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내연기관 규제 막는 자동차 협회, 수입 디젤차 처리장 바라나

  • 입력 2020.12.30 13:01
  • 수정 2020.12.30 13:03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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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28일, 관계 기관이 참석한 회의에서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규제 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협회는 정부 친환경차 보급 로드맵을 판매 의무제로 규제하면 앞으로 5년간 자동차 생산이 29만대 줄고 생산액은 8조7000억원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친환경차 전환 정책이 너무 성급할 뿐 아니라 내연기관 판매 금지를 선언한 전 세계 24개 국가 가운데 22개는 자동차 산업 특성을 고려해 법적 강제성을 두지 않았다는 주장도 했다. 정만기 협회장은 "정부가 산업 생태계와 시장 반응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정책을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협회 주장은 회원사인 국내 자동차 제작사 입장만을 고려한 단편적 분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환경 규제를 느슨하게 했을 때 자동차 업계에 당장 도움은 되겠지만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은 부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고 우리 자동차 산업에도 도움 될 것이 없다. 유럽은 당장 내년부터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시작한다.

자동차 대당 CO2 배출량이 95g/km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배출량 1g/km당 95유로(한화 약 13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유럽에서 팔리는 대부분 자동차는 유럽산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유럽 브랜드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 개발에 매달려왔지만 내연기관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수익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정에 처해있다.

유럽에서 팔면 벌금을 내야 하는 차들은 수두룩하다. 영국 PA 컨설팅에 따르면 유럽 지역 판매 상위 13개 업체가 내년 CO2 배출 규제로 145억 유로(한화 약 18조 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 토요타와 같은 수출차도 팔면 팔수록 벌금 액수는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유럽 브랜드들은 최근 몇 년간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마일드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차를 쏟아냈다. 유럽에서는 가능한 친환경차를 팔겠다는 것이 이들 전략이다. 대신 디젤과 같이 팔아도 손해를 봐야 하는 모델은 처분이 곤란해졌다. 이런 차들이 비집고 들어갈 곳, 상대적으로 환경 규제가 느슨한 곳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이 그렇다.

지금 자동차 업계가 친환경차 판매 의무제를 재고해달라는 요청은 유럽 브랜드가 반색할 일이다. 자국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내연기관차를 팔아 치울 곳이 하나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수입차 시장은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산이 지배하고 있다. 올해 시장 점유율은 유럽산이 80%나 된다. 이 가운데 친환경차는 극소수다.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데다, 최근 수요가 급증한 유럽 지역 우선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물량도 많지 않다.

유럽 브랜드 전략은 올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디젤 중심으로 라인업을 짜고 있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펼치면서 유럽산 점유율이 11월 기준 지난해 대비 21.2%나 급증했고 이 가운데 독일산은 28.5%나 늘었다. 이 때문에 한때 주춤했던 수입 디젤차는 점유율은 떨어졌지만 판매는 10.7% 증가했다.

정부가 환경 규제를 느슨하게 한다면 유럽에서 반환경차로 낙인하고 생산, 판매까지 제한하는 내연기관차가 우리나라에서는 더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지금도 제값을 주고 사는 수입차가 드문 상황에서 가격 공세를 강화하면 수입차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국산차는 줄어들 것이다. 디젤차 비중이 절대적인 독일 자동차 브랜드가 수입차 협회 회장 자리에 탐을 낸 것도 정부 정책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있었다.

5년간 줄어들 생산량이 29만대면 연간 5만대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대신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차 생산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협회가 유리한 통계만 내 놓은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정부 친환경차 보급 로드맵은 이미 오래전 구상돼 추진돼 왔다. 자동차와 관련한 주요 정책이 나올 때마다 임박한 순간에 읍소를 하는 행태도 바꿔야 한다. 그동안 손을 놓고 있어도 이런 읍소에 정부가 또 편의를 봐주는 것도 반복돼서는 안된다. 우리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도 유럽 몇 개 나라 가운데 몇 개는 강제조항이 아니라며 피할 구실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현행 공공 중심 충전 인프라 구축 정책을 집에서 충전할 수 있는 정책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단독주택 비중은 2000년 37.2%에서 최근 20%대로 떨어졌다. 국민 절반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가능하지도 할 수도 없는 제안이다.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중국, 북유럽도 집보다는 공용 도로와 주차장에 쉽게 충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제안이 전기차 보급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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