년 재생산을 시작했다. 올해 6월 국내 출시된 올 뉴 디펜더 90은 좌우 양쪽 도어 2개와 테일게이트를 갖춘 박스형 SUV다. 시승한 디펜더 90 트림은 D250 SE, 기본 가격은 9290만 원이다. 이 가격에 대한 평가는 각자 몫으로 남긴다. 경쟁차로 거론되는 2억 원대 벤츠 G G63 AMG를 생각하면 저렴한데, 한편으로 비싸 보이기도 한다.

D7x 모노코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디펜더 90은 디펜더 110보다 휠 베이스가 435mm 짧다. 전장이 4583mm에 불과하고 오버행도 짧아 언뜻 예전 쌍용차 코란도와 실루엣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각과 선이 분명한 외형을 가진 쇼트 보디 오프로더인 덕분에 다루기 쉬운 장점이 있다. 산길을 달릴 때, 골목길, 굽은 길을 수월하게 진입하고 빠져나온다.

외관에는 70년 전 나왔던 1세대 디펜더 헤리티지가 곳곳에 녹아있다. 전체적으로 반듯하고 굵게 잡힌 각이 그렇고 테일 게이트에 달아 놓은 굿이어 20인치 올 터레인 타이어와 알파인 라이트도 그런 맛을 강하게 전달한다. 플라스틱 패널로 포인트를 준 보닛과 사각 베젤에 담긴 원형 헤드램프도 깜찍했다. 왼쪽 도어 핸들을 움켜지고 사이드로 열리는 테일게이트는 타이어 무게 때문에 여닫는 힘이 필요했다.

실내는 요즘 건축물에 많이 사용하는 '노출 콘크리트'처럼 도어와 대시보드 구조물이 마감이 하지 않은 듯 노출돼 있다. 대시보드 마그네슘 크로스카 빔, 도어 안쪽 표면에는 나사류가 그대로 박혀있다. 랜드로버는 노출 구조형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LG 전자와 함께 개발했다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PIVI Pro 인터페이스가 적용됐다. 

디지털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가 매우 또렷하다. 낯설지 않은 T-map도 반가웠다. 사용 편의성은 떨어진다. 터치 반응이 느리고 수많은 기능 버튼을 모두 수용하고 있어 랜드로버가 자랑하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은 물론 드라이브 모드 설정과 같은 차량 제어, 공조 장치 일부 기능과 오디오를 조작하는 일도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다양한 기능과 시각적 만족도는 높았지만 쉽게 다루고 익숙해지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센터 디스플레이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특히 일반적인 버드뷰와 다르게 차량 측면 주변을 포함, 보닛 하단까지 모든 방향을 보여주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는 신박했다.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깊게 웅덩이 파놓은 좁은 오프로드에서 후진할 때 매우 유용했다. PIVI Pro에는 또 도강 수심을 감지하는 기능도 있다.

파노라마 선루프가 달린 스카이뷰는 좋았는데 다른 시야는 답답했다. 측면 유리 면적이 작고 후방도 불쑥 튀어나온 스페어타이어가 3분의 1가량을 가려버렸다. 아웃 사이드미러가 담을 수 있는 측 후방 시야도 부족한 편이다. 길이는 괜찮은데 폭이 좁아서다. 1열 공간을 충분히 잡아도 2열 공간이 넉넉했다.

대신 트렁크 공간은 협소하다. 중간 크기 캐리어 하나가 겨우 실릴 정도다. 2열 폴딩을 하면 되겠지만 4명이 골프를 치거나 3인 가족이 캠핑을 하려면 루프를 활용하거나 별개 트레일러를 달아야 한다. 사이드 스텝이 없고 1열을 젖혀 확보하는 2열 탑승 개구부도 넉넉하지가 않다. 무릎 이상 높이인 지상고(225mm. 표준)여서 오르고 내리는 불편이 여간 아니다. 아이나 짧은 치마, 노약자는 따로 발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고급스럽고 화려한 패키지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퍼포먼스다. 인제니움 인라인 6 3.0 디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최고출력 249마력, 최대토크 58.1kgf.m을 발휘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휘발유차로 한참을 의심했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런 의심이 지워지지 않아 자동차 등록증을 확인하고 보닛을 열어봤을 정도다. 정교하고 유연한 트윈 터보차저, 전자식 가변 노즐 시스템이 엔진 회전수 2000rpm에서 1초 만에 최대 토크 약 90%를 출력한다는 설명답게 가속도 경쾌하게 이뤄진다.

그만큼 달리는 맛이 정갈하다. 같은 기통 수 배기량 디젤차를 타고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장담하는데 출발하고 속도를 높이고 고속으로 진입해 달리는 모든 과정의 엔진 질감은 어떤 디젤차도 압도한다. 9000만 원대라는 넘사벽 가격을 수용할 수 있는 하나를 꼽는다면 단연코 주행 질감이다. 반면 외부 소음은 신경이 쓰인다. 특히 고속에서 들려오는 풍절음, 타이어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면 상태가 그대로 전달된다. 앞줄은 이중흡차음이 아닌 일반 유리가 사용됐다.

랜드로버가 자랑하는 사륜구동,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은 짧은 오프로드 공략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제법 거친 노면을 안정적으로 극복하는 균형감과 보디 강성까지 만족스럽다. 직관은 하지 못했지만 에코, 컴포트, 오토, 스노우, 머드, 샌드 등으로 구성한 드라이브 모드, 최대 3500㎏까지 견인할 수 있는 토윙 능력까지 오리지널 오프로더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양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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