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법? "결함 덩어리 신차 교환 받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대림대 교수

  • 입력 2020.11.15 08:27
  • 수정 2020.11.15 08:41
  • 기자명 김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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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법, 신차 교환 및 환불 프로그램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19년 1월 발효된 이 법을 근거로 신차가 교환되거나 환불된 사례는 전무하다. 문제가 있거나 발생해도 협의를 통해 해결되고 이를 무마하는 사례가 많아 제조사 인식을 바꾸고 전체 소비자 피해를 줄이는 효과로도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형 레몬법에 소비자가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이렇게 무용지물이 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 법이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법이 탄생하기 전인 2018년 여러 번에 걸쳐 레몬법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의미가 전혀 없다고 지적해왔다. 10여 년 이상 한국소비자원 소비자 분쟁조정위원으로 일하며 자동차 관련 분쟁을 현장에서 겪었고 다양한 정책연구를 통해 관련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한국형 레몬법이 미국처럼 강력한 제도가 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본 요건을 간과한 때문이다.

미국은 소비자 천국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천문학적인 징벌금을 내야 하는 엄격한 소비자 중심 국가다. 반면 우리는 소비자 중심과 거리가 먼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는 모든 분야에서 소비자에게 가장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형 레몬법이라는 흉내만으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레몬법이 강력한 효과를 내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3가지 기저를 고민해야 한다.

첫째가 징벌적 보상제다. 기업에서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허위, 축소, 지연 등 불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 피해 보상과 함께 망할 수도 있는 천문학적인 벌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징벌적 제도가 없다. 문제가 발생해도 쥐꼬리만 한 벌금으로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 걱정할 일이 없다. 따라서 기업이 원천적으로 불법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징벌적 처벌이 반드시 따라야만 레몬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두 번째 자동차 결함에 대한 책임 주체를 기업으로 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문제 발생 시 제작사가 결함이 없다는 것을 우선 입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차 급발진이 발생하면 결함 유무를 제작사가 입증해야 하고 재판을 해도 결과가 도출되지 않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패소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국내는 모든 결함 유무를 운전자가 직접 밝혀야 한다. 자동차에 문제가 발생해도 굳이 제작사가 나서 입증할 필요가 없다. 제작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레몬법은 무용지물이다. 

세 번째, 같은 차에서 같은 문제가 여러 번 발생하면 미국은 국립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 등과 같은 공공기관이 조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제작사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피해자가 인터넷 등을 통해 이슈를 만들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을 경우에만 공공기관이 나서는 경우가 많다. 피해를 당한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그냥 묻히는 일도 허다하다. 하소연 할 수 있는 공공기관도 마땅치가 않다. 유일한 기관인 한국소비자원도 강제가 아닌 권고가 최선이어서 한계가 있다. 

앞에서 지적한 3개 조건을 갖춰야만 미국과 같이 신차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제작사가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미리 보완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입는 손해나 타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지금 구조로는 굳이 제작사가 나서서 교환이나 환불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 또 하나 큰 문제점은 신차 교환이나 환불 의무가 제작사별로 각각 신차 계약서에 명기해야만 레몬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제작사와 협의를 해야만 레몬법이 적용되는 만큼 협의가 안 된 제작사는 문제가 발생해도 레몬법 적용이 불가능하다. 같은 사안이어도 레몬법 적용이 안 되는 곳도 많다. 다시 말하면 레몬법이 제정될 당시 상위법 개념으로 진행해 모든 국산차나 수입사 신차가 예외 없이 레몬법에 당연히 적용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예외 없는 레몬법 적용을 상위법 개념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레몬법 안에는 이해하기 힘든 세부 사항이 많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항목도 즐비하다. 미국을 흉내 내 기반 구조 없이 설익은 레몬법을 만들어 놨으니 사문화된 법이 되고 말았다. 문제가 발생한 신차를 교환 또는 환불받은 사례는 지난 2년 동안 제로다. 앞으로도 레몬법은 지금과 같이 개점 휴업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 뻔하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세밀하게 전문성을 가지고 제대로 된 법안을 마련해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법으로 다듬어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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