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식 칼럼] 고착화된 내수 꼴찌 '한국지엠' 그래도 당당한 노조

  • 입력 2020.12.02 10:53
  • 수정 2020.12.02 14:19
  • 기자명 김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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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4개 모델 9270대, 르노삼성차 8개 모델 7207대, 한국지엠 11개 모델 6556대. 11월 국내 마이너 업체별 팔고 있는 모델 수와 성적표다. 이 가운데 한국지엠은 경차, 스포츠카, 전기차, SUV 모든 제품군에 수입차나 다름없는 콜로라도와 이쿼녹스, 트래버스 여기에 경상용차까지 팔았지만 RV와 픽업트럭 1종을 합쳐 4개 차종을 파는 쌍용차보다 3000대 가까이 덜 팔았다. 내수 순위 꼴찌는 한국지엠이다.

올해 11월까지 누적 판매 대수도 다르지 않다. 쌍용차는 7만9439대, 르노삼성차는 8만7929대, 한국지엠은 7만3695대를 팔았다. 이것도 꼴찌다. 수출은 잘 했을까? 같은 기간 해외에 기댈 곳이 없는 쌍용차는 1만732대, 르노삼성차는 1만9222대, 지엠이라는 거대한 본사를 가진 한국지엠은 32만1736대를 팔았다. 격차는 있지만 현대차, 기아차에 이어 업계 3위다.

업계 3위에 해당하는 숫자가 또 있다. 한국지엠은 직접 고용한 직원 수가 약 8900명으로 르노삼성차(약 4300명)와 쌍용차(약 2800명)를 압도한다. 생산 능력, 직원 평균 연봉 순위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수 판매 꼴찌라니, 덩칫값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 그래도 체면을 유지해왔던 것이 업계 수출 3위다. 그런데 이 것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엠(GM)은 한국지엠이 내수 시장에서 얼마를 파는 것보다 생산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 내수와 수출 실적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지엠 생명줄은 수출이다. 지엠은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서 만들어 주기만 하면 전 세계 시장에 팔 수 있는 글로벌 빅3 거대 기업이다. 그래서 지엠은 한국지엠이 안정적인 생산을 통해 필요한 제품과 물량을 적시에 공급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수 꼴찌를 해도 이 역할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 

반대로 그런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전 세계에 코로나 19가 확산했지만 의외로 제조업 그 중 자동차 산업은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지 않았다. 중국을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가 이뤄지고 있고 북미와 유럽 올해 전체 수요도 우려했던 것보다 작은 감소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제조사들은 지금을 가장 중요한 때로 본다.

각종 백신과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면서 코로나 19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폭발적 수요가 있을 것이고 이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면 지난 1년간 감당해왔던 손실 보전, 미래 사업 투자 비용 확보도 어렵게 된다. 바꿔 말하면 효율성,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설과 인력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지엠은 이런 결정에 주저하는 법이 없다. 지금까지 지엠 계열에서 퇴출당한 브랜드, 사라진 시설, 철수한 나라는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지엠이 한국지엠을 존속시킨 이유는 뛰어난 연구개발 능력과 높은 숙련도를 가진 생산 인력에 깊은 믿음을 갖고 있어서다. 그러나 최근 노조가 보여주고 있는 이기주의가 양쪽 신뢰를 깨고 있다. 지엠은 한국지엠이 생산성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수천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 신차 생산까지 배정하겠다는 계획을 거듭 밝혀왔다. 그러나 노조는 시간당 생산량(UPH)을 늘리자고 합의한 이후, 힘들다는 이유로 약속을 깨고 전 세계 대부분 제조사와 현대차까지 임금을 동결하는 마당에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한국지엠은 올해 노조 파업과 코로나 19 영향으로 6만대 이상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지엠이 가장 바라고 요구하는 조건을 채우지 못한 셈인데, 여기에서 한술 더 떠 임금까지 올려달라고 몽니를 부려왔다. 눈엣가시 같아도 지엠은 인내해왔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어렵게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노조는 압도적 반대로 부결시켰다.

노조는 잠정합의안 부결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엠은 전세계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가장 냉혹한 기업이다. 1개 모델로 수입차보다 못한 실적을 내고 생산성이 경쟁사 절반에 불과한데 월급을 올려 달라며 파업을 하겠다는 공장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건 '꼴찌'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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